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4.위로하시는 하나님(고린도후서 7:5-8)

[성경본문] 고린도후서7:5-8개역개정

5.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위로하시는 하나님(고린도후서 7:5-8/2010.1.24.오전)
1. 뉴스 시간에 기자가 밝힌 충격적인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부친이 술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 그 모습을 캠코더로 찍어 시청자들에게 그 비참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기자의 부친은 결국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여러 가지 핸디캡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인간관계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기분전환으로 마시던 술을 끊지 못해 중독 상태에 빠지거나, 자신감이 없는 사람, 등등이 알코올 중독증에 잘 빠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술은 만병의 원인일 뿐 아니라, 이혼, 별거, 미혼 상태, 실직, 가난,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 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사람을 파멸시키고 맙니다.
술은 이해력, 판단력, 주의력을 떨어뜨리고, 육체를 피곤하게 만들며, 생각이 유치해지고, 사람을 자기중심적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또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도덕심이나 수치심이 사라지고, 거짓말을 잘하고, 의지가 약해지고,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을 만듭니다.
이런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일본에서만  500만 여 명이라고 하니, 이 숫자는 일본의 크리스천 인구의 12배가 넘는 숫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외부나 환경에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나를 고통하게 만들며, 누가 나를 불행하게 했습니까?
누가 나를 패배하여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불쌍한 인생으로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파멸시켰고, 내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내가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든 것뿐입니다.

2.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생의 현주소는 어떤 곳입니까?
바깥에서 보면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세계는 쉴 새 없이 고통과 두려움, 근심과 낙심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믿음의 사람 바울에게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도 고통과 두려움, 근심이 있습니다.
이유는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지구촌에서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같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고, 이런 문제가 유월절 처럼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5절에서 바울이 하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라고 하였으니, 다른 곳에서도 육체와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3. 우리는 생각하기를, 전도자는 마음이 넓고 여유가 있으며,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니, 하나님이 만사 지켜 주시고 능력 주심으로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선교사들의 사역 현장에서 일어나는 기적 같은 사건들과 능력들을 우리는 많이 듣고 있으며, 또 우리 주위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의 그런 능력과 기적의 배후에는 더 많은 아픔과 눈물과 고통, 실패, 죽고 싶을 정도의 괴로움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30-40대에 선교현장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면서 본 것은, 선교 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이나, 언론에 공개된 그런 감동을 일으킬만한 내용들이 아니라, 사역 현장에서 땀과 눈물과 때로는 피를 흘리면서 희생하고 고통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그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가정문제, 자녀들의 교육 문제도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선교사의 입장에서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 세계선교를 꿈꾸고, 일본 복음화에 대한 더 큰 열정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오늘 우리에게 자신이 당면한 문제, 자신이 처한 환경의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체가 편치 못할」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고,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고 나간 전도자들의 현실입니다.

4. 바울의 마음을 괴롭히는 근심이 무엇입니까?
전도자가 받아야 할 당연한 보수를 받지 못해서 입니까?
전도하는 일 자체가 너무 어렵고 힘들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순탄한 길을 열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괴롬은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인과 이방인 무리들로 인한 어려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낳은 고린도교회로 인한 고통입니다.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할 고린도 교인들이 세상과 이단과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에 흔들리는 것과, 그들의 부도덕함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러한 자들에게 속아, 자기들끼리 편을 나누어 형제가 형제들을 공격하고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바울 자신의 연약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근심하고 있습니까?
그 근심 때문에 예배를 바로 드릴 수 없는 상황입니까?
내가 지금 근심하는 그 근심이 바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이 시간에도 돈이나 사업을 걱정한다면, 돈이 내 모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돈이요, 돈이 곧 나인 셈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지금까지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다른 근심, 다른 염려에 사로잡혀 보기를 원합니다.
세상 때문에, 돈 때문에, 자식이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내 믿음 때문에 한 번 근심해 보자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가 지금 얼마만큼 주님과 멀어졌는지,
어렵다는 핑계로 우리가 지금 얼마만큼 불충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내 마음속에는 핑계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바로 이것을 염려하고 근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5.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기를 아비가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지금은 그런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괜히 이 사람들을 꾸짖어 도리어 역효과를 내고 말았구나!
내가 차라리 편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고린도교인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근심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의 솔직한 책망과 꾸짖음이 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바울은 그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근심은 자신의 육체나 자신의 문제, 환경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자녀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이 일시적으로 근심할 수는 있지만, 그 근심과 염려가 반복되고 길어진다면, 결국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 속 사람을 복음으로 채우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시적인 것에 소망을 두면,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그런 것들이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좌지우지 할 것이고, 우리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고 하시면서,「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고 약속하셨습니다.

6. 전도자가 맛보는 복음으로 인한 근심, 염려 속에 있던 바울을 누가 위로하였고, 무엇이 그에게 근심을 버리고 기쁨에 충만케 하였습니까? 고린도 교회에 바울을 대신하여 보내었던 디도와의 만남이었습니다.
6절에 보니, 바울이 얻은 그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가 가져온 고린도 교회의 소식이 바울로 하여금 염려에서 벗어나 기쁨을 얻게 하였던 것입니다.
7절에 기록하기를, 「저의 온 것 뿐 아니라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은 고린도교회를 책망한 것을 후회하였지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고, 그 결과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눈물로 회개하고, 자신들로 인하여 오랜 세월 염려하고 근심한 바울을 생각하여 감사하였고, 영적 아비된 바울의 소원대로 그들이 죄 된 것과 잘못된 가르침에서 떠나 신실한 믿음과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리로 회복해 감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근심하던 바울로 기쁨을 얻게 한 것입니다.

7. 10절에 보면,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고, 「세상근심」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바울처럼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었지만, 세상근심의 결과는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4대 목표가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사명만 짊어지고 있을 뿐,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 근심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근심의 근원은,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고, 물질에 내 마음이 있다면, 그래서 그것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한다면, 우리는 사명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는 불쌍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의 기쁨, 주의 종들의 만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합3:17-18)고 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기쁨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8. 세상의 모든 근심과 염려는 결국 우리를 패배하게 만들뿐입니다.
그래서 염려하면 할수록 알코올 의존증에 빠지고, 무기력하고 패배로 비틀거리는 비참한 인간이 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근심을 물리치고, 우리의 삶과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고,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근심하고 염려한다면, 잠시 잠깐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충만한 줄 믿습니다.
2009년도 한 해를 많은 어려움으로 보냈지만, 우리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몸 된 교회와 복음을 위해 염려하였다면, 올해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주님의 위로와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올 한 해는 교회를 위해 염려하고, 이 땅 이 민족의 구원을 위해 근심한다면, 이 염려 이 근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근심이요, 은혜와 구원의 능력으로 우리 심령과 삶에 넘치게 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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