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8.지혜가 있는 사람(잠언1:1-7)

[성경본문] 잠언1:1-7개역개정

1.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6.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지혜가 있는 사람(잠언1:1-7/2017.1.8.오전)
1. 이번 신년에 시즈오카의 하마나꼬에서 2박 3일간에 있었던 선교사 수양회는 일본 선교사들에게는 참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성회였습니다.
일본이 단순한 섬이 아니라 기다란 열도처럼 생겼다보니, 동서간의 길이가 너무 멀어서 선교사들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한 번 이동하는데 소모되는 교통비도 비싸고 해서 동서로 나누어 모였는데, 그것마저도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서 각각 양분이 되어 사실 4개의 단체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지난해에 많은 분들이 수고한 덕분에 극적으로 하나가 된 성회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걸맞게, 한국에서 오신 강사목사님들이 영적으로 최고의 수준에 계신 분들이 오셨기 때문에 평소보다는 남다른 은혜가 있었고 그래서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물론 분열된 상처가 하루 이틀에 아물기는 어렵고, 그래서 여전히 물 밑으로는 불평도 있고, 문제점들도 있고, 상처도 있었지만 은혜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된 것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용서가 안 되던 것들도 용서가 되었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도 용납이 되면서 다들 큰 은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선교사님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새 해를 맞이해 놓고,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바로 살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또 복 받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본문이 오늘 잠언 1장의 말씀입니다.

