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독수리의 날개를 타고(출애굽기19:1-6)

[성경본문] 출애굽기19:1-6개역개정

1.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독수리의 날개를 타고(출애굽기19:1-6/2015.12.27.오전)
1. 오사카에도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교회 안에서 사소한 문제 하나만 일어나도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고, 섭섭한 말 한 마디에 원수처럼 갈라서고, 은혜 받을 때는 좋아해도 그 은혜가 떨어지면 보따리 싸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초창기 멤버들이나 10년 이상의 세월을 주님만 바라보면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에 비해서 좋은 점이나 특별한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사람들은 목회자가 우리 목사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망을 듣거나 섭섭한 말을 들어도 그런 것으로 문제를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토라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오해하고 도망가는 것이 오늘의 교회의 현실입니다.
다른 교회서 오시는 분들은 보면 교회를 이리저리 재어보고 생각하고 이러니저러니 비판하고 핑계를 늘어놓지만, 이 교회를 내가 섬기는 내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속상하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내 부모나 내 자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넘어갈 수 있는데, 남의 집에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동안에 신앙생활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광야생활입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모든 것이 불편하고 비정상적이고 대단한 인내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불평이 쏟아지고 원망이 넘쳐나고 사소한 일에도 시비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광야생활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예 넓고 비옥하고 선진 문명으로 뛰어난 애굽에 다가 새 나라를 세우게 하지 않고,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고생을 하게 한 후에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본문 6절이 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택함 받은 이스라엘은 애굽 나라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소원을 성취하면 그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며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6절의 이 말씀의 의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분의 주권에 의한 사명을 가진 백성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사명이 있는 사람의 삶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사랑을 위해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인격자를 양성하고 한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헌신하고 투자하지만, 사명감도 없고 인생에서 참된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귀들처럼 달려들고 싸우기 마련입니다.
나라꼴이 왜 이 모양이냐고 불평하면서 이곳에서 더 이상 못 살겠으니 이민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태어나도 이 나라는 내 나라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합니다.
어제 일본 NHK에서 한 사람의 인물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비운의 왕비로 불리는 이방자 여사가 계셨는데, 일본의 황족이지만 1916년 15살에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영친왕과 결혼하고 1963년에 병든 남편과 귀국을 허락받아 한국에 들어와 낙선재에 살면서, 1989년에 세상을 떠날 때 까지 한국의 지체부자유 아이들을 섬기고 가르치면서, 조선의 한복을 세계에 알리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비록 일본 사람으로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사람이라는 각오를 가지고, 그리고 대한민국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에 주인 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을 가지고 살아도 그런 사람은 평생 종으로 살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방자 여사는 대한민국인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산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3.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특별히 택한 내 소유된 백성, 내 사랑하는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 자기 자녀를 어떻게 다루고 계십니까?
4절에 보니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기근으로 망해가던 애굽을 도리어 번성하는 대국으로 만들었던 요셉의 공로를 세월이 가면서 다 잊어버리자,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에서 당하는 고난을 독수리의 눈처럼 다 보고 계셨고,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대로 다 갚으실 때, 애굽의 역사이래로 전무후무한 10가지의 재앙으로  치셨고, 그 재앙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최근에 텔레비전에서 영화 십계 2편을 보았는데, 첫 영화는 1956년에 세실 B 드밀 감독이 만들었고 챨톤 헤스톤이 주인공 모세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작년에 만들어진 「엑소더스-신과 왕」 이라는 영화로, 21세기의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어졌지만, 아무리 봐도 60년 전에 만든 영화가 주는 감동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나중 영화는 기술은 뛰어나 현장감은 있어도 신앙적인 요소가 다 빠져 있었습니다.
성경에 쓰인 대로의 내용에만 충실해도 좋은 영화가 되었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기독교 영화의 핵심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그 분이 믿는 자들 가운데 행하시는 사랑과 능력을 자랑함에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과 조건에 빠져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불안해 할 이유가 없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다 아시고, 자신의 눈동자처럼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4.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실 때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마치 오늘날로 말하면 대형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 가는 것과 같습니다.
올라타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고통을 당해도 제 스스로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예비하신 그 구원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그들이 창칼로 무장하여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떤 외교적인 노력으로 얻은 것도 아닙니다.
출14:13절에 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바로 이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그의 자녀가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공로나 소유나 다른 어떤 인간적인 조건에 의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러 죽어 주심으로 영육 간에 영원한 자유를 얻었다는 이 사실 하나를 믿어 구원받은 것입니다.
인간이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있다고 하면 하나님이 날 위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5. 삼십 수 년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개척교회를 시작했느냐 하면, 누구누구가 얼마를 도와주고, 어떤 사람들 몇몇이 와서 힘을 합하면 교회가 되겠다는 생각에 시작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내게 개인 재산이 어느 정도 있으니 이것 가지면 언제 까지 버틸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시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시작은 이런 이야기하고 거리가 멀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데 저 보고 맨 땅에 헤딩했다고 하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한 것이니 하나님이 책임 져 주실 것 믿고 시작한 것입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 교회는 제가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건을 만드시고 그 사건에 제가 우연히 개입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31년의 세월이 지난 것이니 하나님의 은혜 이외에는 설명이 안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의 구원을 독수리의 날개에 업은 것으로 표현합니까?
표현이 독수리의 날개에 업은 것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등에 업혀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친히 등에 업어서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6. 오늘 본문을 보면 분명한 사실 2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5절에 보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배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내 말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키면” 그렇게 된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 언약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행위와는 관계없이 이미 하나님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바로 임금이나 그 나라 사람들이 볼 때 자신의 애완동물보다 가치 없는 그런 존재로 보였지만,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배와 같은 존재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그 언약을 다시 상기하여 그 언약에 합당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구약시대나 신약 시대나 사랑의 대상으로서, 보배로운 존재로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보물은 함부로 굴리거나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소중하게 다룹니다.
여기서 내 소유라는 말은 다른 의미로 보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특별한 관계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신7:6절에서는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 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보물에 백성이라는 단어를 더하여 뜻을 더욱 확실하게 했습니다.

