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15.베드로의 눈물2(마태복음26:69-75)
[성경본문] 마태복음26:69-75개역개정
69.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베드로의 눈물2(마태복음26:69-75/2015.3.15.오전)
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섹스피어는 인간의 위대함을 노래하기를,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걸작인가?
이성은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며, 행동은 천사와 같고 이해하는 것은 신과 같고, 세계의 美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고 해도, 어떻게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진주나 다이아몬드는 깎아내고 갈고 다듬을 때 값있는 존재가 되듯이 인간도 그냥 버려 두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토기장이의 손에 잡힌 흙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토기장이의 녹로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돌리고 다듬어 나갈 때 훌륭한 하나님의 창조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제 나름대로 잘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깎아 내고 도려내고 깨트려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태어나는 그 자체만으로는 참다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목수의 손에 들려진 나무처럼 그의 손에서 다듬어질 때에 아름다운 가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없는 인간은 오히려 짐승보다 못한 불쌍하고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일본은 나이가 18살이 되면 성인식을 하는데, 말이 성인이지 정신적으로 보면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그런데 일본 정부는 18세부터 투표를 하자고 해서 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대인은 인구 조사를 할 때 20살이 되어야 성인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공식적으로 일하는 나이는 만 30살이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인생을 30년은 살고 배워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0살을 기다리셨다가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육은 3가지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가정교육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교회에서의 신앙 교육이고, 마지막에 학교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가정 배경을 보고, 어디서 신앙교육을 받았으며,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보는 것입니다.
입학원서를 들고 줄만 서면 들어가는 학교하고, 몇 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가는 학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고, 가정교육도 그 부모님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으며,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이러한 자녀 교육에 관해서는 유대인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잠언23:13-14절에 보면,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서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 중에서 실수도 많고 넘어지기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문제도 많았고, 어디를 봐도 완벽한 곳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3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면서 배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에 그를 찾아오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으신 후에 "내 양을 먹이라"(요21:15-17) 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은 깨끗하고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며,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 그러나 부족하고 연약한 가운데서 자꾸 배우고 개선하면서 자라나면 누구라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배우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줄 알아야 합니다.
4.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입니다.
그런데 이 야곱은 한 마디로 말해서 문제가 많은 사람이고 잘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그의 형 에서는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서는 버렸고 이 부족하고 못난 야곱을 더 사랑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서는 잘난 사람이었지만, 야곱은 연약하고 부족해도 깨닫고 뉘우치고 자신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도 누가 더 많은 은혜를 받고 누가 더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연약한 부분은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겸손한 사람입니다.
섬기고 봉사하면서고 실수도 있고 허물도 있지만 그 때 마다 목사님이나 믿음의 선배들을 찾고 도움을 구하고 잘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사람은 문제가 없지만 성장도 없고 큰일도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란을 당해도 고집을 피우고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잘못한 것이 너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 위로 걷다가 의심해서 빠진 일이나, 너무 멋진 신앙고백을 했다가 십자가를 지지 마시라고 충고하다가 예수님에게 사단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에게 자신의 온 몸도 다 씻어 달라고 하거나, 변화 산에서는 그곳이 너무 좋아서 아예 세상 고생 다 집어 치우고 여기에 집을 짓고 살자고 하거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마26:35)다고 그렇게 큰 소리 치고 장담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무리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다가 남의 귀를 베어버린 일이며 그렇게 설치다가 실수하고 넘어진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5. 그런데 어째서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나중에는 어떻게 그런 훌륭한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까?
베드로는 잘못하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영영 주저앉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설 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일어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실수로 한 번 물러가면 그 다음에는 몇 배로 앞을 향해 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한 후에는 통곡의 뜨거운 눈물과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정말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문제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환경이나 제도나 다른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나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잘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잘못된 제도나 환경을 고치신 것이 아니라, 문제 있는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영화 「소원」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을 울었습니다.
