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7.복음으로 사는 사람(고전9:19-27)

[성경본문] 고린도전서9:19-27개역개정

19.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음으로 사는 사람(고전9:19-27/2008.1.27.오전)
1. 요즘, 핸드볼 경기가 인기 구기종목이 되었습니다. 북경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기위한 아시아 예선 경기가 작년에 일본에서 있었지만, 아시아연맹의 권력을 잡고 있는 쿠웨이트로 인한 편파 판정으로 얼룩진 경기를 다시 하도록 함으로 이달 말에 동경에서 예정된 경기의 입장권 6천매가 40분만에 매진되었고, 야후 옥션에서는 입장권 2장에 3만 수천엔을 호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여자팀이 세계최강의 덴마크와 호각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쨌든 뉴스마다, 가는 곳 마다 올림픽 종목인 이 핸드볼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바울이 기독자, 곧 복음으로 인하여 사는 사람들의 삶을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선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마라톤 선수와 권투선수의 경기를 묘사하는 대목이 나오고 있습니다마는, 이 경기에 출전한 승자는 각 도시 국가를 대표하여 출전하기 때문에 그들이 얻는 승리와 우승은 곧 국가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선수들은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을 면류관이란 월계수로 만든 것으로 곧 시들어 버릴 면류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면류관을 얻으려고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이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경기를 준비하기 위하여 평소에도 자신을 절제하며, 거듭된 훈련으로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올림픽 경기에 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자의 삶도 이 경기에서의 우승을 바라보는 선수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수들이 그렇게 하듯, 우리들도 스스로를 강도 높은 훈련과 범사에 절제된 모습으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올림픽경기의 우승 선수들에게는 월계수로 만든 썩어질 면류관이 주어졌지만, 그러나 복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특별히 하늘로부터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졌습니다.

2.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들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로 절제된 생활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죄의 노예로 살았고, 죄가 주장하는 대로 따라 끌려가며 사는 자유가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이런 모든 죄와 저주와 고통에서 해방시키심으로, 믿는 자에게 참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주어졌다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자동차가 제 가고 싶은 대로 간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교통법규에 정해진 대로 신호와 선을 지키고, 자동차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안전운전에 힘쓸 때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처럼, 기독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때, 영육간에 참된 자유를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3. 바울은 자신에게 로마 시민권과 바리새인의 종교적 우월과 사도로서의 특권이 있었고, 이런 것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도 있었지만,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권리조차도 없는 사람처럼 행세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복음의 진보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행동하였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자신도 율법 아래에 속한 자처럼 하였고, 약한 신앙인들 앞에서는 자신도 약한 사람처럼 행동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바울은 도리어 많은 영혼들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권리와 이익들을 절제하고 포기하였고, 그로 인하여 육신적으로 많은 손해와 피해를 입었지만, 그 결과로 얻는 복음의 열매로 인하여 그런 것을 도리어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강한 자 앞에서는 비굴할 정도로 약해지고, 약한 자 앞에서는 도깨비처럼 강해지려고 하지만, 바울은 도리어 약한 자 앞에서는 자신도 약해지고, 강한 자 앞에서는 자신도 강해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이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증거였던 것입니다.

4. 복음이란 나 한사람만 구원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구원받은 나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들로 생명의 풍성함을 맛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그 향유는 무엇인가?
향유 자체가 재산적인 가치도 있지만, 언젠가 자신에게 있을 결혼식을 위하여 준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향유를 예수의 몸에 전부 부어버림으로 자신의 재산은 무일푼이 되었고, 결혼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예수님의 몸에 부은 그 향유는 복음과 더불어 온 세계에 아름다운 향기로 퍼져 나갔고, 복음과 더불어 이 여인의 행한 일을 듣는 모든 지구촌 사람들에게 믿음의 향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세상적인 소망은 사라졌지만, 예수님의 복음과 함께 영원히 사는 영광을 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도「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23)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였고, 또 할 것이며, 그 어떤 것이라도 드리고 희생하였고, 또한 이후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5. 사도바울이 복음을 위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달려간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이 받은 예수 십자가의 복음이, 그 사람 안에서 오직 복음만 위하여 살도록 생명의 감동이 넘쳐 났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 안에 침투한 복음은, 그가 복음 이외의 것을 위하여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던지 무엇을 먹든지 마시던지 오직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데 모든 것을 희생하고도 도리어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6. 둘째는 축복과 영광입니다.
바울은 27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하였다. 그것은「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 했습니다.
많은 기독자들이 지금도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여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하늘나라의 상급과 이생에서의 축복은 각자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26절에서「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지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세계는 무질서의 세계가 아니며, 허무한 세계도 아닙니다.
믿음의 세계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바른 수단과 방법이 있고, 질서와 방향이 있는 것입니다.
 
7. 일본의 기독교가 힘을 잃고, 많은 지방 교회들이 목회자가 없어 문을 닫거나 목회자가 없는 교회로 남아 있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여러 가지 요인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목회자나 전도자의 삶은, 너무나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루면서도 정작 남는 것이 없고, 배만 고프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사실 전도자의 길은 험한 길이요, 목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후에 주어지는 영광 또한 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목적과 영광을 위해 얼마나 인내하고 수고하는가?
선수들도 평생을 걸고 훈련과 절제된 생활을 참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승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의 길도 그렇습니다. 14절에서「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바울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살면, 복음이 그 사람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영광과 축복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8. 23절에 보면「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는 「참예함」은 헬라어로「쉰코이노노스」로 이것은「- 과 더불어 함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쉰」과「동역자, 참여자」를 뜻하는 코이노노스의 합성어요, 이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어떤 주식회사의 주식을 사서 그 회사에 투자한 만큼의 이익을 분배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참예한 자라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투자를 한 것이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생명들이 구원을 얻으면 얻을수록 내게 더 많은 영광과 축복과 능력이 주어지되, 그것도 영원히 주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내어 주고 대신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만큼 우리에게 더욱 귀하고 영원한 것으로 값아 주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9. 이 교회도 주님의 피 값으로 산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줄 알고, 오직 복음의 진보를 위해 수고하면, 얻는 열매들과 영광들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받을 영광과 축복 또한 크고 영원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나 이익을 따지고 분쟁하고 있는 그 시간에도,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가진 권리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도리어「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19절)기를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면 할수록 우리가 받을 영광과 면류관은 더욱 크고 빛날 것이요,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자 더 많은 사명과 축복과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본복음화라는 크고 놀라운 사명을 주셨고, 이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복음을 위하여 살고 복음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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