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0.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중에 평화(누가복음2:10-14)
[성경본문] 누가복음2:10-14개역개정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중에 평화(누가복음2:10-14/2015.12.20.오전) 1. 죄를 지어 감옥에 가면 일반 죄수들은 여러 사람이 한 방에 모여서 지내는데, 그 중에 규칙을 어기거나 난동을 부리는 죄수가 있으면 독방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죄수들은 감옥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독방에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호텔 같은 곳에 가면 독방을 선호하지만, 감옥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동료들끼리 얼굴을 대면하고 서로의 표정을 읽으면서 나누는 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매를 맞거나 기합을 받아 고생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독방에서 며칠을 보내면, 마치 금식한 사람처럼 기운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온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사람에게는 떡도 중요하고 의식주가 필수조건이지만, 대화가 없는 삶, 격리된 채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도리어 사람을 고통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말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화가 중요하고 말이 필수적인 삶의 요소라고 해도, 음식에 따라 사람의 성격과 생활 습관이 달라지듯이, 우리가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어떤 말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가치와 미래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연인끼리의 사랑의 고백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부모님과 주고받는 대화는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는 지혜와 지식을 더하게 만들고,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는 신이 나고 힘이 솟아오르게 합니다. 특별히 주일에 교회 나와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고 대화하고 식사를 나누며, 또 말씀 공부와 섬김을 통해 온 교회가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할 줄 믿습니다. 2.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고,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과 은혜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내부로부터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새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만 가지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이 세상과 온 우주를 창조하였으며, 죄를 지어 저주와 고통에 빠진 인간을 모든 죄에서 구원하고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인간의 육신과 그 심령에 있는 그 어떤 질병도 치료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며, 귀신도 좇아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급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되어진 사건입니다. 40년간 광야의 생활의 모든 문제도 여호와의 말씀의 능력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누리는 것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2015년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며 새해를 준비하는 것도, 말씀에 순종하고 인도함을 받은 결과인 줄 믿습니다. 3.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하는 4, 11, 15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가 다윗의 동네라 불리는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베들레헴은 요셉의 조상인 다윗의 본적이고, 요셉은 그의 후손이기 때문에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라 호적을 만들려면 고향을 찾아가 그곳에서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만삭이 된 마리아를 데리고 요셉은 이곳을 찾았습니다. 이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 10킬로쯤 떨어진 높은 언덕에 세워진 도시로,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로 국교로 선언할 때, 신앙심이 돈독한 그의 모친 헬레나여사가 이 베들레헴을 방문하여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마구간 자리에 성탄기념교회를 세웠고, 지금까지 전 세계의 순례자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이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한 때는 팔레스틴 사람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말미암아 이 교회가 파괴되기도 했지만, 서기 500년경에 다시 재건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 탄생 교회를 들어가려면, 문은 오직 한 군데뿐입니다. 그것도 가로80센티, 세로120센티의 아주 작은 문으로 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중요한 성지의 입구를 작게 만들어 놓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왕 중의 왕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그 누구라도 예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굽히라는 뜻에서 이렇게 작은 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4.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다윗왕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첫째는 온 인류 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려고, 둘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문제는 왜 평화의 왕이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평화 대신에 끊이지 않는 전쟁과 고통과 두려움이 인간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까?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 분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가 처음 시작되던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평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쉽게 깨어지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후로 사람들은 가정 안에서 평안을 원하고, 나라와 민족이 평화를 원하고,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참된 평화를 소원하고 있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분쟁과 고통만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욕심과 교만, 질투와 미움이 이 평화를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죄는 모든 것을 파괴했고, 지금도 온갖 좋은 것들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가이사 아구스도」는 줄리어스 시저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로,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를 정복하고 그것을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帝政로마 시대를 열었고, 정치, 경제는 물론 문학과 건축술에도 로마의 황금기를 가져온 인물이었습니다. 