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9.아마샤의 처음과 나중(열왕기하14:1-22)
[성경본문] 열왕기하14:1-22개역개정
1.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제이년에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2.그가 왕이 된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4.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6.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7.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8.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9.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0.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11.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그와 유다의 왕 아마샤가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12.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13.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14.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15.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의 업적과 또 유다의 왕 아마샤와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6.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7.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간을 생존하였더라
18.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9.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0.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21.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를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그 때에 그의 나이가 십육 세라
22.아마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아마샤의 처음과 나중(열왕기하14:1-22/2015.8.9.오전)
1. 노아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이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살았습니다.
내가 좋으면 그것은 선이라고 생각했고,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내가 싫으면 그것은 악에 불과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고, 진리에서 떠나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가리켜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뿐임을 보셨”(창6:5) 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리신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 마음에 근심하시고 한탄하신 후에 창조 된 인간들과 모든 짐승들까지 지면에서 쓸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는 길로 가지 않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 길은 믿음의 길이었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복 된 길이었습니다.
노아 시대는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에 돈을 믿었고, 하나님 대신에 사람들을 의지하였고, 의와 진리보다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외모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2.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고 했습니다.
여기서 본 받는다는 말의 원어의 의미를 보면 유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유행을 따라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유행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행에 맞추어 살아야 사람이 교양도 있어 보이고, 능력도 있어 보이고, 인기도 얻을 수 있는데, 이런 세상의 유행을 피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정치, 교육, 문화, 종교까지도 다 유행에 사로잡혀 있으니 사람이 유행을 떠나 사람 구실을 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행 따라 사는 인생은 처음에는 좋아 보여도 나중에는 다 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유행은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한 때의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열왕기하 14장에서 유대 나라의 9번째 임금인 아마샤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축복의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얻고자 합니다.
3. 아마샤는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다른 임금들과는 대조적으로 정직하고 선한 왕이라는 사실을 본문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부친인 요아스는 아달랴의 손에 죽을 뻔한 것을 여호야다 제사장 부부의 손에 의해서 6년 동안 성전에 숨어 자라나 겨우 7살 되던 해에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던 왕이었지만, 나중에 교만한 마음에 신복들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하자, 그 부친을 대신하여 이 아마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마샤가 왕권이 강화되고 나라가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자, 선왕을 배신하고 시해한 사람들을 찾아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6절에 보니 선왕을 시해 했던 자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모세의 율법책에 그런 일을 금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24:16절에 보면,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역자는 가족과 친척까지 처단하는 것이 후환을 없애고, 정권의 안정시키는 유일한 방법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이스라엘의 예후 같은 경우에는 아합의 왕자 70명을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습니다마는, 아마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반역자의 자녀들을 살려주는 남다른 자비와 은혜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4. 하나님을 떠나 인본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엽기적인 사건을 일으키듯이, 하나님 중심에 서서 생각하고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귀하고 아름다운 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아마샤가 이런 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 중심의 정치를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아마샤에게 마치 다윗에게 주셨던 것처럼, 그에게도 지혜를 주시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로 보건데 은혜의 사람들은 결코 내 힘으로 내 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들의 남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에든지 두려워하지 않는 확신과 능력과 담대함입니다.
그 결과, 나라는 점점 질서를 잡으며 부강해져 갔고, 본문 7절에 보니 나중에는 남쪽에 있는 에돔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면서 군사적으로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아마샤 임금이 하나님 중심으로 정직하게 행할 때에는 모든 것이 다윗 임금처럼 점점 좋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복 받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잘되다가 나중에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망해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도 고생이고 나중에도 고생하다가 평생 어려움 속에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려워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잘되는 것이 정상이고 당연한 것인 줄 믿습니다.
5.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성공 뒤에는 항상 숨어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교만이라는 죄의 세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던 성공을 거둔 이후에, 인생에서 더 많은 것과 더 귀한 것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마샤 임금도 에돔과의 전투에서 예상 이외의 큰 승리를 거둔 후에 마음이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제일 먼저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의 변화였습니다.
