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2.하나님의 언약과 은혜(열왕기하13:14-25)
[성경본문] 열왕기하13:14-25개역개정
14.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15.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16.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17.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18.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20.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21.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22.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24.아람의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25.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열왕기하13:14-25/2015.8.2.오전)
1. 역사 학자 폴 죤스는 유대인의 역사에서 말하기를, 역사에는 목적이 있고, 인간에게는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가 있는데, 여기에 대하여 유대인만큼 확신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없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준비하신 거룩한 계획을 깨닫고 그 일을 위해 자신들이 선두에 서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확신이 이슬람 세력 권에 둘러싸여 있어도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그들을 이기고 열방의 리더로서 활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들여다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행할 때에는, 그들은 열방의 틈바구니에서도 전성시대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열왕기하 전체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망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요아스는 하나님이 그에게 권력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자,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선지자 엘리사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엄한 책망을 듣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요아스 임금이 소유하고 있는 믿음의 분량이 너무 작고 인격적으로도 너무 소심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21세기로 들어오면서 20세기에 가지고 있던 인류의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꿈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되면서, 동시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세계에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빠른 속도로 위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을 어떻게 하면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2. 열왕기하 13장 전체를 보면 이스라엘이 심각한 위기 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쪽에 있는 아람 나라의 침공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고통이 해가 갈수록 더해지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고비마다 이스라엘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노령에 병이 들어 죽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이 이스라엘과 요아스 임금에게는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주변에도 보면 귀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분들이 우리 곁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소중함을 모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가, 그분들이 우리 곁을 떠나게 될 때에야 비로소 내게 소중한 사람인 줄 알고 후회하지만,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이나 그 밖에 여러 인간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오늘 본문의 요아스 임금입니다.
그는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많은 위기와 어려움에서 구해주었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다가, 선지자가 죽게 되자 그 때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14)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왕이 부르짖는 이 한마디가 엘리사가 이스라엘에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은 엘리사의 소중함을, 그의 위대한 사역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베푸시는 은혜 가운데 살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래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하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그 때 가서 믿음으로 살고, 은혜 가운데 살던 때가 얼마나 귀한 세월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곳에 있습니다.
아람의 침공과 선지자의 죽음이라는 이중적인 위기를 만난 요아스 임금이 취한 행동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살리고 요아스 임금을 도우려고 했지만,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임금의 태도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요아스 임금은 소극적이고 불신앙적이었습니다.
울고 있는 요아스 임금을 향하여 활을 잡게 하였고, 그리고 자신의 손을 활을 잡은 왕의 손위에 얹고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 후에, 아람 나라가 있는 동쪽을 향하여 활을 쏘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 (17)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아람의 왕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에 대한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아람의 세력을 이제 부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고 승리를 가져올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아람에 대한 승리는 확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요아스 임금의 생각과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선지자는 18절에 보면 계속해서 왕에게 화살을 잡으라고 하였고, 화살을 잡으니 그것을 땅바닥에 치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요아스 임금은 선지자의 말대로 3번을 치고 나자, 그 행동을 보고 있던 선지자는 왕을 향하여 대노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 여섯 번을 칠 것이지 왜 3번만 치고 말았느냐는 것입니다.
