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5.임마누엘(마태1:21-23)
[성경본문] 마태복음1:21-23개역개정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임마누엘(마태1:21-23/2016.12.25.오전) 1.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고통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 뜻대로 내 욕심과 내 이기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에 행복이 없고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살다보면 여러 가지 질병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사고나 실패도 당하고, 때때로 미워하고 분쟁하면서 그렇게 살다보니 남들이 모르는 내 가슴 속에는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 스스로를 고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가 내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고,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면 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 육신이 가지고 있는 욕구는 내가 아무리 잘 해줘도 만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뭔가 부족하니 내 육신이 만족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육신을 위해서 더 잘해주려고 하고 생명까지 걸고 노력합니다. 바로 여기서 온갖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키엘케골은 말하기를, 이러한 인간의 온갖 행위, 즉 죄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선지자도 신학자도 아닌 철학자가 인간의 모습과 그 문제를 이렇게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을 정도이니, 우리 인간이 얼마나 타락하고 불행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살면서 제일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면 사람들이 매우 교양 있게 행동하고 남을 배려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굉장히 이기적입니다. 마11:36절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들의 원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안의 식구라고 말씀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복음에 대한 반응과 영적인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 말씀을 좀 더 묵상해 보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 형제, 자식도 다 원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도 지나치게 사랑하면 도리어 상처받고 원수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물며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동서남북 다 돌아보아도 내 마음을 채워줄 만한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원수덩어리는 많아도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좋아도 조금만 섭섭한 일을 당하면 지난날에 은혜 입은 것은 간곳이 없고 그날부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살면 살수록 고통스럽고 외롭습니다. 무엇을 해도 진정한 성공은 없습니다. 성공을 바라보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 노력해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허망함과 탈진과 분노만 쌓일 뿐입니다. 3. 그렇다면 우리 인생 중에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며, 누가 우리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줍니까?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 아들을 통해서 고통하고 슬퍼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지자를 보내시면서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과거 이스라엘이 유다를 치기 위해서 이방 나라와 연합하여 공격합니다. 목적은 이 유다 나라에 자신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 유다나라를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많은 희생을 치루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나 같은 형제국가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서로 미워하고 싸웠지만 얻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나라와 민족은 점점 황폐해질 뿐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곳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4.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왜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위한다고 하시면서 처녀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고 합니까?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인간의 마음이 이미 완고할 대로 완고해지고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뜻대로 안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음이 돌멩이처럼 굳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의 마음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남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 테두리에 갇혀서, 마치 보리새우가 제 허물을 벗지 못하고 제 껍질에 갇혀서 죽는 것처럼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인간의 혈통을 타고 나면 인간에게 온갖 고통을 주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분의 은혜 없이는 해결이 안되는 것이 인간의 고통이요 문제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에 아들을 보내시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의 이름에서 나타나는 데로 임마누엘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 즉 사람들과 함께 동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왔고, 인생의 고통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내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떠남으로 인한 고통을 당하지 말라고 스스로 우리를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외롭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울 때 누가 우리를 찾아와 주며 누가 우리를 위로해 줍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스스로 찾아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5.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본문 말씀의 전후를 보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이 위로하심의 역사입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이 사건을 통하여 제일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그들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과 두려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자신들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예상치도 못한 일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 인생인데 그것마저도 잘못하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될 요셉이 알지 못하는 아이가 마리아의 태속에서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과 마리아를 차례로 찾아오셔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하실 큰일을 미리 알려 주시면서 그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21절에 보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로 말미암아 고통하는 인생들을 그 죄 문제를 해결하여 고통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너희 두 사람을 택하여 부른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이 두 사람의 반응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라고 고백하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할 때에는 두려워하고 떨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요셉도 본문 24절에 보니,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다” 고 했습니다. 6.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확신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순종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사람도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시는 사명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경우가 가장 적합한 실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니 목동이요 어린 소년이라도 나라와 민족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가장 위대한 임금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차 오실 구원의 주 메시야의 오시는 길을 닦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 인생을 위해서 내 소원과 계획을 위해서 부지런히 달려가고 수고하고 희생하는 일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 받으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고 행복한 삶인 줄 믿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역사의 위대한 정복자로 칭송받고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가장 불쌍하고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모가 서로 반목하는 가운데 성장하면서 모친은 자기 아들을 복수의 화신으로 키웠습니다. 그래서 20살에 왕이 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그 모친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마케도냐와는 정 반대인 동쪽으로만 나아가면서 차례차례로 이방민족을 정복했습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환경가운데 전쟁터만큼 비참한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마케도냐로 돌아가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7. 알렉산더 대왕은 많은 나라와 민족을 정복했지만 그곳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대의 철학의 1인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운 학문이나 교양도 그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33살에 의문을 죽음을 당하고 그의 나라는 신하들에 의해서 사분오열로 나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대한 내용을 다니엘은 이미 2백여 년 전에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는데, 단8:8절의 숫염소와 큰 뿔이 알렉산더의 제국을 말하고, 그곳에서 난 4뿔이 그의 장수 4사람이 분열하여 세운 나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단11:3-4절에서 다시 반복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정복자인 그가 결코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힘이 있다고 권력과 소유가 넘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날 평지에 사방의 민족들이 모여서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가 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고 다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경영,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입니다. 8. 그렇다면 오늘 우리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나” 라고 하는 우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이 “나” 라고 하는 우상이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계절입니다. 명목상으로는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내가 즐기고 내가 대접받고 내가 인정받기를 원하는 그런 곳이 성탄절입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실패는 욕심도 교만도 자랑도 더러움도 아닙니다. 내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것이 가장 불행한 것이고, 내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은 내게 임마누엘의 역사가 있느냐 없느냐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 중에 알렉산더 플레밍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페니실린을 발견해서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고, 지금도 이 페니실린을 통해서 많은 생명들을 위기에서 건지고 있는데, 그의 위대한 공헌에 감복한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박사님이 발견 한 것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한 플레밍의 대답은, “내가 죄 많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구원자라는 사실입니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나는 성공자의 삶을 그것도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며,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떠나면 나는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행복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고 추구하는 그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요셉처럼 마리아처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자가 영원한 행복자인 줄 믿습니다. 성탄절은 내 육체가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그런 계절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내 삶을 통해서 드러내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