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10.광야 길로 지날 때(신명기2:1-9)

[성경본문] 신명기2:1-9개역개정

1.우리가 방향을 돌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2.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4.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5.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6.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8.우리가 세일 산에 거주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진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9.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광야 길로 지날 때(신명기2:1-9/2016.7.10.오전)
1. 대체적으로 보면 인생의 10대와 20대쯤에는 인생이 무엇이며, 나는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가지고 많은 고민을 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생은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는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흘러가는 인생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성경에서 선민 이스라엘의 출애굽기의 여정을 보면, 그들이 광야에서 40년간 가나안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서 걷고 또 걸었기 때문에, 과연 인생은 길을 가는 나그네 같은 존재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또 다른 의문과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에 있어서 참 행복이 무엇이고 무엇을 가리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 받는 사람은 누구이며, 누가 우리 인생을 축복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당연히 천하를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자기 형상을 따라 우리 인생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그 답을 찾는 것이 당연한 줄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시며 그 분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급에서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모세를 통해 해방을 얻기 까지는 자신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매우 단편적인 것이었고 애급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던 그런 수준을 넘어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사건과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면서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은혜를 체험하면서 그들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장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경험한 광야 40년의 세월은 어떤 세월이었으며, 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얻은 것이 무엇이고 변화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우리도 하나님이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은혜를 베푸심에 감사하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2. 광야 40년 간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어떤 길을 걸었습니까?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을 괴롭히던 불신앙의 세월을 청산하며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애급에 10가지의 재앙을 쏟아 부으시고,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시면서 왜 애급의 군대는 홍해에 던져 망하게 하셨느냐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늘과 땅에 참 신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한 분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서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하나님이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크게 축복하시려는 징조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베푸신 이 큰 구원의 역사 앞에서 이스라엘을 도리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경배하는 대신에 원망하기 시작하였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 대신에 불평, 불만, 불신을 쏟아 놓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이 애급에 있을 때에든지, 홍해 가운데를 지날 때에나, 광야를 통과할 때에나 언제 어디서나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데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환경과 조건이 바뀔 때마다 그들의 마음도 변하고 생각도 바뀌고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 마디로 그들의 불신앙이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러한 불신앙으로는 10년, 20년, 40년, 아니 평생을 걸어가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거나 그분의 약속된 축복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문턱까지 이른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광야로 되돌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축복의 문턱, 언약 성취의 마지막까지 왔다가 다시 고통의 광야로 되돌아가 가고 말았습니다.

3. 모든 것이 잘되는 것 같은데 그곳에 가 보면 실패와 고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광야는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훈련장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의 광야는 영적인 싸움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골이 깊은 불신앙을 뿌리 뽑아서 이스라엘을 근본적으로 거듭나게 하시려고 그래서 광야라는 고난을 통해서 훈련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생활 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는 그 양이 엄청나고 그래서 대도시에서 사람들이 쏟아내는 쓰레기며 오물은 심각한 문제로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가운데 대형 쓰레기는 처리하기가 더욱 힘들고 복잡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골치 아픈 대형 쓰레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불신앙이라는 쓰레기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급에 있을 때에나 이 광야에서 40년간을 걸으면서도 이 대형 쓰레기를 짊어지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뽑아내는 고된 훈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하나님 앞에 충성된 일꾼으로 쓰임 받고,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내 생각과 내 고집을 바꿔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내 안에 뿌리 내리고 있는 온갖 불신앙의 요소들과 이로 말미암은 잘못된 우리의 인격과 삶의 태도를 송두리째 뽑아내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도 생각해 보면, 조금만 힘들어도 낙심하고, 조금만 내 마음에 안 맞아도 속상해 하고, 내 계획대로 안 되면 남을 원망하고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런 것을 고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축복의 땅에 이르지 못함같이, 오늘 우리도 이런 불신앙과 잘못된 생각들과 습관들을 고치지 못한다면 결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4. 그렇다면 누가 어떤 사람들이 가나안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축복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물건들 중에는 가죽제품이 많습니다.
가방이나, 신발이나, 지갑이나 혁대며 거실을 점령하고 있는 소파며, 가죽코트도 많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싼 가죽제품은 거칠고 아무리 사용해도 주인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비싼 가죽제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부드럽고 촉감이 좋고 사용할수록 친근감이 듭니다.
부드럽고 촉감이 좋은 가죽은 그것을 만드는 장인이 계속 두드리고 괴롭히면서 가죽이 품고 있는 기름을 다 뽑아낼 때까지 두들겨 댑니다.
많은 수고와 정성, 그리고 많은 공정과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 내는 제품이 비싸게 팔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혈관에 기름이 쌓이면 이 사람은 얼마 가지 못해서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 속에도 이 같은 불신앙의 기름때가 쌓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불신앙의 기름때를 벗겨 주시고, 그래서 참 축복의 사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광야 40년의 세월을 훈련 받게 하신 것입니다.
수십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마는, 어느 가난한 교회에 가난한 집사님 부부가 계셨는데, 남편이 종이 자르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 건축헌금을 위해 일주일 금식기도를 했는데, 공장에서 일하다가 그만 손가락 두 개가 잘렸습니다.
놀란 목사님 그 가정에 심방을 가서 기도하며 위로해 주셨는데, 나중에 재해 보험에서 나온 184만원을 전액 건축 헌금을 했습니다. 보통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할 일이었지만 이 부부는 자신들이 가진 것이 없으니 하나님이 손가락 두 개를 가져가시고 건축헌금을 할 물질을 주셨다고 생각하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1억 원을 또 헌금을 해서 놀라서 알아보았더니, 그 회사 사장님이 이 집사님이 걱정이 되어 여러 가지로 물어보던 중에 집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사장님이 건축헌금 1억 원을 내어 놓고, 이런 사람은 반드시 우리 공장을 맡겨야 된다면서 공장장으로 승격 시켜 주었다고 했습니다.

