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16.하나님이 보시는 것(열왕기하 14:23-15:7)

[성경본문] 열왕기하14:23-29개역개정

23.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

24.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5.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6.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28.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싸운 업적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이 보시는 것(열왕기하 14:23-15:7/2015.8.16.오전)

1. 제가 첫 손녀를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신생아와 성인이 다른 것을 알았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신생아는 언어로 의사 전달이 안되기 때문에 대소변을 기저귀에 쏟으면 울음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배설물을 치워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위에서 지켜보는 어머니도 일일이 확인해 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기저귀를  갈아 주지 않으면 그 안에는 엉망이 되고 아이는 불편하기 때문에 계속 울고 보채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엉망이 된 것을 보고 아이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성인들의 경우는 자신이 영적으로 병들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생겨도 이상하게 이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신생아는 자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도와 달라고 울음으로 신호를 보내지만, 성인들은 자신이 병들고 잘못되고 있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더 빨리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충고도 하고 도움을 주려고 해도 절대로 듣지 않으려 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엉망진창이 되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나서 후회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마음에 교만이라는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2. 저가 목회 초년병 일 때, 수천 명 수만 명 목회하시는 분들이 부러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산에 올라가 밤새도록 부르짖고, 금식도 하고 성경도 수십 번 독파를 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들과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 분들은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나는 어렵게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볼 때 성공적으로 목회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다 성공이 아니고, 성공적인 목회를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나 세상적으로 보던지 성공하고 인기를 얻고, 마음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져도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삼상16:7)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진실한 마음을 보시고 사용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참된 성공과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 임하는지 깨달아 우리도 복된 길로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3. 오늘 주어진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에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41년간 통치하였고, 유다에서는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어 52년 간을 통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대에 대단한 축복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남북 왕조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으로서의 재위 기간이 둘 다 상당히 길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두 사람은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면서 국토를 확장하고 나라를 위해 많은 일에 힘을 기울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에 대한 평가가 각각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여로보암 임금은 24절에 보니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고 하였고, 아사랴는 3절에 보니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혼동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나오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정확히 말해서 여로보암 2세라고 불러야 합니다.
여로보암 1세는 솔로몬의 사후에 나라를 찢어서 이스라엘을 건국한 임금이고, 여로보암 2세는 여로보암 1세가 죽고 약 120여년 이후에 나타난 임금입니다.
그리고 유다 나라의 아사랴 임금의 이름이 역대하 26장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이름인 웃시야 임금으로 나오는데 물론 동일한 인물입니다.

4. 문제는 이 두 사람이 다른 임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었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받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의 평가가 각각 정반대로 나타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유다의 아사랴 임금의 경우는 뛰어난 업적이 있고, 남다른 능력과 복을 누렸다면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문둥병의 저주를 받고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반대로 여로보암의 경우는 하나님이 악을 행하는 자로 평가하심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였으며, 이스라엘을 많은 어려움 속에서 구원하는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것이 없으면서도 일이 계속 잘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을 계속 만나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판단으로는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알고 있는 부분도 우리가 다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며, 수시로 변하는 우리의 마음과 느낌까지 다 읽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옳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했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잘못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5.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것은 인간의 공로나 능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에 그 사람을 평가하고 강조하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동안에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잘되는 사람과 반대로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람은 우리가 볼 때 전연 다르지만, 조금 잔인하게 들릴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별 차이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을 잘되고 형통하게 하시는데는 나름대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받은 복과 능력으로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입니다.
반대로 어려운 일 만나 고생하는 사람은 고난을 통해 그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훈련시켜 오고 오는 믿음의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는 믿음의 영웅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를 통해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시고자 미래에 더 큰 축복과 영광으로 예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 당하는 사람이나 복 받은 사람이나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잘되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 할 필요도 없고, 지금 내가 어렵다고 낙심 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롬8:18) 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고난을 같은 목적으로 주시되, 축복보다는 현재의 고난이 장래를 바라 볼 때는 더 복된 것인 줄 믿기 바랍니다.