2. 이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의 사건들과 문제를 위해서 지혜를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지혜의 말씀을 들여다보면 여기서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7절의 말씀대로 결론부터 말하면, 지혜의 근본이 되신 하나님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지금 보다는 더 귀하고 보배로운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도 없이 이웃도 없이 혼자 살면 짐승처럼 살아도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인격이 필요하고,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나 단체를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늘 현실에 부딪히는 많은 문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인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도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덕이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는 이것을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인간들의 양심이나 도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강제력을 가지고 우리를 통제하는 법이나 질서와는 다르게, 인간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원리며 그 사회에 대한 행동기준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법이나 질서의 근본이 되는 여호와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사회 한 가운데서 그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도덕적인가를 본문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 이하에 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 하도록 하며, 또한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자에게 지식과 근심함을" 주어서 7절에 결론을 맺기를 "여호와를 경외하" 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도덕이 무엇입니까? 악한 것을 멀리하고 선을 통하여 의를 이루며, 우리의 성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계발하고, 인생의 삶에 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도덕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보면 교과서처럼 배운대로 적용하며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삶에서 시작하여 사회의 여러 가지 조직이나, 심지어 믿음의 공동체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여 이것들이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도 보면 이러한 선악간의 싸움이 있으며,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못하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것을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낙심이 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4.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민하며 고백하기를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서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자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3-24) 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내 마음도 내 육체도 다스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매우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고, 법을 지키면서 살려고 하면 그런 몸부림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곤고한 사망의 몸, 곧 지옥과 같은 고통을 맞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의 인생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드리며, 그 드림과 희생이 우리의 삶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의 힘, 내 혼자 힘으로는 감당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도움을 얻기 위해서 잠언의 지혜의 말씀이 필요하고, 이 말씀으로 우리 인생의 양식을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것을 배움으로 끝내지 않고 훈련을 통해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은 마치 길 없는 광야에 레일을 깔아서 기차를 달리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인생에 내려 주신 사명과 목적을 향해 안전하게 달려가고 목적지에 무사하게 도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5.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건강에 점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 삶을 지탱해 주던 육체의 여러 가지의 생명장치들이 시간이 갈수록 그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비타민도 공급해 줘야 하고, 적당한 운동이나 균형있는 식사나 휴식도 필요합니다.
어쨋던 나이를 먹어도 건강하게 살려면 건강에 관한 법칙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건강장수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영생의 길을 걷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인생의 양식으로 삼고 내 인생의 동반자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시119:105)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로 바로 살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너무 많은 죄로 오염이 되었고 세월호처럼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동북부지역에 쓰나미로 원전이 폭발하니 온 세상이 쑥대밭이 되어 다 도망갔습니다.
다시 그곳을 수습하려고 들어갈 때 민간 특공대들이 방호복을 입고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해도 이미 그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거나 불치병이 들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사실 죄로 너무 많이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유토피아 천국을 꿈꾸던 그 꿈 대신에 매년마다 온갖 재앙들이 차례차례로 이 지구촌을 공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공상과학 영화의 우주인의 공격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이 결국 우리를 서서히 죽이고 멸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6. 그래서 이 죄악으로 오염되 지구촌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살리려면,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지혜의 방호복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오늘 주어진 본문의 잠언의 말씀이고, 시편, 전도서 같은 말씀들입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만들고 죄악에서 구원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지혜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6-9) 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대로 살아서 그들이 믿고 우리가 믿는 이 하나님이 복 주시는 하나님이시오, 자기 백성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아끼시며 사랑하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는 신8:1-10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지혜의 말씀이 사람을 슬기롭게 하고, 학식과 명철과 지략을 더하며 오묘한 말까지도 다 깨닫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7. 이번에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한국에서 오신 강사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지방에 혼자 차를 몰고 가는데 고속도로가 사고로 막혀 국도로 달리는데 시간은 없고 앞에 가는 차가 계속 꾸물대니 추월해서 갔더니 달려와서 멱살을 붙잡고 흔들면서 죽일 듯이 달려들면서 행패를 부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싹싹 빌면서 용서해 달라고 해서 간신히 살아서(?) 나왔는데, 더 놀라운 것은 집회 하는 교회에 가서 집회를 다 끝내고 식사 대접을 받으려고 식당에 갔더니 그 식당의 주인이 바로 강사 목사님의 멱살을 붙잡았던 사람이요, 더 놀라운 것은 그 교회의 집사님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말로 표현이 안되는 자괴감이 들었고 마음이 서글퍼졌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우리가 열왕기하 강해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대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대나라의 멸망 직전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으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바깥에서는 서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남의 탓만 하고 있으니,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8. 사람들은 말하기를 기독교가 십자가의 구원만 너무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독교의 도덕성이 떨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말로만 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보여주어야 따라오고 보여 주어야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쟁이들은 말쟁이가 아니라 진실해야 하고, 약속을 잘 지켜야 하고, 더러운 말이나 헛된 말, 어리석은 말은 멀리해야 하고, 나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나와야 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철저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내가 아무리 잘 대접해 주어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아이들 게임기 들려주면 한두 시간 했다고 절대 만족하지 않습니다.
밤새도록 붙들고 씨름하다가 쓰러질 때까지 멈출 줄 모릅니다.
게임중독, 술이나 마약 중독, 그 외에 여러 가지 중독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만족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파멸할 때 까지 이 중독이라는 이름의 죄가 그 사람을 놓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능력을 주시며 사명감에 붙들려 살게 만들고,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한 것인지 분별하도록 만들며, 그래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분명한 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9. 한국에서 오신 감리교 감독 목사님의 강의가 제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교인이 몇 명이요 물으면, 20명이요 100명이요 하지 말고, 그 도시의 인구수대로 이야기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구가 100만 명이면 100만 명이라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언 듯 들어보면 사기꾼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지혜로운 말이었습니다.
양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양은 20마리라도 아직 들어오지 않고 우리 바깥에는 있는 양이 100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을 듣고 보내 내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길 가다가 만나고 부딪히고 스쳐지나가는 사람은 물론이고,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다 우리 교인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내 생각이나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보면, 아! 내가 이 사람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겠구나.
그래서 빨리 양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나를 섭섭하게 만들고 힘들게 하고 화나게 만들어도 이 사람 우리 교인이고 교인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미운 사람도 없어지고 차별하는 사람도 없어지고 다 사랑하는 마음뿐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사람 속에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쁘고 피곤하고 방심하면 또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지혜의 말씀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들이 내 안에서 내 주인노릇을 하도록 받아들이고 기억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부지런히 외우고 훈련을 받아서 내 삶에 열심히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혹시 내가 잘못된 길을 달릴 때에는 차단기처럼 지혜의 말씀이 내려와서 막아주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10.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혜로운 사람들의 한 두 마디가 자기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 한 두 마디의 지혜를 좌우명으로 삼고 달려갔더니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것들과는 비교가 안되도록 너무 많은 생명의 말씀, 지혜의 말씀, 능력의 말씀, 축복의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보화와 같은 말씀이 너무 많으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길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세상에서 부끄러운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평생을 믿어보니 정말 이 세상에서 우리 하나님 같으신 분은 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그 분의 계획이 놀랍고, 그 분의 사랑이 너무 귀하고, 그 분의 인도하심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지혜의 말씀이 늘 최고의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사카 중앙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 분이 지금도 우리에게 베푸시는 말씀이 내 마음에 내 심령에 떨어질 때 지혜가 되고 능력이 되고 축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이 지혜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고 인생의 지침서로 삼으면,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위대하신 능력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영원토록 함께 하는 줄 믿습니다.

올 한 해도 이 지혜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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