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19.내가 너를 위하여(누가복음22:31-34)

[성경본문] 누가복음22:31-34개역개정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내가 너를 위하여(누가복음22:31-34/2017.3.19.오전)


1. 부활절이 다가오면 많은 교회가 사순절을 지킵니다.사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까지의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말하는데, 올해의 경우는 3월1일부터 4월15일 까지의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예수님의 생애와 고난, 그리고 부활을 묵상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근신하는 그런 귀한 은혜가 있는 절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포함된 누가복음 22장은 예수님의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내용입니다.
유월절의 양을 잡는 무교절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만찬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그리고 체포당하여 대제사장 집에서 밤새도록 신문을 받으시고, 또한 베드로의 부인과 통곡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십자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고, 고난주간이 끝날 때 까지 우리를 향하신 그 분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기도로 고난에 동참하고 감사로 영광을 하나님께 올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22장의 시작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무슨 방법으로 예수를 죽일까 하고 음모를 꾸미며 고민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받아 제거 대상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33년간의 전 생애를 통해서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은 살의와 분노와 미움이었습니다.

2.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을 살면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은혜를 나누고 서로 도움을 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내가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하고 인정하고 반기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미움 받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이 해야 마땅한 그 일들을 대신하여 불쌍한 인생들을 돌아보고 있으니 상을 주고 따르며 섬겨도 모자랄 판에, 구실을 붙여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미워하고 반목하고 질투하며 음모를 꾸미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지금 배가 파선되어 침몰하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 배 안에서 서로 많은 바나나를 가지려고 싸우고 있는 원숭이들과 똑같습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죄 없이 고난 받으시고 미움 받으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지금 가는 이 길은 이미 그 분이 가셨던 길이었고, 그 분이 이루시고 하셨던 뜻이 곧 우리의 소원이고 우리의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3. 왜 예수님의 제자된 가로유다가 스승을 배반하고 은 30냥에 노예를 팔아먹듯이 그렇게 예수님을 배신했습니까?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하고는 그 분이 가시는 길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가롯 유다도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는 애국자였습니다.
다만 제자들이 관리하고 있는 돈주머니에서 몰래 돈을 훔쳐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도 이스라엘의 장래를 염려하는 애국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많은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내노라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말문을 막아버릴 정도로 그 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야말로 로마를 대항하여 우리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참 메시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가롯 유다도 남들처럼 예수님께 기대를 걸고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고민하던 끝에 그가 선택한 수단이 무엇입니까?
배신의 칼을 뽑은 것입니다.
가롯유다는 자기 생각이 옳고,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었던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4. 젊은 사람들일수록 아이돌(Idol), 즉 자신의 우상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우상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런 연예인이나 정치가에게 열광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우상이 자신들의 대리만족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에는, 언제든지 그 우상을 버리고 떠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찌를 듯 하는 인기도 하루아침에 떨어집니다.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당하지 않으려고 연예인이나 정치가들은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자기를 개발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엉터리 공약으로 사람의 눈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가나 지도자는 이런 군중들의 대리만족에 영합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던지 어떻게 평가를 내리든지 자신의 소신대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들입니다.
인류의 문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원하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고통 하는 군중들의 구제와 구원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달을 위한 욕심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처럼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에 기대가 변하여 증오심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11:6) 하셨습니다.
그들은 다 예수님 때문에 실족한 사람들입니다.