7. 우리는 남다르고 대단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또한 그런 관계에 있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이스라엘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둘의 관계가 특별한 관계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본문 5-6절이 그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약에 충실함으로 열방 중에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는 그런 민족이 되길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시 그 어느 뛰어난 민족이나 개인이라도 누릴 수 없는 특권이었습니다.
자격도 없고 그런 것을 누릴만한 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을 특권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내가 수고하고 희생하고 노력해서 얻은 것은 특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런 미천한 존재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입은 것을 가리켜 독수리의 날개에 업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는 특별하신 목적을 가지고 부르셨고, 아브라함의 연약함이나 부족함과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것을 이루셨던 것처럼, 애굽에서 종살이로 신음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구원하심도 특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8.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이 바로 제사장의 사명이요, 이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기적과 능력을 베푸실 뿐 아니라, 광야의 훈련까지 감당하여 열방에 뛰어난 민족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제사장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역할입니다.
그런데 중보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남들과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어느 큰 술집이 도산하고 팔려서 교회가 그 건물을 인수하여 수리한 후 교회가 되었는데, 첫 예배를 드리는 날 보니 술집 하던 주인이 두고 간 앵무새를 교회 입구에 두었더니, 목사님을 보고는 새 주인이네, 성가대를 보고는 새 팀이네 하더니 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 그 손님이네 그 손님이네 하더랍니다.
하나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아 죄 가운데서 구원 받았기 때문에 거룩함을 생명처럼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오늘 우리에게도 제사장의 사명이 있다면 거룩함은 더욱 소중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그런즉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이는 너희를 어두운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2:9) 고 했습니다.

9. 독수리의 날개에 업혀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도리어 제사장이라는 거룩하고 특별한 신분이 주어졌습니다.
제사장이라는 신분을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왕 바로의 소유물로 있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바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이 받은 사명이요 새로운 신분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애굽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내 뜻대로 되면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요 성공인 줄 알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보니 세상의 성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새로운 신분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가리켜,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 (사61:6)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사명 감당하도록 광야 같은 이 일본 땅에서 우리를 자신의 날개에 업어 여기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내년에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함께 이 독수리의 날개를 타고서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신천신지와 같은 2016년의 일본 열도와 세계의 하늘을 날면서, 하나님께는 영광을, 이 땅에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영적 제사장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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