6. 우리가 생각할 때, 겉으로 보면 여로보암 2세는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고, 아사랴, 즉 웃시야 왕은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결과는 반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사랴 임금을 쳐서 문둥병이 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해가 어렵지만, 유다 왕조의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역대서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한 번도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대하26:5절에 보면,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고 했습니다.
8절에 보면 그의 명성이 애급에 까지 이를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15절에 보면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 짐이었더라” 고 했으니, 그 기이한 도우심이란 사람의 지성과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 그로 하여금 교만한 마음을 만들게 했습니다.
국토를 확장하고 농업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고, 민생에 도움이 되도록 귀한 일을 많이 행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말씀이 없는 심령에 형통한 일을 만나면 누구든지 교만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16절에 보니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라 했습니다.

7. 인생이 고난과 어려움이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잘되고 형통함으로 인한 교만은 패가망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에 때때로 브레이크를 걸고, 때로는 곧은 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로 인도하시고, 때로는 흉년과 가뭄으로 코너에 몰리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미워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상치 못한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깨닫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고난 가운데서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겸손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겸손한 마음은 지금까지의 실패와 어려움을 충분히 만회하도록 하는 더 큰 축복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사랴, 즉 웃시야 임금의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은 무엇이고 그 교만한 마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 향을 피워 분향을 하려고 했고, 이런 광경을 목격한 제사장들이 몰려가서 왕을 가로막아 서서 이 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때 왕은 제사장들을 향해 자신의 행동을 막는 것에 대하여 분노를 쏟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경험한 왕이라도 그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그의 이마를 쳐서 문둥병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성전에서 분향을 하는 것은 대하26:18절에 기록된 대로 레위 지파의 아론의 자손들만의 임무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일국의 임금이요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받은 자라도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권한도 임무도 없는 이 일에 스스로 달려드는 것은 교만한 마음의 결과요, 더 나아가서는 불신앙이요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8. 그런데 다른 병도 아니고 왜 웃시야 임금에게 문둥병을 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문둥병은 저주의 질병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문둥병에 관한 치료와 관찰은 제사장들의 소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문둥병은 제사장들이 하라는대로 따라 순종해야 하는 질병입니다.
그가 제사장들이 말리고 왕에게 그런 권한이 없음을 밝히고 그 행동을 저지했지만, 왕의 권력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무시하고 강제로 이 일을 집행하려고 하다가 만난 재앙이기 때문에, 너는 죽을 때 까지 제사장의 말을 듣고 제사장의 감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을 무시하고 그들이 지키고 있는 제사의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만의 대가였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해도, 그 마음에 교만한 마음이 들어가면 축복과 능력은 간 곳이 없고 저주와 고통만 남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도 교만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마귀가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슴 아픈 것은 웃시야 임금의 문둥병이 자신의 교만한 마음 때문인 줄 알았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후로 그가 받은 고통이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9. 대하26:21절에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다고 했으니, 문둥병 때문에 왕권도 빼앗기고, 문둥병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쫓겨남을 당하고 두 번 다시 가까이 나아가 예배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교만한 마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유다의 임금으로서 누리는 모든 특권들을 빼앗아 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성공과 축복을 사모하지만 과연 무엇이 진정한 성공이고 무엇이 축복입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아사랴 임금처럼 자기 고집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것이 교만한 마음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나라까지 함께 다 망해버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잠언과 그 뒤에 나오는 전도서는 지혜서입니다.
대부분이 다윗왕의 아들인 솔로몬이 기록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전도서의 마지막인 12:13절에 보면 무슨 말이 나옵니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다 들었다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솔로몬의 부귀영화와 그의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찬란한 인생살이를 끝까지 들어보니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가 세상에서 누린 모든 것들이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대단하게 보이고 사람들에게 감동과 충격을 준 것 같은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지나가는 한 때의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10. 그래서 전도자가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 잘 섬기는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수고와 부귀영화까지 잠시잠깐의 한 번 부는 바람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영원한 영광이요 다 함이 없는 완벽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 2세나 아사랴 임금이 하나님께 큰 복과 특별한 은혜를 받아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들 역시 잠깐 지나가는 바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의 근본이요 본분인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를 섬기고, 어려움을 당해도 그 분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그런 겸손한 마음, 순종하는 마음을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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