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22.복음의 시작(마가복음1:1)

[성경본문] 마가복음1:1개역개정

1.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음의 시작(마가복음1:1/2018.4.22.오전)

1. 지난 14일자 일본경제 신문의 1면에 컬럼 형식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5년 전에 칸느 영화제에 출품해서 심사 위원상을 받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ー堤枝裕和監督)는 영화 이야기였습니다.
병원에서 출생한 갓난아이가 남의 자식과 뒤바뀐 채로 6년의 세월이 흐른 후,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혈청검사를 통해 제 자식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혈연관계인가, 아니면 함께 보낸 6년의 세월인가를 놓고 두 가정이 겪는 갈등과 고통을 기록하고 있는데, 칸느에서는 이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감동을 받은 전 관객이 영화감독을 포함한 스텝들에게 10분 씩이나 박수 갈채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 같은 스토리가 그것도 50년이 지난 후에 밝혀지면서 그 내용이 텔레비전에도 등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1960년대, 동경의 어느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 어느 모친은 아이가 바뀐 줄도 모르고 그렇게 남의 자식을 키우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혈청검사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병원에 확인을 요구했지만, 의사는 이 부인에게 당신이 불륜으로 낳은 자식을 가지고 무슨 행패냐고 친자 확인을 거절했고, 결국 이 일 때문에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50년의 세월을 남의 자식을 데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가난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아이도 이 사건으로 병들어 몸과 마음이 망가진 어머니와 같이 살 수 없어서 여기저기 친척집을 떠돌면서 살았고, 두 모자는 지금도 극도의 가난과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시작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나마 불행 중에 다행인 것은 지난 4월6일에 동경 순천향병원이 DNA검사를 통해 지난날의 과실을 인정하고 이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2.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인생은 첫 출발, 시작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그 사람의 미래까지도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자식 돌잔치를 하면서, 제일 먼저 아이가 눈앞에 가져다 놓은 물건 중에 무엇을 손에 잡는지를 보고 장차 어떤 인물이 되겠구나 그렇게 추측합니다.
물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입지전적(立志傳的)의 인물이 된 사람들도 많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인생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어렵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도박을 먼저 배운다면 그 인생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평생을 노름꾼으로 살아갈 것이고, 만일에 싸움질을 먼저 배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평생 주먹을 휘두르면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안다는 말이 있는 것은, 자녀들은 부모들이 보여 주는 대로 세상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시작이 중요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출발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마가복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이며,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이 복음은 우리와 온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또한 이 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3.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복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 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좋은 소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성경은 마가복음인데, 마가복음이라고 하면 마가가 기록하여 전하는 좋은 소식, 혹은 기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세상에는 마가가 전하고 있는 복음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이 없는 가정에 아들이 생기면 그것은 그 집안에 복음입니다.
사업이 망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서 사업을 다시 일으킬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은 그 사람이나 종업원들에게는 복음이요 기쁜 소식입니다.
적군에 싸여 전멸 위기에 놓였을 때, 갑자기 아군의 진격 나팔 소리가 들려오면서 적들이 차례차례 무너지는 것을 보면, 그것은 천하에 둘도 없는 복음이요 기쁜 소리입니다.
암으로 소생의 가망 성도 없이 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의사가 당신의 몸에서 암 덩어리가 다 쏟아져 나왔고, 이제 살 수 있으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듣는다면,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 최대의 기쁜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이 우리를 흥분시키고 감격에 빠지고 소망을 갖게 하는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도 그것이 어떤 복음이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본문에서 소개하는 이 복음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예를 들었던 대로 아들이 없는 가정에 아들이 출생하면 그것은 부모님을 포함한 그 집안의 경사요 기쁨의 소식이지만, 강 건너 이 서방에게는 늘상 들려오는 소식에 불과합니다.

