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24.처음으로 돌아가라(요한계시록 2:1-7)
[성경본문] 요한계시록2:1-7개역개정
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처음으로 돌아가라(요한계시록 2:1-7/2010.4.24.오후) 1. 최근에 연예계의 빅뉴스는 유명 가수 한 사람과 여배우가 비밀리에 결혼한 후 십 수 년간을 살다가 이혼까지 한 사건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여배우는 어릴 때부터 이 가수가 좋아 결혼하고 싶다고 했고, 꿈대로 되었는데 결과는 파경이요, 법적 소송으로 진흙탕 속에 빠져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환상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랑의 종말이 그렇습니다. 욕망의 수단으로 상대방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 욕망이 식어지면 모든 것에 한계가 오는 것입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랑의 방정식에는 상대를 위한 희생이 없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본문의 에베소 교회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이 무엇입니까? 주님 사랑이요, 그 사랑 안에서 행하는 믿음의 형제를 향한 사랑입니다. 바로 이 사랑이 식어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보면, 처음에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남다른 열심을 냅니다. 받은 직분에 감사하여 열심히 섬기고, 남다른 은사와 체험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고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임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감격과 감사와 영적 체험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처럼 시간이 흘러갈수록 희미해지고 나중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랑도 열정도 사명도 신앙도 모든 것이 퇴색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2. 에베소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칭찬받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교회도 처음에는 물론이고 한 동안은 대단했던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주님이 칭찬하고 계시니 어떤 한 가지 문제로 책망을 받는다고 해서 그렇게 잘못된 교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원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전부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9가지를 잘 하고 1가지를 잘못한다고 해서 전부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가 주님께 많은 것으로 칭찬 받는 것 보다는, 단 한가지뿐이지만 책망을 받고 있는 바로 이것이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런 에베소 교회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듣기에도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않으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서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살면 살수록 처음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부부가 사랑하면서 평생 함께 사는 것이 큰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에 걸쳐 남들이 흉내를 낼 수 없는 특별한 사랑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오다가다, 혹은 한 눈에 반해버린 그런 관계가 아니라 소위 운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3. 주님은 자신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된 교회라는 존재와, 또한 성도와의 관계를 세상적인 표현으로 빌리면 운명적인 만남, 운명적인 관계로 보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미 만세전부터 계획하신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교회나 성도들과의 관계도 내 형편과 내 감정에 따라 조절 할 수 있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힘들고 기분 나쁘면 교회도 옮기고,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성도들과의 공동체적인 관계마저도 헌신짝 버리듯 냉정하게 돌아서는 것입니다. 첫 사랑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것은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에 많은 차이가 생긴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의 만남을 만세전부터 예정되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우리는 내 마음대로 바꾸고 조절할 수 있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4. 왜 주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바로 희생에서 오는 차이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외면당하시면서 까지 마지막에도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사랑이었고, 주님을 위해 희생한 것이 손해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늙어도 자식을 잊지 못하지만 자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같은 사랑이라도 희생에서 오는 차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한다, 믿음의 형제자매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다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몸된 교회를 남다른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도 남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그래서 남들을 시험에 빠뜨리는 경우는 물론이고, 반대로 한 마디의 오해만 생겨도 그날로 모든 관계가 끝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성도를 귀하게 여깁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의 크기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5.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버린 첫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첫째는 날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신 주님의 그 사랑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주님이 피값을 주고 산 믿음의 형제자매의 사랑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셋째는 주님 사랑의 대상이었던 자신을 그 사랑의 울타리 밖으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회개하여 돌이키지 아니하면「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서 옮기리라」 고 경고했습니다. 촛대는 교회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참 사랑에서 멀어진 교회는 주님도 포기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십자가를 세우고 주일날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그곳에 더 이상 함께하시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두렵고 무서운 동물들이 많습니다. 불곰이나 사자, 호랑이 들은 무섭습니다. 일본에서도 산에 갈 때 곰을 만나지 않으려고 일부러 방울을 달고 다니거나 라디오를 켠 채 산행을 합니다. 사람이 이런 짐승을 한 번 만나면 사족을 못 쓰고 도망도 못갈 정도로 무섭습니다. 그러나 자연박물관 같은 곳을 가면 불곰 같은 박제로 된 짐승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보면 깜짝 놀라지만 아무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외모는 무섭게 생겼지만 이미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이처럼 십자가는 있으나 이미 죽은 교회들이 많습니다. 왜 죽어버렸습니까? 주님이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이 자신의 몸 같은 교회를 버리셨습니까? 그 교회가 첫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힘이 하나도 없고, 살았으나 죽은 존재일 뿐입니다. 6. 세상에서도 아무리 능력 있고 인기가 많고 똑똑해도 손버릇이 나쁜 사람은 결국에는 형무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것 다 잘해도 바람난 남편이나 아내와는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속은 상하지만 다른 것 잘하고 있으니 참아주지! 이건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기본이 안 된 인간은 다른 것 백가지 다 잘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잘해서 칭찬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2절에 보면,「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하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고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고 했습니다. 또한 6절에 보면 예수님이 미워하신 니골라 당을 함께 미워한 것을 칭찬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다른 선한 일들과 귀한 수고가 많아도 사랑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너를 버리기 전에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 교회가 주님의 몸된 믿음의 공동체로 살아남는 길이었습니다. 7. 여기서 본문 말씀 전체를 묵상해 보면, 주님의 말씀은 한가지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많은 칭찬이나 혹은 책망을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처음에 가졌던 참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윤리적인 설교, 미사여구로 가득찬 칭찬이나 교훈적인 설교가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죽은 생명을 살리고 병든 심령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능력있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신자는 어떤 존재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어버리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고 했습니다.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며, 영적으로 죽은 힘없는 교회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자신도 무덤에서 부활하여 생명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교회가 이 생명의 주인되신 주님을 모시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가려면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8.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에 받은 직분이 이제는 싹도 피우지 못하는 고목처럼 쓸모없는 이름뿐인 직분이 된 것은 내 안에 주님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 할 시간에 기도하지 못한 것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과 은혜로 섬겨야 할 사명을 외면한 것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은 희생인데 도리어 남들의 희생만 강요한 것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회개하고 일어서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전 보다 더 많은 희생을 쏟을 때, 내 안에서 주님의 참 사랑이 회복되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 교회와 우리가 무너진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사도요한은 말하기를,「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일요4:12)고 했습니다. 사랑을 잃고 죽어가는 신자가 아니라, 사랑을 회복하여 생명의 능력을 가진 새롭게 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