이 정도의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군사력이라면,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에게 눌려 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에게 도전장을 보낸 것입니다.
에돔을 통해 얻은 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도 굴복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는 아침 해장거리도 안되는 유다왕의 태도에 코웃음 쳤습니다.
그래서 9-10절에 보면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좋은 말로 물리쳤지만, 한 번 마음이 교만해진 아마샤는 듣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사람의 눈, 즉 생각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생각이 어두워지면 그 때부터 바른 판단이 서지 않으며, 그래서 더욱 자신을 과신하게 만들고 그것이 곧 멸망의 시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집을 헐어버리시기(잠15:25) 때문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어도, 교만한 마음에 사로잡힌 자를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에서 건질 자는 없습니다.
6. 유다의 불행은 임금의 교만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다윗이 아무리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도, 그가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그를 죽게 만든 죄에 빠졌을 때에는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으셨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만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한 점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대단하고 훌륭한 존재라고 여기는 마음의 상태」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들과 비교해서 우월감을 가지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남들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함부로 판단하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남을 용서하거나 불쌍히 여길 줄 모르고 고집을 피우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저버리고 자신의 뜻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주의 종의 말을 경청하기 보다는 자기 생각을 앞세우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남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좋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보다 세상을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16:18) 라 했습니다.
아마샤 임금이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면, 승리를 통해 교만에 빠지기 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스라엘과 힘을 합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힘을 쏟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7. 그렇다면 교만의 반대인 겸손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국어사전에 보니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어떤 마음이고 어떤 태도입니까?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특히 승리나 성공을 얻을 때 그 결과와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일의 결과를 가지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일의 아름다운 결과를 통해서 자신을 자랑하기 보다는 다른 믿음의 형제들을 높이고 그들의 수고를 칭찬해 주는 마음입니다.
실패나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제 탓으로 여기고 남을 원망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아마샤 임금은 그렇게 할 줄 몰랐습니다.
이러한 그의 잘못된 마음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대패하고 왕은 사로잡히고, 예루살렘은 함락되어 성전이 악한 자들의 손에 약탈당하고 말았습니다.
왕이 정직하고 겸손할 때에는 에돔에게서 승리를 가져왔지만, 교만한 마음은 그 승리까지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마샤의 교만한 마음이 그의 부친이었던 요아스가 걸었던 잘못된 길을 아들이 똑같이 걷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신하들이 왕을 배신하고 반역을 일으켰을 때, 하나님께 두 손 들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의 두 번째 성인 라기스로 도망가서 그곳에 숨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에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고 성벽을 의지한 것입니다.
8. 하나님은 그런 교만한 아마샤를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가면 모든 것이 다 잘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라기스 사람들은 왕의 대적자들에게 성문을 열어서 그들로 왕을 찾아 죽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자는 어떤 어려움과 고통 속에 빠져도 그를 구원해 줄 자가 있지만, 교만한 자는 아무도 믿을 수 없으며 그가 받는 멸망과 심판에서 그를 도와줄 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는 자도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교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소원을 성취하고 자기 계획대로 인생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위기와 고통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는 자가 복 된 인생인 줄 믿습니다.
다윗 왕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목자로 삼는 자야말로 복음으로 승리하고 복 받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은 비록 처음에는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중에 점점 더 잘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셨을 때는 마구간에서 출생하실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그는 한 간의 집도 피곤한 몸을 눕힐 곳도 없었고, 두 벌 옷도 가지지 아니하셨습니다.
33년의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자들, 버림 당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셨고, 나중에는 우리 모두의 죄를 위해 저주 받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지만,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를 가장 높고 곳에 올리셨고, 가장 뛰어나고 아름다운 이름과 존귀함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은 우리가 받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9.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처음에는 어려워도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면, 하나님은 다윗 임금처럼 나중에는 남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큰 축복과 은혜로 충만케 하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