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3.31.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누가복음 24:1-12)
[성경본문] 누가복음24:1-12개역개정
1.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누가복음 24:1-12/2013.3.31.오전)
1. 지난 주간에 아사히신문의 논설위원이 쓴 글에 보니 신문사설에 "우리들" 이란 말이 들어가면 여지없이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들" 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아사히신문사인가? 너희가 국민의 대표인 줄 착각하고 있는가? 등의 공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신문의 사설이라는 것이 서명이 없는 글이다 보니 아무리 객관적인 글을 쓴다고 해도 "우리들" 이라는 표현은 신문사의 소속된 사람이 신문사의 의향을 대변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도 독자들이 볼 때 "우리들" 이라고 표현한 그 사람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수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의 판단은 매우 정확하고 예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표현에 대한 사실이 목회현장에서, 더 정확히 말해서 교회의 설교 내용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설교의 출발점은 설교자가 청중들을 향해 말씀을 선포할 때 자신은 말씀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청중들에게만 강요하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 간과해버리기 쉬운 단어가 바로 "우리들" 이라는 단어입니다.
설교자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서 청중을 향해 선지자적인 사명으로 말씀을 선포한다고 할지라도, 설교자도 연약한 인간이고 청중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죄에 심각하게 오염된 존재라는 사실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에서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청중을 향한 말씀 선포는 동시에 말씀을 전하는 자신에게도 선포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2. 어제 뉴스를 보니 프랑스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강한 프랑스를 강조하면서 "우리"(NOUS) 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강한 프랑스는 국민은 물론이고 지도자 대통령이 함께 포함된 "우리" 로부터 출발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문의 사설에서 "우리들" 이라는 단어는 매우 조심스러운 단어일 수 있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인간은 어느 경우에도 예외 없이 "우리들" 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빈 무덤에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임을 당하신 후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4복음서가 동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이 수도 없이 확인하고 또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분의 부활이 없이는 기독교 자체가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도하는 것이 헛된 것이요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15:14).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그 어떤 경우에도 무시되거나 거부되거나 부인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부활은 2천여 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으며 거부되며 의심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 유대인들과 로마 군병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마27:62-66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여 의논하기를 죽은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간 후에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문을 내면 더 큰 혼란과 어려움이 오리라고 판단하여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무덤을 삼일 동안 굳게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삼일 아침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그의 누웠던 무덤은 빈 무덤이 되고 말았고, 이 사실을 확인한 종교지도자들은 로마군인들을 많은 돈으로 매수하여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은 감추고 그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였습니다(마28:12-15).
이런 잘못된 종교지도자들의 행태가 적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것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서 그 어떤 것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종지부와 같은 것이라고 믿는 잘못된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스스로 의심하는 사람들의 더디 믿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이른 아침에 빈 무덤을 확인하고 그곳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 뵌 여러 명의 여자들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본문 11절에 보니 제자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허탄한" 말로 여기고 말았습니다.
4. 연약한 인간이 가진 약점 중에 치명적인 것 한 가지는 의심입니다.
물론 의심이라는 것은 사물을 분별하고 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대로 믿지 않을 때, 그래서 거짓을 사실처럼 믿도록 만들 때는 이 의심이라는 것이 인생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주위에서 저를 보고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어디 어디에 있는 거지가 네 엄마고 아버지라고 놀렸습니다.
어린 마음에 순간적으로는 슬픈 마음에 울기도 했지만 그 말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는데 어렵지 않은 것은, 어린 나를 향한 부모님의 태도와 사랑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분의 형상을 따라 남녀를 만드시고 그들을 축복하신 사실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에 빠져 고통 하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과 그 분의 부활과 승천과 재림에 이르기까지 계시된 66권의 신구약 성경을 말씀대로 믿도록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빈 무덤에 대한 우리의 태도 우리의 생각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사람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5-26)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3:1) 고 했습니다.
5. 불신앙의 남편들이 부인들이 교회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신이 소유하고 경험한 지식과 경륜을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을 읽고 이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사람의 지식이나 상식이나 지성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들로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세상 지식이나 경험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심령으로 체험하게 하여 믿음에 이르도록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5절에 기록된대로 천사들이 여자들에게 말한 그대로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무덤에 묻히고 그곳에서 영원한 잠을 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인생의 죽음과 그 후에 오는 부활입니다.
그래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 무덤에서 다시 일어날 수 없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이래로 그 누구도 죽어 무덤에 묻혀 영원히 그곳에 누워 있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 행한 대로 심판 받기 위해 다시 부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행24:15) 고 했습니다.
6.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이 사실을 부인하며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하나님이 행하신 그 부활의 사실, 곧 인간이 죽었다가 반드시 다시 산다는 것을 부인하는 그 거짓말에 대한 심판을 받기 위해서도 악인의 부활을 경험하고 말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활하여 다시 산 예수를 무덤에서나 찾고자 하지만, 우리는 그 분이 살아서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다시 오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활의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살아계실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6절에 보니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여인들이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입니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눅9:22)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바로 이 일을 위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그가 받은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8절에 보니 이 여자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절에는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했" 다고 했습니다.
7. 그러나 평소에 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불쌍한지 모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너무 낙심이 되고 슬픔에 잠겨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앞에 계시는 것을 보고도 믿지 못하였고, 식탁에 앉아 함께 먹고 마실 때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삶에 지혜롭게 적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능력이요 축복이요 소망이요 신비인 줄 믿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한 번 죽음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며, 그러므로 그를 따라 우리도 의인의 부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부활로 다시 한 번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오는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부활절을 통해서 이 교회가 부활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부활의 능력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죄의 권세를 이기고 마귀의 세력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국회는 법을 만들고 만들어진 법을 개정하여 백성들을 평화롭게 잘 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지만, 교회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혼을 구원하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악인의 부활이 아니라 의인의 부활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 교회가 받은 사명인 줄 믿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입는 것입니다.
8.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여자들이 부활의 증인이 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부활의 능력은 우리에게 미래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과 확신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환란과 문제와 고통 속에서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