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8.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요한계시록3:7-1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3:7-13개역개정

7.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8.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요한계시록3:7-13/2014.6.8.오전)
1.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 중에 하나이며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1위가 바로 구글이라고 합니다.
구글은 1998년 미국 스텐포드 대학의 두 젊은이가 창고를 빌려 시작한 회사로, 지금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엔진 회사로 알려져 있는데,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조사를 해 보았더니 한마디로 회사라고 말하기 보다는 테마파크, 어른들의 놀이동산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근무시간이나 업무조차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졸리면 자고 놀고 싶으면 직원들끼리 수다도 떨고 먹고 마시고 도대체 기본적인 개념을 가지고는 이해가 안가는 회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5월23일의 일본의 아시히 신문에 보니, 이 회사의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부사장의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이 요구하는 인재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신입 사원을 선발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첫째로, 학교성적이나 지능지수가 아니라 학습하는 능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고, 둘째는 창조적인 리더십, 셋째는 문제해결을 위한 책임감과 당사자 의식이 있어야 하고, 넷째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다섯째는 전문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5가지의 조건을 통해서 이 회사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당신이 배우고 습득한 경험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글 회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2. 오늘 우리는 성령강림절을 맞이했는데, 성령강림절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는 이 말씀을 믿고 함께 모여 기도하던 그들에게 성령이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이었고, 우리 기독교는 부활절 다음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성령강림을 통해서 이 지구촌에는 이전과는 전연 다른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몸된 교회의 탄생이었고, 말씀에만 의존해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유대주의적인 발상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동한 것이 예루살렘교회였고, 이 교회의 성도들은 한결같이 성령에 충만합을 입었습니다.
그 증거로 사도 베드로는 한 번의 설교를 통해서 3천명의 회심자를 얻었고, 집사 스데반은 성령에 충만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성난 군중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하였고, 집사 빌립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아갔고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세례를 줌으로 그 나라를 복음화 하였고, 바나바라 일컫는 요셉은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여 성도들을 섬기고 위로하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태동되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장하였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환란과 박해 속에서도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3. 그런데 그 성령님께서 소아시아의 7교회를 향하여 다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대략 기원30년쯤에 성립되었고, 밧모섬에 유배를 당할 때나 아니면 유배가 풀려 에베소로 돌아와서 기록하였다고 생각하면, 도미티안 황제가 로마를 통치하던 시기임으로 그 연대가 대략 기원90년에서 95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교회가 태동한 지 약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6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의 안팎으로 무슨 일들이 있었습니까?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교회를 향한 박해의 불길이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교회를 향한 박해가 점점 거세어지고 있었습니다.
서기 64-67년에는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때에 많은 성도들이 십자가에 처형되었고, 경기장 안에서 맹수들의 밥이 되었고, 또한 화형으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두 번째 박해는 서기 85-86년에 일어난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로, 박해 기간은 짧았지만 상대적으로 매우 지독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4만 여명의 성도들이 고문과 처형으로 살해당했고, 바로 이 기간에 사도 요한도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서기 98년에 시작된 트라얀 황제의 박해가 있었는데 사도요한인 이 세 번째 박해까지 경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하고 고통스러운 박해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신앙을 지키는 것은 곧 생명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형편이고 보니, 교회 안에는 도덕적인 부패와 배교의 현상이 점점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런 혼란 속에서 성령님은 사도요한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를 보존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계시하였던 것입니다.

4. 요한계시록 2장과 3장 전체를 통해서 성령님은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7교회를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7번을 반복하며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3절의 말씀대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일곱 교회를 향한 칭찬과 책망입니다.
그런데 2:2절에도 나오지만 본문 8절 보면 "내가 네 행위를 안" 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각 교회의 형편은 성령님이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알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와 오늘 본문으로 택한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할 것이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사데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았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 그리고 두아디라 교회는 각각 책망과 칭찬을 함께 들었습니다.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성령님은 어떤 교회가 무슨 문제를 안고 있으며, 또한 그 교회의 칭찬받을 만한 좋은 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영적인 문제는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님의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5.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성령의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8절에 보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 다 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 이단들이 사방에서 활개를 치면서 성도들의 믿음을 파선시키고자 하였고, 소아시아를 대표하는 이 일곱 교회도 이단들의 좋은 표적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이단들의 잘못된 교훈을 받아들이고, 그것 때문에 교회가 적지 않은 혼란과 진통을 겪고 있었지만, 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박해와 연약함 속에서도 이단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사수함으로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수천 명, 수만 명의 신자를 거느리는 대형교회들이 이 시대의 신앙과 풍조를 이끌어 가고 있다 보니, 자연히 교회 규모가 작고 그래서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가 잘못된 교회처럼 인식 받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교회도 그렇지만 새신자들이 와서 보고 사람이 몇 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냥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데, 일 년에도 이런 일이 수십 번 일어나도 보니 그런 사람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참 신앙이란 많은 능력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경제 규모나 건물이나 사람 모이는 숫자로 따진다면 예수님이야말로 실패한 인생이요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분입니다.
