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26.네가 나를 네 남편이라 하고(호세아2:14-23)
[성경본문] 호세아2:14-23개역개정
14.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네가 나를 네 남편이라 하고(호세아2:14-23/2017.2.26.오전)
2. 지금으로부터 180여 년 전쯤의 에도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에도(江戸)에 스하라미찌모또(須原通元) 라는 의사가 있었는데, 벽을 뜯어내고 그곳에 창문을 만들려고 목수를 불러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런데 그곳에는 큰 도마뱀 한 마리가 못에 찔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못은 이 집을 지을 때 사용했던 못으로, 그 때 잘못하다가 이 도마뱀이 찔려서 오도 가도 못하고 몇 년을 고통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이 도마뱀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서 그 상황을 지켜보니 나중에 또 다른 도마뱀이 나타나서 움직이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이 도마뱀에게 먹을 것을 구해다가 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도마뱀들이 서로 부부임에 틀림이 없다고 단정하고, 조심스럽게 못을 빼어 이 도마뱀을 살려주었더니 함께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렇게 하찮은 동물도 부부의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시종일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 집의 이찌 라고 하는 하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주인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오래전에 어느 집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못된 병에 걸려 회복될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남편이 매달리며 사정을 했지만 뿌리치고 도망을 나왔습니다. 지금 도마뱀을 보니 내 행동이 너무 부끄럽고, 남편이 너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남편에게 용서를 빌고 잠깐이라도 간호를 하고 싶으니 휴가를 달라고 청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주인도 그 말에 감동을 받고 그녀를 내 보내 주었더니 제일 먼저 자기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에게 용서를 빌었고, 그리고 남편에게 찾아가서 용서를 빌면서 이제부터라도 곁에서 당신을 간호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하는 말이, 처음에는 나를 버리고 간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당신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고, 내 병은 나의 운명이며 이제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며, 보다시피 내 뼈와 살은 이미 다 썩어 문드러져서 소망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하면서, 이제는 정식으로 이혼장을 써 주겠으니 제발 날 떠나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찌가 하는 말이 내가 이혼장을 받으려고 온 것도 아니고 당신을 속이려고 온 것도 아니니, 마음이 괴롭고 힘들겠지만 남은 생애라도 당신을 간호하게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자, 그제야 두 사람이 함께 기뻐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일 년 정도 지나서 아내의 품에 안겨서 세상을 떠났고, 이찌는 남아있는 시부모를 계속해서 봉양하다가 늙어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2.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은 돈만 되고 출세만 보장된다면 나라와 민족이야 어떻게 되든지, 내 이웃은 물론이고 내 신앙과 섬기는 교회야 어떻게 되든지, 심지어 내 가정도 자식도 남편도 아내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제 욕심만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이 변질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회개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받고 있는 이유는 자신들의 정체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본은 제일 먼저 내가 누구며 나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며,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중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을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고, 무엇이든지 나를 행복하게만 해 준다면 그것이 바알이든지 아세라이든지 애급의 금송아지이든지 내가 따라가리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호세아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3. 원래 부부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까지는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일본이나 서양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고난 이름 앞에 붙은 성(姓)도 남편의 성을 따라감으로 육체뿐만 아니라 생각도 하나인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식에서 보면 주례자가 신랑, 신부에게 서약을 하게 하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부부관계는 언약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깨어지거나 파기할 수 없는 약속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아닌 다른 이유로 부부관계의 언약을 파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순결을 지키지 못하고 음행을 한 경우에는 그 관계가 깨어질 수 있는 유일한 예외 사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부된 이스라엘은 일방적으로 신랑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고멜로 비유되고 있는 이스라엘은 이러한 순결의 가치를 무시하고, 마치 헌 고무신짝을 버리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서 견딜 수 없는 배신감을 맛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배신감에서 오는 상심과 고통을 호1,2장에서 자세히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란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선택이 무엇입니까?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법적으로 이혼하는 방법으로 음행한 부인을 내 보내는 것입니다.
이 때에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써 주어서 재출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음행한 여자에게는 지나치도록 관대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방법은 그녀의 음행의 죄를 물어서, 많은 증인들 앞에서 법적으로 돌로 쳐서 죽이는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는 음행 때문에 배신을 당한 남편의 정당한 권리였습니다.
4. 그러나 어느 쪽으로 선택을 하던지 법적으로 정당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고 제3의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을 배신한 고멜같은 이스라엘을 다시 사랑하기로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처음 만난 것처럼 그렇게 새롭게 사랑을 하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본문 14절 이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법적인 측면에서 불법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그만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법과 계약과 우주적인 질서를 뛰어넘을 만큼, 진실한 사랑이었고, 반대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그 어떤 값을 치러도 속죄 받을 수 없는 그런 파탄이 나버린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불법이란 의미는 단순히 법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 법을 초월한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에 살면서 많은 교통법규를 범했습니다.
대부분이 주차위반이고 그 다음에 속도위반이나 일시정지 무시에 두 세 번의 접촉사고 등이 있었는데, 한 번도 법적 이외의 수단으로 해결된 적이 없습니다.
꼬박꼬박 점수 깎이고 벌금은 벌금대로 물었습니다.
