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27.빈 무덤(누가복음24:1-12)
[성경본문] 누가복음24:1-12개역개정
1.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빈 무덤(누가복음24:1-12/2016.3.27.오전) 1. 부활절이 되면 교회마다 계란을 삶아서 나누어 줍니다. 이유는 달걀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가 부활의 상징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달걀을 사람이 깨트리면 계란 프라이가 되지만, 그 달걀을 스스로 깨트리고 나오게 만들면 병아리가 되고 그것이 성장하면 닭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진리를 깨닫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힘으로는 달걀 스스로가 껍질을 깨고 나오도록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주인인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달걀을 가지고 있어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미래의 축복과, 세상 사람들이 나아가는 미래의 세계는 전연 다른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기독교는 생명의 부활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에게 사죄의 은총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죽은 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구원과 생명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도 귀하지만, 만일에 부활하지 못했더라면 그야말로 기독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능력이요 권세요 소망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무엇이 보입니까? 이미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입니다. 당연히 그곳에 묻혀 있어야 할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거역할 수 없었던 죽음의 그 자리에 누워 계셔야만 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이 빈 무덤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혔고, 유대인들은 그 무덤을 인봉하고 로마 군병들이 지켰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소문이 은밀하게 나돌고 있는 그 때에, 안식일이 지난 이른 첫새벽에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그분의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여인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마가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라고 했습니다. 그녀들이 새벽같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이유는, 예수님의 시신의 보존을 위해서 몰약 나무에서 추출한 향품을 넣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들은 무덤을 향해 달려가면서, 이 일을 위해서 인봉한 무덤의 돌문을 누가 열어줄 것인가 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도착한 여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목격하게 말았습니다. 그곳에는 무덤을 지키는 군인들도 없었고, 인봉되어 있어야 할 무덤의 돌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리고 그 안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여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3. 여인들은 혹시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만 생각했고, 이 일로 인하여 일어날 예측불허의 사태를 생각하며 긴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확인을 위해서 비어있는 무덤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여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곳에는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천사들이 전해준 소식은, 전대미문의 사건의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의 말씀에 보면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고 했습니다. 그녀들이 받은 또 다른 충격은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예수님이 죽는 자들 가운데 계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죽어서 땅에 묻혀 썩고, 믿는 자들의 그 영혼은 하늘나라로 들리움을 받는다고 믿었고,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그슬리고 부활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 소식 그 자체는 이 여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요 혼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천사들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었기 때문에 이 부활의 소식을 반신반의 하면서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21세기 현대인들의 삶의 특징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 재난이나 테러도 불안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경제적인 혼란과 더불어 개인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내일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4. 야구경기를 보면 볼을 던지는 투수가 위기 상황에 몰리면 구원 투수가 등판하여 위기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팀이 한 번 패하더라도 패자 부활전이라는 것이 있어서, 한두 번 패한다고 해도 영영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삶에 있어서는 이런 이야기는 동화 속에나 나오는 꿈과 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두렵고 불안하고, 그래서 늘 긴장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인생에서 실패를 맞보고 패배한 나를 위해 누가 대신해서 살아 줄 인생이 있으며, 누가 내 손을 잡아 실패의 진흙 창에서 건져 주고 새로운 인생길을 걷게 할 자가 있겠느냐 말입니다. 최근에 신문을 보면 자식들이 세상에 나가서 결혼하고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하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결국 손 내밀고 도움을 청하는 곳이 부모들인데, 대개 보면 그 일로 인해서 나중에는 부모와 자식들이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모의 은혜가 고맙고 부모가 자식을 아무리 사랑하고 염려해도 그 자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현실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죽어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으며, 우리 또한 주님의 부활을 따라 영생을 얻는 것을 믿을 때, 인생을 괴롭히며 따라 다니던 모든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 걱정을 이기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요14:1) 고 하셨습니다. 5. 여인들이 왜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었습니까? 예수님이 이미 살아나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인간이 죽으면 부활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만 가지고 걱정을 태산처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존재하지도 않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걱정하고 그것 때문에 불안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문제가 많아도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염려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의 대부분은 실제 일어나지 않는 문제나 사건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망하지도 않았는데 혹시 망하면 어떻게 하나? 