4.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화살을 잡고 땅을 치라고 했으니 사실 한 번을 치던 열 번을 치던 일단 치면 그것으로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선지자의 말대로 대여섯 번을 쳐야 될 일이라면 미리 그렇게 말해 주면 좋을 텐데, 몇 번을 치라는 말도 없이 그냥 치라고 했으니 제 생각에는 3번 친 것만 해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선지자가 이런 일로 화를 낸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선지자 엘리사의 의중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오랜 세월 동안 아람 나라의 침공에 시달려 왔는데, 임금이라면 당연히 이 일에 대한 고민과 분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지자가 명령하고 있는 이 일은 자신은 물론이고 온 이스라엘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을 어린아이가 아닌 다음에야 모를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자기 백성을 학살하고 약탈하는 아람에 대한 분노가 땅바닥을 3번이 아니라 열 번이라도 치면서 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요아스가 3번만 치고 그쳤다는 것은 임금으로서 그만큼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명감이 부족하거나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을 반영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은 비록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하며 배덕의 길을 걸었지만, 하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큰 능력의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지켜 주셨고 도와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언약 백성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고 그의 사랑과 은혜를 저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저들을 기억하시고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래서 23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언약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솔로몬이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고 하나님을 노엽게 만들었지만 그를 향한 은혜의 손길을 멈추지 않은 것은 그 아비 다윗과의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이방 민족들처럼 가나안에서 쫓겨날 정도로 죄악이 관영했지만 그들을 영영 버리지 않은 것은 그들이 언약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합 집안을 심판한 예후를 향해 하나님이 4대에 걸쳐 왕위를 계승하는 축복을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은 여로보암 2세까지 100년 동안 치세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과연 불신자들과 우리를 비교해서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어떤 면에서, 아니 많은 부분에서 세상 사람들은 항상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거나 뛰어난 존재들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젊은 여자들도 아무리 미모를 가꾸고 뽐내어도 세상 여자들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창6:2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은지라”는 말씀이 있을 정도 세상 여자들의 미모는 뛰어납니다.
5.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랑할 것이 무엇이며 뛰어난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단 한가지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그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언약의 백성에게는 베푸시는 남다른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우리가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도 우리가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 안에 있는 자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곧 우리의 언약이 되었으며, 이 언약을 통하여 우리는 그들을 믿음의 조상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풍성한 은혜의 세계 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믿음의 분량을 따라 누리는 은혜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은혜의 세계 안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도리어 망신 당하며 고생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요아스 임금이고 북왕국 이스라엘이며 오늘 우리 가운데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엘리사는 요아스 임금을 향하여 대노하였고, 땅을 3번 쳤으니 아람에 대한 승리는 3번뿐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6. 우리 주위에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 소극적인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은 남들에게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시면서 나에게는 그렇게 인색하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우리 하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사50:2)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 이스라엘을 아람의 손에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찾아와도 만나주는 자가 없으며 불러도 응답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말씀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 되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불신하는 내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이 나의 믿음 없는 것이 문제이지, 교회가 문제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부모가 문제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주위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수많은 열왕들의 기록을 보면서 그들이 높아지고 왕성하고, 때로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며 역사의 무대 가운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 반복된 역사의 움직임을 주관하시는 분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열왕기의 역사는 왕들의 역사가 아니라 그들 배후에서 언약의 말씀을 따라 은혜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생사화복은 물론이고 국가의 대소사를 포함하여 나라와 민족의 장래까지 주관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분인 줄 믿기 바랍니다.
부모나 사람들이, 국가나 대통령이 우리 미래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미래를 책임져 주시는 줄 믿습니다.
7.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 요아스는 겨우 3번 땅을 치고 말았기 때문에 엘리사의 사후에 3번만 승리를 얻게 되었고, 결국은 원수 아람을 쳐서 망하도록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느냐, 우리가 얼마나 공로가 많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은 죄인까지도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내 믿음의 분량과 크기에 따라 그 내용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크기만큼 믿음의 깊이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만큼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아스 임금은 이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3번의 승리는 얻을 수 있었지만, 그 승리는 너무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적 배신자와 같은 이스라엘에게도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들이 힘 있는 나라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면서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열방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분의 위대하신 능력을 보여주며 그것을 자랑하며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아스처럼 소극적이고 연약한 믿음이 아니라, 기도를 해도 응답받을 때 까지 끈질기게 기도하고, 전도를 해도 영혼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신 것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면, 받은 은혜가 열배도 되고 백배도 되는 축복의 결실을 맺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언약의 백성이 받은 축복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