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6.예수 그리스도는 왜 오셨나(마태복음1:1-16)

[성경본문] 마태복음1:1-16개역개정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 그리스도는 왜 오셨나(마태복음1:1-16/2015.12.6.오전)
1. 대한민국 사람치고 족보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웬만하면 집안에도 족보 책이 있으며, 자신이 어느 씨족의 어느 가문의 몇 대손이고, 그 조상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쯤은, 어른들이 하시는 말에 귀 동냥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런데 조상의 이야기를 하면 제 조상 보다 위대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조상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족보를 보면 다 깨끗합니다. 절대로 지저분하고 부끄러운 것은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비록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해도 이런 저런 영광이 있고 권세가 있는 가문에서 내가 태어났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어쨋던 족보나 조상 이야기는 자랑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족보 내용을 보면 누가 누구를 낳는다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혈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라면, 아무리 양보를 해도 이런 족보는 절대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본문을 보면 5명의 여자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절에서 다말이 나오고, 5절에서 라합과 룻이 나오고, 6절에 보면 우리야의 아내가 나오는데 이것은 밧세바를 말하고 있으며, 16절에서 요셉의 아내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야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16절의 마리아를 제외한 여자들은 예외 없이 그녀들의 과거가 예수님의 가문에 똥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말은 가나안 여인으로 유다의 장자인 엘과 결혼했지만, 엘이 일찍 죽자 유다는 그녀를 친정집으로 쫓아 보내었고, 불만을 품은 다말이 창녀로 위장해서 그 시아버지를 유혹하고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라고 하는 쌍둥이 아들을 낳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 해도 용납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이런 인물이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히 올라가 있습니다.

3. 그 다음에 나오는 라합은 모압 출신으로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해 나아갈 때, 그 길을 가로막고 있던 여리고성에서 술을 팔고 몸을 팔던 기생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에 숨어 들어온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발각이 나서 생명이 위태로울 때, 그들을 숨겨주고 왕에게 거짓 증언하여 그 사람들을 살려준, 국가적으로 말하면 배신자였습니다.
그리고 룻의 경우도 이방인 모압 출신의 여자로 유대인 엘리멜렉과 결혼했지만, 자녀 없이 남편이 죽자, 시모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와서 보아스와 재혼하고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되는 오벳을 낳았습니다.
또한 밧세바는 어떤 여자입니까?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로 자기 남편을 죽인 사람의 유혹에 넘어가 그의 아내가 된 여자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다윗 왕이 이 여자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그 남편을 억울하게 죽게 만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왕의 아내가 된 여자입니다.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어느 여자라도 형통에 문제가 없는 여자가 없으며, 대부분 행실에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왕의 후손인 이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런 여자들의 이름을 숨김없이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족보는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21세기의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족보를 낱낱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4. 그리고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 여자들이 기록된 것 이외에도 많은 의문점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나, 야곱의 아내인 리브가의 이름은 왜 기록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자랑할 이름은 생략하고 대부분 부끄러운 여자들의 이름은 당당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단순하게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라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 어떤 과거가 있었던지 관계없이 다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서 허물과 죄가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이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영육간에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전능하신 자의 손에 의한 구원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면서 느끼는 것은, 죄가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고, 용서 받아서는 안될 죄인이라고 해도, 그럴수록 그런 사람들일수록 메시야의 구원이 절대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 없으면 영원히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말아니 라합이나 룻이나 밧세바 같은 사람일수록 그들은 죄인이었고 연약하고 소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5. 때때로 사람들이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가운데서의 구원을 하나님께 두지 아니하고 연약한 인간인 제 자신에게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죄가 많고, 내 인생이 연약하면 하나님도 나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래서 나같은 것을 구원하실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과 그 능력은 인간의 생각에 좌우될 만큼 그렇게 허술하거나 연약한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위한 그 분의 구원하심은 완벽하고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져 온 것이며, 인간의 그 어떤 행위나 생각에 전연 연향을 받지 아니할 정도로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요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를 사람들이 붙잡아서 예수님께 끌고와 그녀를 심판해 주길 원했는데, 예수님은 그녀를 심판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용서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집요한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녀를 향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땅에 몸을 굽혀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6. 사람들은 그녀가 붙잡힌 현장, 즉 간음의 현장에 있었던 이 죄인 된 여인만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에 대한 심판, 정죄의 현실을 넘어서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그녀의 상처와 슬픔과 외로움까지 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인생에 대하여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오직 더러운 행위에 대한 대가로 심판받아 마땅하다고만 생각하고 이 사건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의한 심판만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녀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더 깊은 인생의 고뇌와 슬픔, 인생의 고통을 보셨기 때문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일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혀 온 이런 여인 같은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도무지 용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래서 그녀에게 돌을 던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서 율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심판받아야 마땅하고, 사람들에게 용서조차 구할 수 없는 그렇게 불쌍한 인생을 용서하시고 그 모든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치 정의의 사도들처럼 율법에 충실한 믿음의 사람들처럼 의기양양하게 돌멩이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의 교활함과 잔인함과 위선을 함께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는 것입니다.

7.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늘 내가 좋아하는 한쪽만 보고 그 한쪽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다른 한 쪽에 대해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거부하고 더 이상 생각조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잘못된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뜻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그녀에게 죄가 없다고 선언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불쌍히 보시고 용서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럴 때 생각하기를, 여자가 옳고 율법이 잘못되었다고 오해하거나, 아니면 예수님이 율법을 잘못 적용하고 계신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이란 사람들의 숨은 죄를 찾아내고 그것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 율법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대신에 심판하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 잘 믿는 신앙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고, 일부는 신성 모독죄로 예수님을 심판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행위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근본적으로 말하면 사람에게는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8. 저는 지난주에 주님으로부터 용서의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남을 용서할 수 있고, 도리어 제가 그들에게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오신 선교사님들과 함께 세미나에 참석해서 공부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일본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하니, 한 방을 쓰시던 선배 목사님의 이야기가 그 나라의 선교사는 그 나라 사람들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처럼 조용하고 예의가 바르고 남을 배려한다는 뜻에서 하신 말입니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의미로 우리는 어느 나라의 사람들이며 누구를 닮았습니까?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요 천국 백성들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임금이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도리어 다말이나 라합 같은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돌멩이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면, 우리는 천국 백성이라고 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런 여자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기 위해 오셨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인들끼리 서로 정죄하고 비난하고 용서 없는 무자비한 돌멩이 심판에서 이중적으로 절망하고 있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가 죄로 말미암아 고통과 절망에 빠진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 오셨다면 우리도 용서의 삶을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9. 우리는 비록 허물과 부끄러움이 많은 그런 족보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렇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는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흐르는 귀한 족보를 받았습니다.

우리 가정과 자자 후손에게 이와같은 사죄의 은총이 넘치는 십자가의 복음의 족보를, 아름다운 신앙의 족보를 유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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