2017.10.15.여호와는 너희 하나님(호세아12:1-6)

[성경본문] 호세아12:1-6개역개정

1.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2.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3.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는 너희 하나님(호세아12:1-6/2017.10.15.오전)

1. 요즘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빼앗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내 안에 있는 평안이나 평화, 혹은 안정감을 쉽게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유는 인생이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거나 주어진 환경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생명의 위기를 겪거나 육체가 고통스럽거나, 사업이나 인생의 소중한 일들이 무너진다거나, 혹은 인간관계로 말미암아 오는 갈등들이 우리 안에 있는 이런 소중한 것들을 흔들고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 세상을 보면 지나치게 혼란스럽고 염려스러운 나머지 때로는 분노가 솟아오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체념하고 묵상하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의 평안은 수면 아래위로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같은 언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부모 자식 간에는 물론이고, 이웃이나 동료와의 대화는 갈등과 첨예한 대립으로, 그야말로 동과서가 먼 것처럼 그렇게 불통이 여기저기서 확산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한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서로의 사고의 진영에 갇혀서 이제는 상대방을 손톱만큼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기주장과 합리화에 열심입니다.
그런데 마태10:11-13절에 보면, 전도자가 어떤 지역이나 특히 가정에 들어가던지 무조건 그곳을 위하여 평안을 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평안이 그곳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 평안은 내게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전도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 상대가 거부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도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일 수도 있는데, 그 때에 전도자도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말이나 힘으로 복수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런 유혹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주님이 내게 주신 그 평안을 잃어버리고 고통하고 흔들리지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으로 잘 훈련받은 사람은 이런 지엽적인 문제로 인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갈등과 혼란은 시간이 지나면서 봉합이 되고 함께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더 좋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나뉘어 졌다가 북왕국은 기원전 721년에 앗수르에게 망했고, 남왕국은 20여 년간 혼란 속에 있다가 기원전 586년에 시드기야 임금을 마지막으로 바벨론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유다나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같은 죄에 빠져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먼저 망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유다보다 더 완고하고 고집이 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유다나라는 하나님 중심의 신실한 임금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다윗의 혈통을 지키시고 축복하신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래도 아사, 여호사밧, 웃시야, 히스기야, 요시야 같은 임금들이 신앙적으로 백성들에게 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3대 이상을 이어갈 수 있는 그런 신앙을 꿈꾸면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대대로 이어가는 그런 믿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왕국 이스라엘 가운데는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된 임금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문 1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에브라임, 즉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질타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악을 더" 한다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고 잘못된 것인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북쪽에 있는 강대국 앗수르와 조약을 맺고, 동시에 남쪽에 있는 강대국 애급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당시의 므나헴 임금(기원전 748-738)은 앗수르 왕이 불에게 지불하려고 이스라엘 가운데 땅을 가진 자 6만여 명에게 각각 50세켈의 인두세를 부과했습니다(왕하15:19-20).
나중에 반 앗수르 정책을 지지하는 베가가 일어나서 므나헴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고 18년 동안 통치하면서 애급과 동맹을 맺었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망할 때 도와주기는커녕 이스라엘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호7:16).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내가 힘이 없고 가진 것이 없으면, 아무리 혈맹이라고 불리는 동맹을 맺어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선물과 조공을 바쳐도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상황을 보아도 국가 간의 그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소용이 없습니다.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크루드족은 인구가 3천만을 헤아리지만, 나라가 없어서 이라크, 터키, 시리아, 이란 등 12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이런 나라에서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불교 나라인 얀마에 살고 있는 로빈갸가 종교적인 박해로 방글라데쉬로 피난을 가는데, 그 참상이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도 나라가 없어서 200만 정도의 사람들이 얀마, 방글라데쉬, 사우디, 파키스탄, 태국 등에 흩어져서 사람 대우도 받지 못하고 생명을 연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국가나 민족이나 평화는 대화나 입으로 말해서 성립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평화를 이룰 만한 힘이 있을 때 지켜지는 것이고, 그런 힘이 없을 때에는 원수의 먹잇감이 될 뿐입니다.
이 작은 교회 하나도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믿음의 힘이 있을 때 교회가 유지되는 것이지, 누구의 도움이나 받고 그럴듯한 프로그램이나 조직을 만든다고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실을 선지자 호세아 시대의 정치적인 상황이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마침내 앗수르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베가마저 암살당하자 호세아를 세워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허수아비인 괴뢰 정부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선지자는 작금 이스라엘이 하는 행위를 하루종일 무의미하고 어리석고 헛수고 하는 것으로, 그래서 바람이나 먹고 그 바람이나 쫓아다니는 행위로 비유한 것입니다.