지금 건강한데도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죽을병부터 생각하고 이미 그런 병에 걸린 사람처럼 안절부절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살면서 때때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훔쳐 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두려운 현실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의 시체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신 것뿐입니다. 이 여인들이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슬퍼하고 고민하고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도 말하기를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마28:5) 고 했고, 마가복음에는 “놀라지 말라”(막16:6)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불신앙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불순종이 우리를 고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르면 불안하고 안 믿으면 염려로 충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총과 축복으로부터 시작하여, 믿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죽으셨고, 또한 삼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이 부활의 신앙은 우리를 그 어떤 두려움과 염려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며, 그 어떤 문제나 우리를 고통하게 만드는 인생의 모든 문제에서 우리를 해방하고 구원해 주는 줄 믿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분이 다시 사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 이래로 사람을 괴롭히고 그 괴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던 죄와 사망의 권세를 그 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다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리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 (요11:25-26)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그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천사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자들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6절에 보니,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했습니다. 그렇다면 갈릴리에 계실 때 예수님이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눅9:22) 는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알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빈 무덤은 전연 놀라운 사건이 될 수 도 없으며, 시체가 없어졌다고 불안해 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7.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습니다. 모르면 힘들고 알지 못하면 불안하고 깨닫지 못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알고 경험하고 원리를 배우고 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괜히 이것 때문에 고생했네, 그렇게 말하고 끝입니다. 그러므로 빈 무덤은 여인들에게 충격이고 두려움이 아니라, 알고 나면 감사할 일이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실망한 제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이요 힘과 능력과 확신을 주는 일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처럼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에는 동일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죄가 전연 없으신 분이시며, 그 안에는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신성으로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는 인류의 죄 짐을 대신 지셨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영원토록 사망에 정복당하고 무덤 속에 갇혀 계실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주요 소유자며 모든 생명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증거하기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3)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빈 무덤은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가 되심을 증거하며, 만물을 지배하시는 주권자로, 죄와 사망과 저주를 이기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8. 이 여인들처럼 두려움과 놀람과 불안에 사로잡힌 존재가 아니라,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분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이 없으며, 그 분의 모든 말씀이 반드시 성취되며, 말씀 자체가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생명이요 진리인 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빈 무덤을 보고 영원한 생명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이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고 소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어떤 미국 목사님이 부활신앙에 대하여 알기 쉽도록 만든 유명한 예화가 있습니다. 바다 속에 어머어마한 큰 뱀이 다니면서 많은 물고기를 잡아 삼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크고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 한 마리를 집어 삼켰습니다. 이 물고기는 캄캄한 뱀의 뱃속에 들어가보니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날카로운 무기인 지느러미로 그 뱀의 배를 찢고 나왔는데, 그 때 그 안에 갇혀 있던 많은 물고기도 함께 따라 나와서 살았고, 그 뱀은 배가 찢어져 영영 죽었다고 합니다. 이 뱀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에 생긴 사망입니다. 그래서 죄 지은 인간은 남김없이 이 사망이라는 뱀이 다 삼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망은 예수님도 삼켜버렸지만, 예수님은 죽음의 문을 열고 다시 부활하셨고,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살리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의 신앙인 것입니다. 9. 이제는 더 이상 사망은 인간을 영원토록 삼키거나 가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무덤 문을 열고, 사망의 세력을 깨트리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따라 부활 신앙으로 천국을 바라보고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죽은 자도 살리고, 연약한 심령도 강하게 하며, 잘못되거나 병든 신앙도 고치고, 못 자국 난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면서 의심 많은 도마를 믿음의 반석위에 세우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렇게 세워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부터 예수님의 빈 무덤은 두려움이나 염려나 불안의 대상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의 기쁨이요 죄와 사망을 이긴 승리의 상징이요, 의심과 연약함을 버리고 확신과 소망을 더해주는 영원한 축복의 상징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부분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이 말씀대로 오늘부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그 분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부활신앙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