4. 대한민국이 북괴의 남침으로 삽시간에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와 국가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있을 때, 유엔군을 이끄는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해서 공산군을 물리치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 것은, 대한민국의 백성에게는 67년이 지난 지금에도 복음 중의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었지만, 저 아프리카나 남미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는 지구촌 한 구석에서 들려오는 약간의 흥미를 끌 정도일 뿐, 큰 관심의 대상은 아닙니다.
도리어 이 소식은 소련이나 중국같이 공산국가의 경우는 그야말로 다 된 밥에 재 떨어지는 격으로 기분 나쁘고 화가 나는 소식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대부분의 복음, 즉 좋은 소식은 한쪽에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지만,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기쁘고 좋은 소식이 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구나 함께 기뻐하고 환영하고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받아들이고 기뻐할 수 있는 복음을 주셨는데, 그것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며, 하나님은 왜 그 분을 우리에게 기쁜 소식으로 주셨습니까? 먼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가리켜 세상의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신자요, 세상의 모든 것의 머리요 근본이며 주인이시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능가하고 앞설 만한 다른 존재가 없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5.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 아들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라는 말은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그 의미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 고영수인데, 뒤에는 제 이름이고, 앞의 목사는 제가 하는 일, 즉 직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직함도 함께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호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과 직함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왕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왕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권력이라는 힘의 도구를 이용해서 백성 위에 군림하면서 그들을 자신의 사유물 쯤을 생각하며 통치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존재하던 모든 왕들과 권력자들은 한결같이 자기 중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나라를 통치하였고, 원하는 대로 백성들을 권력의 도구나 육신의 향락을 위한 시녀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왕이 아닙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 들린 자를 온전케 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가난한 자를 축복하고, 갇힌 자에게 자유를, 고통 당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6. 그가 우리 가운데서 행하신 이런 일들도 놀라운데, 더 큰 일은 모든 인류를 다 죄 가운데서 구원하여 새 사람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히 하나님의 거룩하고 보배로운 자녀로 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소식입니다.
죄와 허물로 고통 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통치 하는 새로운 임금으로 오셨습니다.
이전의 모든 왕들은 힘에 의한 권력으로 백성을 통치 하는데, 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그가 우리를 보실 때 우리는 단순한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된 것은,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던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전2:9절에 보니,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록 우리가 우리의 욕심을 따라 죄 가운데 빠져 우리의 모든 것이 더러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우리의 족보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그의 자녀였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의 거지 나사로 처럼 비록 비천하게 살아도 원래는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7. 그런데 우리가 욕심을 따라 하나님을 떠나 제 마음대로 살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누구인지 도 알지 못하고, 인간이 무엇을 위해서 왜 세상에 있으며, 장차 이 육신이 무너지면 어디로 가야 할 지 알지 못한 채 고통하고 방황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하신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알게 하려고, 우리 대신에 십자가를 지셨고, 그곳에서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 죄를 씻어 주신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하나님을 전연 알지 못하던 로마의 백부장도 이러한 그 분의 죽음을 보고 고백하기를,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토록 우리를 찾으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도리어 우리를 향하신 그 분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8. 1997년 2월15일,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이한영이라는 사람이 북에서 보낸 암살조에 의해 살해 되어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래 본명이 이일남으로 김정일의 부인 성혜림의 조카였는데,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후에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살라는 의미로 한영이라고 이름으로 바꾸고 얼굴도 성형했지만, 점점 타락하여 나중에는 사기사건으로 감옥에도 가고 생활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안기부를 통해서 그에게 온갖 혜택을 주면서 최선을 다해 지켜 주었는데 이 사람은 그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살 소동까지 일으켰습니다.
결국 안기부 사람들과 다투기도 하고, 그들의 눈을 피해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 간첩들에게 노출되어 자기 집 앞에서 사살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귀한 사람일수록 보호가 필요하고 관리가 필요한데, 그러나 타락한 마음은 그것이 귀찮게 여기고 불편해 합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질서요 스스로가 자신을 관리하지 않으면 그 자유는 도리어 재앙이 되고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9. 생명이 귀하면 귀하게 느끼는 것만큼 최선을 다해 관리해야 생명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쓴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돈이 귀하다고 생각하면 관리를 잘 하라는 것입니다.
건강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면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면 생명을 걸고 신앙도 관리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지혜롭게 관리를 잘 하면, 그것이 내게 복이 되고 힘이 되지만, 힘들고 귀찮다고 내버려 두면, 그것이 재물이든지 건강이든지 명예이던지, 그곳에는 이미 잡초가 돋고 벌레가 생기고 마침내 우리 인생은 점점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 생활은 우선 기본만 되면 그 다음 부터는 저절로 굴러가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신앙 관리입니다.
왜냐면 영적인 세계는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열심을 낸다고 당장 무엇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기도 하지 않은 것, 말씀을 멀리한 것, 은혜를 사모하기 보다는 세상을 따라간 그 결과가 점점 무거운 짐이 되어 돌아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선으로 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속히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10. 병원에서는 갓난아이가 바뀔 수도 있고, 부모는 아이가 바뀌었는지도 모른 채, 남의 자식을 제 자식인 줄 잘못 알고 키우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와 허물을 뒤집어 쓴 채, 고통과 저주로 만신창이가 되어서 내가 누구인지 조차도 모른 채 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다 아시고 계시고, 마침내 우리를 찾아오셔서 자녀 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할수록,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의 가치는 더욱 귀한 것이 되고,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큰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저절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 되었고, 원래 하나님의 자녀로서 출발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를 찾는데서 시작하고, 그 시작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이른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1:12) 다고 하였으니, 오늘 우리의 마음을 문을 열고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까지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모든 어둠의 저주와 고통과 슬픔을 몰아내고 영원한 감사와 기쁨과 찬양으로 충만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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