로마인이라면 누구나 그를 진정한 구세주로 믿을 정도로 능력과 인기가 대단했기에, 자신의 생일이 있는 8월 달을 새해의 시작으로 삼을 정도였고, 사후에 신으로 인정받는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로마제국 국민들과 함께 추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의 평화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에는 평화가 오지 않았으며, 도리어 로마를 중심으로 전 세계는 정복자들의 칼날 아래 21세기에 이르도록 고통과 죽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5. 그러나 이렇게 인류가 잃어버린 평화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오심으로, 십자가의 복음이 이르는 곳마다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에서 원하시는 평화는 구약에서의 샬롬이나 신약의 에이레네가 아니라, 단순히 전쟁이 없는 평온한 세상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던 모든 인류를 화해와 화평으로 회복하는 궁극적인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의 가이사처럼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군사와 같은 그런 방법으로 평화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으로는 참된 평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 것은 도리어 더 많은 차별과 분쟁과 고통만 가중 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시작된 하나님과 대적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먼저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심으로 이루었습니다. 그는 고난과 희생의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을 고통하게 만드는 모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으로 오셨지만 결코 왕궁에서 나시지 않으시고,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나심으로, 스스로 겸손을 통해 평화를 이루시길 원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강남의 유명한 교회에서 교인하고 목사님이 재판정에서 싸움이 났습니다. 암에 걸린 신자가 목사님에게 기도해 달라고, 병이 치료되면 막대한 돈을 헌금하기로 했고, 그래서 온 교인들이 이 사람을 위해 40일 특별 기도를 했는데 병이 나았습니다. 암에 걸려 죽어갈 때는 돈 보다는 목숨이 커 보였기 때문에 막대한 돈을 헌금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살고 보니 목숨보다 돈이 더 커 보였습니다. 불신 법정에서 온갖 추태를 부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에 먹칠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병은 목사나 교회가 고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것이고,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 하는 사람도 법으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병이 꼭 나아야 다 좋은 것이 아니며, 모든 기도가 다 응답된다고 다 좋은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6. 하나님이 인생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본연의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도 인간에게는 평화가 필요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두 가지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들이 도적질 하고, 그분의 영광에 먹칠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라는 죄가 서로 싸우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고 그 욕심이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도 도적질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도적질이라고 하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지하여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제 마음대로 훔쳐서 먹기 시작한 것이 도적질의 시작이었습니다. 가롯유다도 그랬고, 초대교회 아나니아 부부도 그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온갖 도적질이 횡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적질 중에서 제일 무서운 도적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사람이 한 것처럼 자랑하고 그 영광의 대가를 가로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팔면서 복음을 빙자하면서 교회 이름을 내 걸고 속이고 협박하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 사이에 있는 평화를 깨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백혈병에 걸린 11살 소년이 있었는데 항암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많은 노숙자들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저 배고픈 사람들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고,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이 사실을 인터넷에 올렸더니, 미국 전역에서 3,500여명이 2주 동안 먹을 수 있는 기부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소년의 이름은 브랜든 포스트였고, 아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따뜻한 마음을 남겨 주었다고 합니다. 7.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깨어진 평화를 회복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평화는 본문에서 “사람들 중의 평화” 라고 함으로, 나 혼자 만의 평안이나 평화가 아니라 모든 나라와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참 평안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아낌없이 희생하심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내 뜻이나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아낌없이 드림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참된 평안과 평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6:33절에서는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과 평화는 사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시고, 자신을 드리고 희생하심으로 평화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마리아도 처녀의 몸으로 천사의 방문을 통해 수태고지를 받고 얼마나 놀랐고 두려워하였습니까? 이것은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할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심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8. 인생이 갈등과 반목과 두려움 속에 살아도 예수님을 만나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분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고 그 고난의 죽음을 통하여 생명의 부활과 더불어 영원한 평화, 즉 영원한 화목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평화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우리 안에 주인으로 모셔 들일 때, 그리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이 땅에 참 평화가 충만하며, 하늘에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