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26.왕의 길(열왕기하13:1-13)
[성경본문] 열왕기하13:1-13개역개정
1.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2.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3.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4.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5.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6.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7.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8.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9.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0.유다의 왕 요아스의 제삼십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육 년간 다스리며
11.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
12.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3.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자리에 앉으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왕의 길(열왕기하13:1-13/2015.7.26.오전) 1. 양심으로 살아왔다 해도 부끄럽습니다 더러는 화인 맞고, 더러는 양심을 속이기도 하고 살았기에 믿음으로 살아왔다 해도 부끄럽습니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 믿음 있을 때는 믿음으로 믿음 없을 때는 내 마음대로 살았기에 사랑으로 살아왔다 해도 부끄럽습니다 사랑엔 편력이 있어 사랑한 사람에게는 사랑으로 미워한 사람에게는 미움으로 살았기에 오직 말씀으로 살아온 것만 부끄럼 없습니다 말씀엔 타협이나 억지가 없이 하라신 대로 살아왔기에 이 시는 고훈 목사님의 시집 「그날 같은 하루를 날마다 살고 싶다」 가운데 부끄럽습니다의 내용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사람들은 인생을 그냥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목적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잘 살고 성공하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사람 답게 살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 없는 삶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그 답을 얻고자 합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합 집안을 멸절 시키고 왕이 된 예후의 아들인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17년 간을 이스라엘을 통치 하였고, 그가 죽자 그의 아들인 요아스가 왕위를 계승받아 16년 간을 통치 하다가 죽자,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41년 간을 통치 하는 내용입니다. 무려 3대에 걸쳐 칠십 수 년의 통치 기간을 보게 되는데 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3번 씩이나 이 느밧의 아들인 여로보암의 죄에 대하여 반복하고 있으며, 열왕기상하를 통하여 수도 없이 계속해서 같은 이름과 같은 구절이 반복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여로보암은 누구입니까? 열왕기상11:26절에 그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 여로보암은 그 당시에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이 밀로 성을 건축하고 또한 다윗 성을 수리할 때 솔로몬의 신임을 얻어 그 일을 책임 맡아 감독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자 하나님은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서 여로보암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10지파를 나누어 주시겠다고 하였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솔로몬이 그를 죽이려고 했고, 그는 애급으로 피난 갔다가 솔로몬이 죽은 후에 돌아와서 세겜을 수도로 정하고 그 10지파를 가지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잊어버리고 단과 벧엘에 애급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고, 그것이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속이면서 도덕적인 부패와 우상숭배로 나라를 다스린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 하면 너의 나라가 다윗처럼 견고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열왕기상12:25절 이하에 보면 국가를 통치 하는데 있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불안이란 10지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유다의 예루살렘을 왕래하다 보면, 민심이 다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갈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두 개 만들어 하나는 세겜에, 다른 하나는 단에 놓아두고 온 백성으로 하여금 이 우상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그는 애급에 오랜 세월 망명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급의 이방신 숭배에 물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3. 그런데 이런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우상의 소굴인 일본에 들어와 살고 있는 우리는 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자꾸 일본 사람들의 종교성과 그들의 도덕성과 습관을 닮아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겠다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바로 살 수 없으며, 하나님께 영광도 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본이라는 거대한 영적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매 순간마다 신앙적인 몸부림을 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내 자식도 이미 내 자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예로 솔로몬의 경우를 보면,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 받았지만, 솔로몬만큼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고통과 재앙을 가져온 임금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의 수변의 많은 대적들이 바로 솔로몬 시대에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에돔의 하닷, 수리아의 르손,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등이 다 솔로몬과 원수가 되면서 이스라엘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온 사방의 이방 나라의 여인들과 혼인을 맺으면서,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는 그녀들이 가져온 이방신들로 가득했고, 예루살렘은 물론이고 온 나라 안에 산당들이 그 때 생겨난 것입니다. 이 산당들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끝날 때 까지 뿌리를 뽑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솔로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부모들은 제 자식을 위해 기도할 때 솔로몬처럼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이것은 나라 망해 먹는 기도요 자식을 망하게 만드는 기도입니다. 