그 분은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그것도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평생 한 간의 집도 장만하지 못하시고 그야말로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 하면서 사시던 분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우리 교회도 집주인에게 쫓겨나서 교회가 갈 곳이 없어 공원이나 신자의 집에서 몇 주간을 예배드린 적도 있었기 때문에 집이 없다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생생합니다.
참 신앙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이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축복이요 은혜요 칭찬받는 교회와 상 받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6.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해 성령께서 하신 말씀을 종합해 보면 말씀하시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칭찬 받는 것을 끝까지 지키는 것과, 둘째는 잘못된 것은 속히 회개하고 고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문제없는 교회는 없고, 문제없이 완벽하게 신앙생활 하는 성도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사단이 틈을 타고, 그 틈을 통해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거리를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2장, 3장에 걸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를 향해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게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5)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에베소 교회의 문제점은 칭찬 받을 일이 많지만, 더 중한 것을 버렸는데 그것은 주님을 향한 첫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버렸다" 는 이 말은 의도적인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것은 심각한 영적 질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잘못된 것을 지적 받고 깨닫게 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치고 돌이키고 새로워지지 아니하면 버림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모른 척 하거나 적당히 넘어가거나, 또는 서로 네 잘못이라고 미루면 그것은 교회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주님은 촛대를 옮기리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주님 자신의 몸된 교회라도 주님의 의도에서 벗어난 교회,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교회는 말살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7. 에베소 교회는 사도요한 자신이 속에 있던 당시로서는 이름 있는 교회였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이 작은 빌라델비아 교회보다 못한 교회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님의 심판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매우 위험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은 없고 칭찬만 있었지만 교만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성령께서 이 교회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괴롭히고 잘못된 교훈으로 유혹하는 사단의 앞잡이가 된 이 유대인들을 성령께서 그들을 강제로 굴종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성령께서 이 교회에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게 하리라"(9)는 것입니다.
지상 교회가 힘자랑하고 교인 숫자나 건물 자랑하면 세상 사람들의 비판과 욕을 먹게 됩니다마는,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면 교회의 위상이 달라지고, 전도는 저절로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 많은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빌라델리바 교회의 장래를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10절에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시험의 때를 피하거나 없애 준다는 것이 아니라 시험의 때에 너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리라는 말씀입니다.
10절 후반 절에 보면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큰 시험의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그들을 특별히 지켜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책망은 없고 칭찬만 받은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께 칭찬을 받기까지 많은 시험을 통과함으로 자신들의 신앙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넉넉히 지킬 수 있는 믿음의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교회를 계속해서 보존하고 지켜줌으로 장차 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에게 칭찬 받는 교회로서의 본을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8. 셋째는, 12절에서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예루살렘에서 기둥 같은 존재로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에는 단서가 붙기를 "이기는 자는" 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믿음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신하지 않았지만, 믿음의 길, 장래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는 잘 싸워 이겼지만 그래서 책망은 없고 많은 칭찬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적 싸움에서 마지막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분부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의 최종적인 목적은 승리에 있으며 그래서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왜냐면 이 싸움의 승리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12절 하반부에 기록된대로 새 이름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험의 때를 통과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짐승의 이름을 이마에 새길 때, 주님은 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천국의 시민권을 주심으로 아무도 그들을 해하지 못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9. 미국의 구글회사가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내세우는 기준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까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습관으로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점점 도태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무한 경쟁시대에서 교회가 영적인 승리를 얻는 다는 것은 시험과 환란과 박해 시대에 살았던 이 소아시아 교회들처럼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 시대의 교회를 향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교회를 향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듣고 칭찬 받는 것은 생명을 걸고 굳게 지키고, 책망 받은 것은 가슴을 찢고 눈물로 회개함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살피시는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도 반드시 변화되고 새로워 져서 주님이 칭찬하시는 교회와 성도가 되는 줄 믿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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