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17.신앙의 장애물(마가복음6:1-6)

[성경본문] 마가복음6:1-6개역개정

1.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신앙의 장애물(마가복음6:1-6/2019.2.17.오전)


1. 옛날에는 서울 대학교에 합격하면 수재가 났다고 온 동네가 축하해 주었고, 당연히 출세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과거 고려시대 470년 동안에도 장원급제를 해서 정승이 된 사람은 불과 두 사람 뿐이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고려 사람으로서 조선시대에 들어와 우의정을 지낸 유량(柳亮)과 황희 정승과 더불어 청백리로 이름을 떨친 맹사성(孟思誠)이었고, 이런 상황은 오 백년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몽주의 제자로 한글을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정인지(鄭麟趾), 역사학자이며 수양대군의 측근으로 지냈던 권남(權擥), 최항(崔恒), 그리고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 편찬에 공헌한 홍응(洪應)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사람들 대부분이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이르는 혼란의 시기에 활동하던 사람들이고 보면, 장원급제를 통해 승승장구해서 최고의 벼슬에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인생이란 최고의 학벌이나 공부만 가지고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도달하기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런 것 때문에 자신을 과신해서 실패하거나, 주의 사람들의 기대감에 눌려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천재의 약점은 스스로는 잘 해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는 서툴다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최대의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그 분을 닮아가는 삶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믿고 고백하고 순종한다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거나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지식과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가장 중요한 핵심에 이를수록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이 신앙생활에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가12:36절 이하에 보면,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가리켜 다윗왕은 나의 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6절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내 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고백을 세상의 지식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혈통으로 보면 다윗은 예수님 보다 천여 년 전에 먼저 존재했던 까마득한 조상입니다.
그런데 그 다윗 왕이 천 년 이후에 태어날 자신의 후손인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일이며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것을 사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까?
이것은 다윗이 지식이나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감동되어 고백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며 그의 영원무궁한 나라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으로는 생명의 진리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님이 자기 고향을 찾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부가 된 마리아의 아들 목수 예수로 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별 볼일 없는 한 사람의 노동자로 보았으며, 더구나 그의 가정이 남편을 일찍 잃고 홀몸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던 불쌍한 마리아의 가난한 아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도 볼 수도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놀라운 지혜와 생명의 능력으로 말씀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대하면서도, 그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 가운데 가장 크고 놀라운 축복인 줄 믿습니다.

4. 그렇다면 나사렛의 불행이 무엇입니까? 고향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자신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지식과 경험으로만 판단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이웃의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능력에 경탄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자신들의 눈앞에 두고도, 그의 경이로운 지혜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일생일대의 축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본문 5-6절의 말씀입니다.
가는 곳 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과 은혜를 받으며 구원을 경험하거나 질병에서 놓임을 받고, 귀신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그런 은혜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서는 아무런 권능도 행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나사렛 사람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면 일어나는 필연적인 변화는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세상의 욕심과 교만과 자랑과 온갖 쾌락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거나 목적으로 삼고 살다보니, 그것이 주는 인생의 무거운 짐과 죄로 말미암은 저주가 내 인생을 고통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이런 모든 저주와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는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으며, 가난과 부귀를 따지지 않으며 모든 것을 주님의 베푸시는 은혜로 알고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고후5:17) 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힘으로는 스스로의 잘못된 습관 하나도 바꾸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모든 것이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5. 그런데 교회 나오면서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지식으로만 믿고 내 생각 속에 예수님을 가두어 두었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계3:20에 보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예수님 보다 천 년을 먼저 태어났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참된 행복을 깨달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성령님이 다윗 왕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감동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아들은 보이지 않고 목수의 아들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큰 능력을 받고 넘치는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행하시는 이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에 힘을 쏟는 이유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어두운 영적인 눈을 밝혀 육신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하며, 세상의 지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을 밝히게 하며, 연약한 인생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나사렛 사람들은 과거의 인간 예수만 보았기 때문에, 공생애 사역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은 보지 못하고, 그래서 그 분을 배척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6. 낮에는 트럭을 운전하고 밤에는 클럽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가난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는 노래 부르는 것이 행복했고, 그래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온 몸을 흔들면서 독특한 창법으로 불렀고 시간이 가면서 점점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미국의 젊은이들의 저항하는 세대의 아이콘이 되었는데, 그는 엘비스 플레슬리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록큰롤(Rock'n Roll)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음악을 유행시키면서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습니다.그러나 그도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가난한 무명가수였습니다.
처음부터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정상에 올라간 사람도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실패를 경험하고 부끄러움과 후회와 통한의 눈물도 흘렸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모습만 보면 아무도 성공할 수 없고, 누구도 존경하고 따를 수 없습니다.
파사 나라의 모르드개는 수산성의 문지기로 있었던 사람이지만, 역적들의 음모를 왕에게 고함으로 유대인을 몰살 시키려는 대적 하만을 물리치고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자랑할 만한 학벌이나 성적도 없이 성문 문지기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이 그를 높이시니 다른 사람들이 경험해 볼 수도 없는 축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시절의 과거의 모습만 생각한다면 누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그의 형제들과 누이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것을 깨닫기 까지는 가정의 식구들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들은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7.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는 내 지식이나 능력, 소유를 더 믿고 의지함으로 나사렛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는 결코 기적도 능력도 축복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세상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으며, 천사와 성령님의 역사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오랜 세월을 교회 다녀도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지식을 쌓아서 경험을 축적해서 올라가는 세계가 아닙니다.
도리어 그런 것은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은사와 능력을 받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될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백 살에 난 아들을 제물로 바칠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흔들림이 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히11:6)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넘어지게 만드는 장애물들이 많습니다.
교만한 마음에 육신을 자랑하고 욕심이나 허황된 꿈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 보다 뛰어나고 더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의 밑바닥에 내려가지 않고는 절대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이, 세상의 자랑이 결국 신앙의 장애물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축복을 차 버리는 것입니다.

8. 그러나 믿음의 세계 다릅니다.
스스로의 연약함을 깨닫고, 지금까지 가진 지식이나 소유나 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고 오직 그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 장의 종이는 그것 자체로는 매우 연약하고 가치가 없는 존재이지만, 그 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한 장의 종이가 아니라 위대한 작품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그 분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우리가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세상을 바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의 한계는 자신들이 자랑하는 지식과 경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빌4:13) 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실력이나 내 능력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리는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입을 때,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신비와 축복을 체험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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