5.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무너져 내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러 오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죽음의 고통에 빠진 자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여 사람을 사람답게, 만물을 새롭게, 모든 것을 하나님이 축복하신 그 모습대로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셨지만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그의 말씀과 능력에 매료된 사람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12:13),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마21:9)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일주일도 못되어서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막15:13-14) 하며 그에게 죽음을 선고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어떻게 민심이 이렇게 빨리 변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그 당시의 법과 언론의 역할을 했던 종교지도자들의 선동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모함하고 죽이기 위해서는 거짓증거를 얻기 위해서는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것을 당연한 일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에게도 은 30냥을 주고 스승을 배신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가롯 유다도 여기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6.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때에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치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이방인 총독 빌라도에게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소리가 얼마나 강력하고 분노에 차 있었던지 로마 총독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법치 위에 말도 안 되는 떼 법이 이미 2천 년 전부터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종교지도자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무지랭이 같은 어리석은 군중들이 자신들의 계략에 넘어가서 자신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 한 번 더럽히지 않고 예수를 죽여 없애 버리는 목적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를 푼 격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12명의 제자로 이루어진 이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가롯 유다의 배신 때문입니다.
배신의 행위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사건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고 또한 당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끄럽고 통탄할 만한 사건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도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성경이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여과 없이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는, 인간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7. 본문을 보면 이 배신의 행위가 가롯 유다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2의, 제3의 배신이 이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배신의 행위가 마치 전염병처럼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 31절의 말씀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 다고 했습니다.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믿음직한 베드로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 장면에서 베드로가 무엇을 생각하며 흔들렸습니까?
과연 내가 따르는 이 예수님이 참 그리스도인가?
정말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내가 혹시 잘못 선택하여 잘못된 사람을 따라가다가 헛고생만 하고 도리어 재앙을 당하지는 않을 것인가?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베드로가 많은 갈등과 고민 속에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름은 시몬 베드로 한 사람을 불렀지만 계속해서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지금 베드로와 같은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믿음 하지만 사실은 내 믿음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살기가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이야기 하셨겠습니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리고, 의심하고, 때때로 두려움과 낙심 속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사단이 너희를 밀까부르듯 하려고 요구" 한다고 했습니다.

8. 여기서 밀까부르듯 한다는 말은, 밀을 키에 담아서 위 아래로 흔들어 바람에 껍질이나 티나 다른 불순물들을 날려 보내고 마지막에 밀만 남도록 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렇게 심하게 흔들어 정신을 다 빼놓거나 정신이 하나도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구한다는 말은 마치 마귀가 욥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욥을 괴롭힐 수 있도록 요청을 하고 그 허락을 받듯이, 지금 베드로를 포함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귀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나 제자들은 지금 상황이 마귀, 사단이 자신들에게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만,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마26:31) 고 하였을 때, 베드로가 장담하고 또 장담하면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 고 하면서, 계속해서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에 대답하기를, "내가 주와 함께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고 맹세하였는데, 그 때 다른 제자들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31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들" 이라고 하면서 모든 제자들이 나를 버리고 배신할 것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가롯유다는 자신의 비상한 머리를 믿었고 자신은 지혜로운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내가 배신하면 예수님은 큰 능력으로 반발하여 위기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마귀가 예수님을 배신하도록 만들기 위해 넣어준 악한 생각인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소위 제 머리만 믿고, 제 능력이나 소유만 믿고 날뛰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9.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이 하는 마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 32절에 기록된대로 그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함입니다.
그렇잖아도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믿음을 마귀는 그것도 다 뿌리 채 뽑아 버리려고 했습니다.
마귀의 입장에서 보면 제자들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큰 일 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살면서 늘 마귀의 시험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노출된 채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지 아니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의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문제이며, 우리 자녀들의 문제이며, 믿음의 자손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해답은 본문 3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 는 말씀입니다.
시험과 문제에 빠져 고통 하는 네 형제들을 도와주고 위해서 중보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10. 마귀가 욥을 넘어뜨리려고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 내려와서 완전히 욥을 말아먹을 정도로 그를 처참하게 만들어 놓았던 것처럼, 가롯 유다는 물론이고 베드로와 그 모든 제자들을 욥처럼 만들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단의 이런 계획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그러게 하도록 허락을 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고난당하지 않는 자는 고난당하는 자의 괴롬을 알지 못합니다.
배신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배신 당한자의 슬픔이나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믿음이든지 사업이든지 인생의 어떤 문제이든지 그곳에서 바닥까지 떨어지는 실패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망해 본 사람의 고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바닥까지 떨어뜨리신 것은 고난 속에서 진정한 성공 영원한 성공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다 도망갔지만 가롯 유다처럼 영영 넘어지지 아니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이 모든 일을 미리 아시는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 밤새도로 위해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 덕분에 그들은 배신을 통해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에게 돈을 주는 것은 망하게 하는 것이지만, 기도를 주는 것은 고난 중에 구원의 손길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를 통해서 그들은 다시 일어났고,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이미 그들에게는 받은바 사명이 있었고,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11. 예수님은 우리가 늘 꿈꾸는 봄날 같은 그런 인생이나, 왕자 공주병에 들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닫고,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연약할수록 더욱 더 주님을 의비하여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며,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나타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고난당하는 성도들과 어려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당하시는 고난과 고통의 문제는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하늘의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에도 나를 위하여, 우리의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우리를 위해 지금도 중보기도로 도우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우리도 고난당하다 자들을 위해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며 기도로 도우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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