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24.예수님의 제자들(마가복음6:7-13)

[성경본문] 마가복음6:7-13개역개정

7.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의 제자들(마가복음6:7-13/2019.2.24.오전)
1.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매우 서툰 정도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학생이 되어서도 매주 토요일마다 노방전도를 나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 위에 저를 더욱 괴롭히는 것은 1학점짜리의 전도학의 점수가 미달이 되면 다른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졸업을 할 수 없는 것이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전도학은 은사 학장님이 직접 가르치시는데, 설교평가, 노방전도, 매주 성구암송, 노동봉사시간까지 다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전도활동 보고서를 거짓말로 작성한다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전도활동에 대한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용기를 내어 낮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그들로부터 거절당하거나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는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전도활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상대방이 싫어하는 이런 방법으로 전도를 계속 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전도를 통해 사람을 구원하기 보다는 내 자존감이 상처받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 용서받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인 상황에서 당장 내 삶 속에서 맛보는 평안과 감사와 기쁨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귀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모르기 때문에 전도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하기 마련입니다.

2. 우리는 내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순수한 마음으로 전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으며, 도리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해를 사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전도자들이 생각하기를,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도 상관이 없다거나, 상대방이 싫어하거나 거부해도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그런 태도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또한 이것이 전도자의 진정한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시대가 무섭게 변화되고 있는데, 교회가 행하는 전도방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과 그런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염려가 되는 것은 전도할 때,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이나 상황을 전연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과연 기독교가 진실하고 올바른 종교이며, 내 삶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종교인지 어떤지 지금도 확신이 서지 않은 채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3.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들을 이런 세상을 향해 천국 복음을 들고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고 하셨겠습니까?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반기독교적인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전도의 행위는 여간한 용기와 각오 없이는 행하기 어려운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전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가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나 계획으로 임해야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본문을 보면 몇 가지의 뚜렷한 특징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7절에 보면,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그들은 많은 훈련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도를 명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연약한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시행하셨는데, 첫째는 둘씩 짝을 지어서 서로 의지하여 연약한 부분을 보충하라는 것입니다.
전도를 혼자 하는 것 보다는 둘씩 짝을 지어 나가면 서로 간에 큰 힘이 되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약한 존재라도 두 사람 이상이 힘을 모으면 각각 행하는 것 보다는 몇 배의 효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4:9절에도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 다고 했습니다.

4. 두 번째는 그들에게 귀신을 제압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불신앙의 배후에는 반드시 귀신의 세력이 숨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려면 귀신을 제압하고 쫓아내는 능력이 필요한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권능을 주신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대리자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이 쫓겨 나감으로 사람들이 온전해지고, 흑암의 세력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물러감으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전도자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들에게 부여하신 권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러한 권능을 주시지 않으면, 과거에 아무리 큰 능력으로 역사한 전도자라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능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막16:17절에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다고 하였고, 행3:6절에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으며, 행10:43절에는,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 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보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힘입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전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절당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거절 당하셨습니다.
그는 고향의 사람들과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가족들조차 그분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 중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도, 그 분의 사랑을 의심하고 복음을 거부하고 미워했기 때문에, 전도로 인하여 당하는 거부나 박해를 두려워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으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아무리 귀하고 놀라운 직분과 능력을 받아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5. 계속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매우 검소한 전도여행을 명령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행이라는 것이 평소에 입은 그대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까운 곳의 1박 여행이라도 그 동안 사용할 물건이 필요하고 그것을 담을 가방이 필요한데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말" 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전도자들의 참된 능력이란 많이 준비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은 오직 주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전도자의 필요를 위해서 채우시는 방법은 다양한데, 특히 초대교회 시대에는 전도자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성도들의 몫이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 나가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조화에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도 둘씩 짝을 지어 나가게 하셨고, 그들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각 지역의 성도들이 그들의 필요를 채우도록 그들의 마음을 미리 감동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실제적인 상황이 무엇입니까?
눅22:8절 이하에 나오는 데로, 예수님이 유월절을 준비하실 때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면서 성내에 들어가면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유월절 잔치를 준비토록 하는 것과 일반입니다.
전도자의 필요한 양식이나 잠자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예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제자된 자의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제자들의 문제점은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여 주는 것은 내 능력이나 수단이나 그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주님을 의지하는가 그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7. 지난 금요일, 저는 일본선교사로 신학교 교수로서 45년 동안 사역하셨던 선배 목사님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그 분은 원래 한국에서 신학교 강사로서 신약성경을 그것도 헬라어를 통째로 암기 하시는 분인데, 고오베개혁파신학교에 유학을 왔다가 돌아가면 얼마든지 좋은 목회지와 신학교 강단이 보장이 되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어려운 영적인 환경 속에서 아주 적은 무리들이 신앙을 지키고 있는 그런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일본 선교사로 헌신을 하게 되었고, 또한 개혁파신학교에서 원어강독의 교수를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고오베에 있는 교회가 건축을 하게 될 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털어서 건축헌금을 하셨는데, 그로 인하여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오랜 세월을 사모님과 두 분이 식사를 하시는데 밥 한 공기에 건더기 하나 없는 멀건 된장국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세월을 보내시면서도 어려운 내색을 하지 않고, 늘 교회 걱정과 병상에 누워서도 후배들을 격려하시다가 83세로 소천 하셨는데, 고오베 교회의 신종국 명예목사님입니다.
우리가 작은 교회라고, 특히 일본에서 사람이 많지 않다고 실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조그만 믿음의 공동체를 보고 감동받아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평생 일본 선교사로 헌신하시는 목사님도 계신데, 하물며 하나님이 이 작은 무리를 보실 때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의 그릇입니다.
믿음의 그릇만 준비되면 물질이 있고 없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되 전도자에게는 특별한 약속을 주셨으니, 곧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막10:29-30) 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8. 마지막으로 10-11절을 보면, 전도자는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도가 되던지 아니 되던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사명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좀 어렵다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사람치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제가 15년 전에 무너져 내리는 마음으로 무작정 호주로 갔다가 그곳에서 나무들을 보고 깨닫고 힘을 얻고 돌아온 적이 있는데, 산의 나무는 한 번 심겨진 자리를 절대 떠나는 법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열매를 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보고 내가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났는데, 나무 보다 못해서야 되겠나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보면 나중에는 뿌리까지 말라버리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도 기쁨과 감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나 성도들이 나무와 같은 마음으로 심겨진 자리를 지키면서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길 때,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로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랬더니 부족하고 연약했던 제자들이지만, 13절에 보니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 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의 능력이 전도자들이 가는 곳마다 행하는 일마다 나타난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만 의지하며 전도하는 삶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명령하시면 빈손으로도 어디든지 갈 수 있고, 한 번 예수님이 심겨 주신 자리가 어떤 자리이던지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 곧 우리가 주님께 받은 사명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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