경찰에 걸릴 때 마다 선처를 부탁했지만, 처음에는 들어줄 듯 들어줄 듯하면서 결국에는 법대로 다 처리를 할 때, 괜히 저자세로 굽실거렸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습니다.
그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저만 봐 줄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습니다.
정말 속상하는 것은 이런 말 저런 말 돌려가면서 상대방에게 기대를 걸도록 만들어 놓고는 결국에는 다 법대로 처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꼬박꼬박 좌절감을 맛보는 줄 알면서도 교통경찰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것은, 정말 일본이라는 나라가 법만 있고 법 이외의 방법이 없는 나라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5.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이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석게 같은 죄에 수도 없이 넘어지는 줄 아시면서도 그들을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기록된대로 이스라엘을 향한 징계와 심판은, 결코 그들을 버리시거나 멸망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다시 한 번 정결한 신부의 자리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 보니 그들이 다시 남편의 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포도원을 (다시) 그에게 주고", 심지어 저주와 멸망의 상징이었던 아골골짜기 조차도,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배신하고 그분을 실망시키며 음란한 여인처럼 그 분을 떠난 것이 한두 번도 아닌데, 왜 이렇게 그들에게 자신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상16:15-17에 기록된대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원래부터 사랑의 관계였으며, 두 번 다시 취소할 수도 없는 언약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 언약, 이 약속, 이 맹세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취소되거나 무효가 되거나 깨어질 수 없는 영원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말씀이요,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에게도 조금도 변함없이 조금도 변개함이 없이 계승되어진 언약이요 맹세인 줄 믿습니다.
6.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주목할 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서 반복되고 있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하리라" 는 말씀인데, 이런 내용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며 이런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죄를 끊어 버리고 더러움을 씻어버리고 악한 습관을 버리고 우상을 불태우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 회개의 역사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지난날을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해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는 인간의 의지나 힘으로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에 나오는 광야나 아골골짜기에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고 한다면 죄로 말미암아 절망 중에 스스로 죽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도 포도원을 만들며, 아골 골짜기에도 소망이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슥4:6절에 말하기를,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눙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힘을 믿거나 사람의 지식이나 소유나 다른 어떤 세상적인 힘을 믿고 행하면 그는 교만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지만, 무능하고 가진 것이 없고 연약하고 병들고 인생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도움을 구하며 그에게 돌아오는 자는 영원한 승리와 축복을 얻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이라도 여호와 하나님, 즉 그들의 남편에게로 돌아오기만 하면, 놀라운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7. 그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16-17절에 기록된대로 바알이라는 이름, 그 저주와 더러움의 이름을 모든 기억에서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바알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불안하고, 바알에게 제사 드리지 않으면 저주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러한 잘못된 모든 기억을 두 번 다시 생각도 나지 않고 그 이름도 부를 수 없도록 다 지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입어 모든 죄를 씻고, 우리의 죄 된 모든 것을 두 번 다시 기억도 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맺으신 그 언약 안에서 모든 만물이 평화를 누림으로 잃어버린 에덴의 축복을 회복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21세기의 지구촌 환경은 인간의 죄와 욕심의 산물로 인하여, 모든 만물이 대적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 환경의 파괴로 인한 재앙은 물론이고, 사람이 먹는 음식도 한편으로는 치유가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병들게 만드는 것은, 만물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서로 대적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8)는 말씀대로 되는 줄 믿습니다.
셋째는, 19-20절에 기록된대로, 과거에 고멜 같았던 이스라엘이었지만, 이제 다시 돌아왔으니 내가 너를 맞이하여 너에게 새장가를 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남편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알게되고, 두 번 다시 배신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8. 결혼을 하면 반드시 신랑이 가져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참금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신부될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미 만물의 축복을 주셨고, 그 위에 19절에 보니,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을 가지고, 20절에는 진실로 이스라엘에게 선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랑하는 신부를 위한 5가지의 지참금은 무엇입니까?
물론 긍극적인 의미로 보면, 본문에 "그날에" 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영원한 세계를 의미하고 있지만,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역사적인 상황에서 보면 이것은,
공의는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이 법적으로 정당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의는 이 혼인이 불법이 아니라 정당한 절차를 통한 혼인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은총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 곧 성실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긍휼은 지난 과거의 허물을 다 덮어줄 수 있는 혈육처럼 피를 나눈 사랑을 의미하며,
진실함은 거짓이 없는 이스라엘을 향한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9. 이 때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23절에 보니,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는 것입니다.
인생이 인생답게 살며, 하나님이 주신 온갖 축복과 은혜를 누리려면 당연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부부관계에서 모든 면에서 남편이 아내를 알고, 아내가 남편을 알게 되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가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아도 그 사람의 속을 알지 못하고, 그 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도 모른다면 그 결혼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고 답답하고 미래가 불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는 매일 우리의 신랑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알아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우리의 믿음은 산을 바다로 옮길만한 능력이 있으며, 그 분을 생각만 하여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 분은 이스라엘에게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장가를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의 남편으로 고백하고 두 번 다시 그 분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 사랑과 그 은혜 안에서 영원한 사랑의 열매를 맺는 축복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