4. 그런데 본문에서 2-3절로 넘어가면, 믿음의 조상인 야곱의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이삭은 쌍둥이 형제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야곱의 행실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의 행위대로 심판하셨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도대체 무슨 큰 잘못을 하였기에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셨다고 했습니까?
3절에 보니 그가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그 행위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창25:22절에 보면 쌍둥이가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6절에 보면 잉태할 때에 에서가 먼저 나와 형이 되는데,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야곱이 최후의 몸부림으로 형님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얼마나 세상적인 것에 치우치고, 집착하고, 사로잡혀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해를 해 주고 싶어도 안되는 것이, 어떻게 형님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형님이 배고파 쓰러질 지경에 있는 것을 이용해서 그렇게 못된 짓을 한 것입니다.
제 정신이 있고 사람의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짓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에서가 사고를 치는 것이 아니라 동생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를 해서 아버지와 형을 속이는 엄청난 사기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이삭이 장자를 축복하기 위해서 에서에게 사냥을 해서 진미를 만들어 오라고 명령한 그 소리를 엿들은 리브가는 아들을 불러 에서처럼 위장하게 만들고, 야곱도 어머니가 만들어 준 요리를 들고 아버지 앞에 나가서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몽땅 받고는 소위 야반도주를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20여년의 세월 동안 형과 동생은 원수가 되고, 나중에 돌아와서 화해를 해도 이전 같지가 않았습니다.

5. 하나님은 이러한 야곱의 행위를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처럼 남의 축복과 권리를 부당한 방법으로 빼앗거나 속여 취하는 것을 보고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서 벌하시고 보응하신다는 표현으로 그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남의 소유를 갈취하고 협박하고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그럴듯한 명분아래, 이 땅에 얼마나 많은 뻔뻔스러운 일들이 백주에 횡횡하고, 무죄한 자들이 차례차례 고통당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 이제는 아무도 이런 악행을 저지하거나 심판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남의 소유를 야곱처럼 속여 취하거나 협박해서 뜯어내고 무너뜨리는 일들을 두 눈과 귀를 열고서 보고 듣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축복과 언약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식이라도 그 행위를 따라 용서하지 않고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물며 사도바울의 표현대로 원래의 가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쳐 버리시는 하나님 앞에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 같은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롬11:21-24)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형제끼리 싸우던 이 야곱이 나중에는 누구하고 싸웠습니까?
하나님의 천사까지 붙들고 밤새도록 씨름하여 이겼던 사람입니다(창32:28).
좀 지나친 표현인지 모르지만 천사도 야곱이라면 아마 이가 갈리고 정나미가 뚝 떨어졌을 것입니다.

6.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내 힘에 지나치는 것을 얻으려고 욕심을 품고 몸부림치게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일부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목회나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 앞에서 지나친 욕심이나 혈기는 절대 복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중에는 전부 나의 고통으로 돌아오고 눈물로 돌아오고 그래서 남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4절의 핵심입니다.
특히 3-4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야곱이 문맥의 주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라고 하였고, 5절에서도 여호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데, 3절은 야곱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야곱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어떤 잘못된 목적에 사로잡혀서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곱은 세상에 매인 사람입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보낸 20년의 세월도 인간적인 성공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밤잠도 자지 않고 수고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했는데(창31:40),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창47:9절에 보니 11번째의 아들인 요셉이 성공해서 온 식구를 애급으로 불러들이고, 그가 애급의 바로 임금 앞에서 섰을 때에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것입니다.

7. 그렇습니다. 인생이 자기 힘으로 가는 길은 험악합니다. 가시밭길이요 고통의 세월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분명히 야곱은 야반도주를 하면서 벧엘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를 맹세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믿음으로 살기로 결심하면 마지막까지 믿음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작정했으면 변함없이 그 길로 나아가야 영육 간에 성공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6절에는 그 내용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마치 전도서 마지막에 기록된 말씀인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는 이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어다" 바로 이것입니다.
특히 "너의 하나님" 이라는 말이 6절에서 두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에브라임이 겉으로는 지혜로운 척하고 아무리 부지런하게 움직여도 그 행위가 어리석고 불쌍하고 쓸데없는 행위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과 같이 신앙의 원줄기를 따라 내려오는 언약의 백성, 핵심 세력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행한대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고, 그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오늘 우리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이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제라도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우상숭배와 온갖 부도덕하고 잘못된 행실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라도 내게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내 한 사람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죄 가운데서 방황하며 고통하는 수많은 생명들을 너의 하나님, 곧 나와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도요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너의 하나님, 곧 나와 우리의 하나님이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하시는 그 공의를 이루는 그 날까지 낙심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기도하면 성령님이 새 힘을 주십니다.
셋째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너도 또한 인애와 정의를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가 이루지 못했던 평화, 우리가 감당하지 못했던 인애와 공의로 가득찬 세상을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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