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12.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호세아2:2-7)

[성경본문] 호세아2:2-7개역개정

2.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

3.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4.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6.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호세아2:2-7/2017.2.12.오전)


1.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남에게 많은 피해를 주면서도, 내 생각은 옳으며 내 행동은 올바르고 당연하며, 문제가 있으면 그것은 당연히 타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행동을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다보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고립되어 가고, 생각은 외골수로 변하며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용어 중에 두 가지 중요한 용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개신교를 의미하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가 있습니다.
이것은 외부로부터 공격해 오는 잘못된 세력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리폼드 쳐치 (Reformed Church) 가 있습니다.
이것은 개신교중에도 칼빈주의의 장로교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개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외부와의 영적인 전쟁에 저항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2천년 기독교의 역사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으로는 끊임없는 개혁을 통해 부단히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고쳐나갈 때, 참다운 교회의 모습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항과 개혁의 두 가지의 싸움, 즉 외적인 싸움과 내적인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이 지상교회는 생명력을 잃고 세상의 우상종교와 다를 바가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호세아의 자녀들은 남편된 호세아가 아내된 고멜을 버렸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음란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헌신짝 던지듯이 버리고 집을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호세아는 단호하게 변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멜이 정욕을 따라 남편도 가정도 아이들도 버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고멜은 원래부터 음란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남편이나 아이들은 물론, 이웃 사람들의 눈총에도 아랑곳이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나는 정당하고 올바른데 마치 하나님이 나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 주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면서 모든 잘못이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그런 태도를 보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사회생활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왜곡되어지고 사실과 역사가 거짓 증인들에 의해서 변개되고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러한 태도가 마치 우리의 신앙생활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묻지도 않으면서도 당연히 하나님이 날 도와주실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제대로 된 기도 한 번 드려보지도 않고 계획하면서 그것이 정작 잘못되면 전부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우리의 신앙 수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호세아 가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얼굴에 음란이 가득하고 그 가슴 사이에 음행이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것들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늘 죄악의 세계와 이웃하면서 우상숭배라는 탐욕의 세계와 짝하고 산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축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4. 본문 4절에 보면, "음란한 자식"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죄악으로 인하여 얻은 결과가 얼마나 크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얻은 대가가 무엇입니까?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 이라 했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마치 음녀처럼 하나님을 떠난 그들에게 충격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음녀같이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수치와 헛된 수고와 고통을 안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이 스스로 원해서 언약의 백성이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셔놓고 이것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에 의해 남북왕조로 갈릴 때 이미 애급의 금송아지 우상과 더불어 가나안의 바알 신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우상숭배와 불신앙의 뿌리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깊이 뿌리를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여러 번 그것도 너무 오래 참으셨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우상숭배에 물들 이스라엘의 생각과 삶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보니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면 의식주 문제가 다 해결되고, 인간의 모든 행복이 우상숭배를 통해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돌이키도록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내 인생에 별로 쓸모가 없는 존재요, 때로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으니, 어떻게 이런 곳에서 감사가 나오며 은혜를 사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한 번 잘못된 길로 들어선 인생은 그것 때문에 완전히 망하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5.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물리적인 충돌을 일으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6절에 보니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하며, 두 번 다시 잘못된 상대를 만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인생들이 가는 길을 강제로 막아버리는 것입니까?
이것만이 사랑하는 자를 멸망에서 건지며 이것만이 이스라엘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22:21절 이하에 보면, 모압의 왕 발락이 파죽지세로 광야에 길을 열면서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선지자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거절하던 발람이었지만, 집요하게 요청하면서 막대한 예물로 예의를 다하는 발락의 선심공세에 굴복하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갑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많은 제물과 명예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득의한 줄 알고 가다가 보니 칼을 빼고 서서 길을 가로막고 있는 천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선지자라고 하는 발람은 보지 못했지만, 타고 가던 당나귀는 이것을 보고 도망을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볼 줄 모르는 발람은 당나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두들겨 패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히 특급 코미디 프로입니다.
짐승은 제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고 있는데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부리는 당나귀는 보는데 선지자라는 존재가 천사를 앞에 두고도 눈이 멀었는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6.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면 누가 막습니까? 사랑하는 부모가 말립니다.
형제나 이웃은 한두 번 권해도 듣지 않으면 포기하지만 부모는 그렇게 못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욕심에 눈이 멀게 되면 부모도 자식도 소용이 없는 법입니다.
5절의 말씀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의 타락한 신앙이 어떤 신앙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대상을 물질적인 보증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풍요의 신인 우상 바알을 섬기며 복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영적인 것 보다 물질적인 것을 더 선호하면 이것은 영적으로 우상숭배요 고멜처럼 음란한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남에게 사기치고 도적질하면서 제 자식은 잘 되라고 열심히 교육하는데, 너지나치도록 이율배반적인 생각이요 행동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은혜를 사모하는 자는 생각하고 깨닫게 됩니다.
아! 이것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구나.
그래서 자신을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꾸면서 새롭게 출발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제 고집을 꺾지 않으며 제 감정에만 충실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재앙을 만나게 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영원히 부끄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7. 세상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다 빼앗기고 맙니다.
노름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없고, 도적질해서 형통하는 자가 없으며, 쾌락에 빠져서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떠나서는 구원도 없으며 은혜도 없으며 성공도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사랑이 죄가 되어서 제 자신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커지고, 나를 향하신 그 분의 사랑은 놀랍고, 참된 축복과 성공이 무엇인지 깨닫기 때문에 복된 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축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떠난 자가 자기 행위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습니다.
거짓 증거를 내밀다가 발각이 나도 아니면 말고 식입니다.
자기는 불륜을 행하면서도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도리어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을 손가락질 하면서 바보라고 비웃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와 축복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고멜은 부부의 언약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마음 내키는 대로 육신의 정욕이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8. 야곱의 형 에서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는 잠시잠깐의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자의 명문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습니다.
진짜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뒤로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통해서, 이 장자의 명분이 단순한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축복의 조건이 되기까지 이 일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살았습니다.
호세아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의 신앙과 영성은 두 말할 것도 없고, 한 마다로 이성을 잃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여로보암 2세의 시대가 아무리 살기 좋은 시대였고,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고 하여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에는, 그 황금기가 도리어 큰 재앙과 더 많은 상실을 불러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더 이상 멀리 가지 못하도록 가시로 막으며 담을 쳐서 그 가는 길을 막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7절에 보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 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본 남편은 바알도 아니고 애급의 금송아지도 아니고 오직 저들을 애급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이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이스라엘이 자기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는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 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세상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가는 길이 막히고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이 오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돌이켜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9. 세상에서는 인생의 더러운 과거를 씻을 수 없으며, 세상에서는 잘못된 우리의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지만,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잘못된 것은 두 번 다시 생각나지 않도록 새롭게 하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아6:13절에 보면,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고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간절히 찾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다시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11:11절에도, "그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돌아오게 하실 것" 이라 하시면서, 이스라엘과 이 시대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을 숨김없이 나타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 갑작스런 장애물을 만나거나, 가시나무처럼 우리를 고통하게 만드는 것들이 우리 눈앞에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것인 줄 믿습니다.

이와같이 8절에 기록된대로 우리가 본 남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는 고백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한 신부로서 거룩하고 해 같이 빛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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