이 영화는 2008년 12월 안산시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8살 딸 아이 소원이가 학교 등굣길에 괴한에게 잡혀가 폭행을 당하고 항문과 생식기가 망가지고 장 파열에 겨우 생명을 건졌지만,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합니다.
범인을 잡았는데 뉘우치기는커녕, 술에 잔뜩 취해서 기억이 안 나고 모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판사가 범인이 주장하는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심신장애를 인정하고 12년의 형을 구형하는데, 결과에 분노한 아버지가 검사의 명패를 들고 범인을 내려치려고 할 때 이 아이가 아버지의 발을 붙잡고 울며 그냥 가자고 합니다.
6. 저는 영화에서 아이의 친구 아버지가 왜 음주운전은 범죄가 되는데, 술을 마시고 어린아이 한 인생을 망가뜨려 평생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이 엄청난 범죄를 어떻게 심신장애로 보고 정상을 참작할 수 있느냐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법에도 모순이 있고,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고 천국 같은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도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변화되지 못하면, 바로 그곳은 지옥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제일 먼저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에 잘못이 있고, 내 안에 더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21장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가 나오는데, 어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는데, 둘 다 가겠다고 하고는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제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고 돌아와 아버지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21:31) 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항상 완벽한 상태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잘못 간 길이라 할지라도 급히 깨닫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이 돌이킴, 이 회개를 통하여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3번이 아니라 열 번 이라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했을지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부인이나 저주의 말이 아니라, 닭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에 예수님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바깥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행한 일이 무엇이며,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7. 오늘 우리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실은 사람들이 회개할 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자신의 잘못을 한 두 번의 간절한 기도로 땜질하듯이 끝내고 그것이 회개의 과정을 거친 것이며, 이로서 하나님은 내 죄를 다 용서해 주신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죄를 고백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회개는 헬라어로「메타노에오」로, 이것은 생각을 바꾼다는 의미로, 지금까지 지은 죄에서 돌아서는 행위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는커녕 자신의 안일에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했지만, 하나님은 닭의 울음소리를 통해서 지은 죄를 깨닫게 해 주셨고, 베드로는 그 감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 내가 또 넘어졌구나, 내가 또 큰 죄를 짓고 말았구나,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구나, 이렇게 깨달았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땅을 치고 통곡하며 제 가슴을 치며 울었던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요나 선지자의 회개의 메시지를 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백성들이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서 물도 마시지 않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으며, 이 일을 자신들이 키우는 가축에게도 적용했습니다(욘3:5-8).
또한 예수님이 전도 나가는 제자들을 향하여 사람들에게 회개를 가르치라고 명령하셨고(막6:12), 예수님 자신도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셨고, 이 회개는 세례요한의 사역의 핵심 중에 하나였으며, 초대 교회도 성령 충만한 이후로 회개의 메시지를 강하게 선포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변화에 있습니다.
그러나 표면적인 변화가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되 근본적으로 변화를 주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선언하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고 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변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는 것입니다.
8. 인간은 연약한 존재요 죄 가운데 출생한 존재라 죄와 허물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돈이 많고 많이 배우고 교양과 능력이 많아도 결코 완벽하고 온전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어도, 자기의 실수와 허물, 죄와 연약함을 깨닫고 눈물로 통곡하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킬 줄 아는 자가 성장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으며 위대한 사람으로 다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에 성경에 나타나는 베드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고, 그의 전도를 통해서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도록 만들었습니다(행3:6-7, 2:41).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새로 거듭난 사람이 할 수 있으며, 주님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와 능력을 풍성하게 부어 주심으로, 가는 곳 마다 회개의 역사와 기적을 일으키도록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베드로는 가야바 대제사장의 법정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울었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일로는 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서 남은 생애를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어주신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 일어선 자의 모습입니다.
주일을 두 번 지내고 나면 종려 주일이고, 그 주간에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지금부터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지은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새사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우리 교회와 가정에서 초대교회와 같은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