여로보암이라는 존재나 북 왕국 이스라엘이라는 존재가 다 솔로몬 때문에 생겨난 것이요, 온갖 이방신의 숭배 역시 솔로몬이 가져온 것입니다. 열왕기상 11:33절에 보면 솔로몬 당시의 이스라엘의 참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멸망시키고 싶었지만 다윗을 생각해서 참으신 것입니다. 4. 오늘 제목이 「왕의 길」 인데 이스라엘의 왕들이 가는 길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여로보암의 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세워 10지파를 그에게 주시면서 다윗 같은 임금이 되기를 원했지만,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온갖 부도덕함과 우상숭배로 이스라엘 나라와 백성을 송두리째 타락 시킨 장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는 모든 왕들에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악의 축이 된 셈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이 가는 두 번째 길은 어떤 길입니까? 믿음의 사람 다윗의 길입니다. 열왕기상 11:38절에서 여로보암에게 내 종 다윗의 길을 가면 축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하여 호세아 임금에 이르기까지 19명의 왕들은 2백 십 수 년 동안 다윗의 길로 행한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 한 가지로 치우쳤고, 그들의 죄악은 시간이 갈수록 흘러 넘쳤고, 왕들의 마음도 점점 악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그 결과 왕가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유대 나라의 모든 임금들의 모범이 된 이유 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언약의 백성인 온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 처럼 하나님 중심에 서서 말씀에 순종 하면 한 없이 축복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5. 이스라엘을 포함한 유다 왕권의 기준은 하나님의 언약에 있습니다. 결코 왕이나 백성들의 능력이나 도덕적인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으셨고(삼상13:14), 다윗 또한 이러한 하나님을 향해서 무엇이라고 고백하였습니까?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은즉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삼하7:19-22) 고 했습니다. 그는 원수에 대한 태도 역시 은혜로 값은 것은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요, 자신을 저주하는 자에게도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라고 명령하셨으니 그대로 저주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삼하16:11). 이러한 다윗을 향하여 하나님이 하신 약속과 축복이 무엇입니까?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23:5-6)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집을 통해 장차 온 인류를 구원하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에게도 헷 사람 우리야에 대한 악행이 있었지만, 그것 이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 (왕상15:5) 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다윗 처럼 하나님과의 언약을 귀하게 여기고 말씀에 순종할 때 다윗 처럼 축복해 주시겠다는 의미로 다윗을 축복하시고 귀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나아가는 자는 재앙과 심판을 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6.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악한 자를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본문 3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이웃 아람왕 벤하닷을 사용하여 그들을 고통 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이 고통 중에서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5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 다고 했습니다. 마치 애급 땅에서 고통 중에 부르짖던 이스라엘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능력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구원자는 앗수르의 아닷니라리 3세로 그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아람 나라를 침공하여 국력을 쇠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얻어진 구원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열방의 세력들을 사용해서 언약의 백성들이 범죄 할 때에는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셨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킬 때에는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사실은, 인류의 모든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엘리사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애급의 히브리 민족을 모세를 통해서 출애급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의 재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던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징계는 그들을 영영 멸망 하도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그들을 하나님 중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회복 케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7.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3대에 걸쳐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윗의 길이 아닌 느밧의 아들로 반역자요 우상숭배자인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환란에서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죄 가운데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언약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고, 그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죽음과 저주 속에서 구원하시고, 지금도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천국에 무사히 이르도록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쏟으신 사랑과 희생은 엄청난 것인데, 우리는 이런 사랑과 은혜를 입으면서도,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았으며 어떤 길로 걸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양심으로 산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사랑으로 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육신의 정욕으로 살았다면, 천하의 피조물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부끄러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가는 여로보암의 길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과 축복의 약속을 바라보는 다윗의 길로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