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3.부활신앙(마가복음5:21-24, 35-43)

[성경본문] 마가복음5:21-43개역개정

21.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부활신앙(마가복음5:21-24, 35-43/2019.2.3.오전)


1. 최근에 일본의 후생성에서 거짓된 통계를 발표하다가 발각이 나서 국회가 소란스럽습니다.

수상부터 장관이나 부서의 고급관리에 이르기까지 국회에 나와서 답변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자가 다 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믿음과 신뢰가 없는 사회, 그런 나라나 그런 인간관계에는 미래가 없으며 그것 자체가 곧 고통이고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삶의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를 향한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요소의 기본적인 터가 되며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 무너지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으며 사회나 국가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이 믿음을 통해서 연결이 되고, 의식주에 관한 모든 것도 믿음이 없이는 안심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이 믿음 위에 문명이 발생하고 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신뢰가 생기고 평화나 화평이 있고 공존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국가나 민족, 사회와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이 아무리 위대하신 분임을 알아도 그것은 단순한 지식에 머물 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지은 죄를 벌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 용서받고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을 믿을 때, 이 세상과 우리의 삶과 미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은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도 눈을 감아버리고 배척하거나 거짓말로 진실을 덮어버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행위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으며, 명백한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내 형편과 생각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다 보니, 하나님의 경고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무시하고 있으니, 결국에는 죄에 죄를 더하고 고통에 고통을 더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먼저 믿는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의롭고 거룩한 삶을 통하여 그들에게 생명과 진리의 빛을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포함하여 혈루증 여인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핵심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34절에 보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의 어린 딸이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찾아와서 살려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딸의 몸에 손을 얹고 한 번만 기도해 주시면 건강이 회복될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5절에 보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미 회당장의 딸이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제는 예수님이 오셔도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은 아이가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믿기만 하라는 그런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모든 인생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육신과 영혼이 분리가 돼 버리면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갑자기 다가온 죽음은 지금까지 인생이 누리던 모든 것과의 이별이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고, 성경에 기록된대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히9:27)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 이외에도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불치의 병으로 더 이상 생명에 소망이 없을 때, 천재지변이나 전쟁이나 다른 어떤 사건으로 우리의 삶의 기반이 다 무너져 내릴 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 두려움이나 근심 걱정 염려 고통을 주는 것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귀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과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지난주의 혈루증 여인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4. 불치병에 걸려도, 인생의 모든 믿었던 것들이 무너져 내려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며, 그 두려움과 고통을 넘어 더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욥의 인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야이로의 입장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인플루엔자 예방 접종을 위해 문진표를 가져왔는데, 아이에게 열이 있다고 써 보내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예방접종을 하였고, 아이는 39도 이상의 고열로 앓아누웠습니다.
병원을 찾아갔지만 입원도 시켜 주지 않고, 학교의 예방 접종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저희 집안은 매일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 그렸습니다.
지역 보건소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학교 교장과 선생님이 매일 찾아왔고, 동네의 정치단체에서 찾아와서 이 사건을 자기들에게 맡겨 달라고 했고, 저희 어머니는 병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아이를 한국에 데려가서 정확한 진단을 해서 사건의 진위를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면서 아이의 상황은 더욱 악화가 되었고 사방이 시끄러워 정신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단은 더 이상 모친도 그 누구도 저희 집을 찾아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교장이나 교사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생각에 오시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밤중에 아이 곁에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인지 환상인지 아이가 깨끗하게 나았고, 놀라 깨어보니 여전히 아이는 고열로 인해 새빨간 채로 겨우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열이 천천히 내리기 시작하면서 며칠 후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4학년 때에는 학교에서 축구 골키퍼를 할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5.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믿음과는 상관이 없이 두려움과 근심과 고통이 찾아오며, 우리가 기대한 모든 것들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분문에서도 오죽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였겠습니까?
사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는 이 말씀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늘 본능적으로 무슨 일에든지 최악의 경우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쌓아두고도 염려하고,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의 흐름도 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조금이라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불안해 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다가오고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지금까지 잘 된 것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고 그래서 고난 속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만드시고 복된 길로 이끌어 주심을 믿기에 장애물을 넘어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6. 사람들은 이제 아이가 죽었으니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는, 온 집안에 죽은 자를 위한 통곡의 소리로 가득했지만, 예수님은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죽은 사람을 잔다고 표현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본문에서 회당장의 어린 딸이 죽은 것을 잠을 잔다고 표현하시는 말의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의학적으로 호흡이 끊어진 상태의 사람을 보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 표현이 잘못되었거나 그 사람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죽었다고 말하는 이 아이를 가리켜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잔다고 말씀하셨으니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죽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거짓말입니까?
아니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의 망언입니까? 아닙니다.
야이로를 포함하여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볼 때에는 아이가 죽은 것이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 아이를 보셨을 때에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생명이나 영생에 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도 요11장에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장면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7.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예수님은 일부러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장사한 지 나흘 만에 찾아가셨습니다(요11:17).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을 만나자 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21) 것이라고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11:11)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슬퍼하고 있는 마리아 마르다 자매에게 하시는 말씀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하셨고, 계속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라"(11:25-26)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혈루증 여인을 치료 하신 후에도 그녀에게 말씀하기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셨고, 여기서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전제 조건이 나를 믿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무덤에 가셔서 마치 잠자는 자를 깨우듯이 "나사로야 나오너라"(43)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은 자를 잠잔다고 표현하신 것은, 상황 파악이 안되어 그렇게 말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 되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사들도 보면 실력이 안 되는 의사는 살 사람에게도 가망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력 있는 의사는 죽을 사람도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 거라사의 광인도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실력 없는 의사들 때문에 혈루증 여인이 12년 동안 재산 다 날리고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도 돌팔이를 만나기 전에 육신과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에게는 죽을 자를 살릴 뿐 아니라 살 사람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 그런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부활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에게 어린 딸이 숨을 거둔 그런 상황에서도 부활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2년 전의 역사 가운데 교회가 받은 가장 큰 능력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믿는 이 믿음이 있었기에 주님의 몸된 이 교회는 2천년 동안 세상의 도전과 권력의 탄압 속에서도 굴복하거나 소멸되지 않고 살아서 이 세상의 구원과 생명의 방주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담력이나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11:19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11장에 보면 많은 믿음의 영웅들의 기록이 있는데, 그들이 가진 신앙의 공통점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신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위기와 고통 속에서도 구원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부활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히11:35절에 기록하기를,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 나기를 원하시 아니하였" 다고 했습니다.

9. 인생에 어떤 문제를 만난다 할지라도, 부활 신앙은 우리 인생의 영과 육신의 그 어떤 문제도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병든 자나 귀신들린 자나 사랑하는 자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자에게도 위로가 되시고 소망이 되시고, 기쁨과 능력이 되시는 것은 그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으며, 내 능력으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서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면, 나를 괴롭히는 마귀는 물러가고, 이 세상은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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