5. 폴 틸리히 목사님의 유명한 기도문이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광야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이 광야에 있는 나는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도 때때로 광야와 같은 훈련장을 허락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준비해 놓으신 축복의 세계로,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한 세계로 나아가도록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영혼에 쌓여 있는 영적 기름때가 다 벗어질 때까지, 이 불신앙과 불순종이 다 뽑혀 나가기까지 광야를 돌고 또 돌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불신앙, 이 불순종이 뽑혀 나가지 않는 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놀라운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결코 축복의 자리, 성공의 자리에 이르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 어떤 나라와 민족들과도 전쟁을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금 민족의 생존을 다투는 전쟁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들 속에 있는 불신앙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바꾸고, 불순종을 귀한 열매를 맺는 축복의 순종으로 바꾸는 이 일이 민족이나 국가나 약속, 언약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6. 이것은 우리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 위기라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 보면 전 세계가 위기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어디서 답을 구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어려움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성경에서 답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럴 때는 어떻게 지시하셨는가? 그 때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순종했는가?
그리고 그 결과로 그들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위기 시대에 우리가 사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부터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 반드시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는 가나안의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는 줄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그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이 갇혀 있는 것과는 전연 상관이 없이 그의 삶을 전부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다윗은 집안에서 형제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맷돌로 넘어뜨리고 유명해졌지만 늘 숨어 다니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는데도 그 고난의 배후에서는 하나님이 그를 위해 큰 역사를 일으키셨고, 마침내 이스라엘에서 전무후무한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 죽음에 떨어지는 위기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자굴과 풀무불 속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조상들의 역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복 받으면서 사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길이 없는 줄 믿습니다.

7.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돈 벌어서 그 돈 때문에 타락하고, 욕심 때문에 도적질해서 망하고, 성공한 후에 재앙을 당해 망하는 세상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 문화가 타락하고, 정신세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평생 하나님 앞에 살인자로 남았고, 하나님과 관계없는 불쌍한 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짧게 살았지만, 하나님께 향기 나는 제사를 올려 드렸고, 이 거룩한 제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림으로 모든 시대의 순교자들의 영원한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다닐 때에, 에서는 세상에 나가서 너무 열심히 살았습니다.
에서만큼 남자다운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그런데 세월 지나고 보니, 야곱은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살았고, 에서는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만 살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산 사람은 고생은 많았지만 마침내 엄청난 거부가 되었고, 인본주의로 살았던 에서는 제 마음대로 살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에돔 자손들에게까지 증오와 질투심에 사로잡혀 고통하는 세월을 보내면서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이 후로 하나님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불신앙의 결과는 전진이 아니라 간 길을 또 가고, 돌고 도는 연속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 없는 광야, 모래 바람의 사막이 그들의 평생에 따라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4-16절에 보니, 애급에서 나온 세대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롬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예비된 축복은 너무 엄청난데,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이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된 축복과는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다가 망할 그런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광야의 고난을 통과한 후에, 젓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8. 그러면 이스라엘은 언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까?
첫째는 저들의 불신앙이 청산된 뒤에 들어갔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이 이스라엘 가운데 높임을 받은 이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삶의 방법이 인간의 수단이나 힘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할 때 들어갔습니다.
소를 끌고 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가지뿐입니다.
고삐만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꼬리를 잡아당기거나 소다리를 잡으면 절대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최근에 깨달은 것은 인생살이 모든 것이 원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원리만 잘 지키고 따라가면 세상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원래 연약하고 좌우로 잘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받은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내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면 반드시 성령님은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광야 한 가운데 있다고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찬송가에도 “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리 예비한 힘을 주시며 위태할 때도 안보하시는 주의 영원한 팔에 의지해”(찬406)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면 그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으니, 낙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약속과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가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광야 길은 새로운 길이요, 새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요,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는 기회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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