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7.29.성령 충만한 사람들(사도행전2:1-13)
[성경본문] 사도행전2:1-13개역개정
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성령 충만한 사람들(사도행전2:1-13/2012.7.29.오전)
1. 지금 영국 런던은 제30회 올림픽의 성화를 중심으로 지구촌의 204개국과 지역에서 선발된 10,500명의 각국의 선수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면서 금메달이라고 하는 목표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마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이벤트 중에서 올림픽만큼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축제는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이 축제의 개막식을 보기위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깨어서 텔레비전의 중계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은 참가하는 선수나 임원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축제입니다.
지역과 언어와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모임으로 지구촌은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구촌에는 올림픽만이 온 세상을 하나 되게 하는 축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야 말로 죄로 말미암아 분열된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구원의 하나님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성령 강림을 통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소유하게 되었고, 지상의 모든 교회는 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하나 되는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하)하셨고, 부활하신 후에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오실 성령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몰랐지만, 성령 받고 보니 그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었었습니다.
2. 주님은 성령받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고, 마침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께서, 함께 모여 기도하던 성도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령강림이 일어난 그 시점은 이스라엘에게는 애급에서의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에서 50일이 지난 오순절에 해당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해 처음 익은 곡식을 거두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리는 맥추절, 혹은 칠칠절로, 이 절기 때까지 사도들을 중심으로 120명의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열심히 한 곳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가장 많은 횟수로 반복되는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헬라어로 「아판테스」, 혹은 「판테스」라는 단어로 본문에서 6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파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각각」,「모든」 혹은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로 영어로는 ALL, 한국어로는 「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이 성령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목적을 가지고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3년 동안 동일한 예수 경험을 가지고 동일한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본문에 기록된대로, 「다」, 혹은 「모두」의 역사입니다.
2절에, 성령이 강림하여 온 집에 가득했다고 하였고,
4절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기록함으로,
1)말씀을 믿고 간절히 기다리며 사모하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2)함께 마음과 뜻을 같이 한 사람들의 모임 속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3)그리고 강하고 확실하게 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은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3. 그렇다면 성령강림의 구체적인 특징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 역사의 중심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강림의 역사도 종교, 문화, 정치적으로 공개된 예루살렘 한 가운데서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전 세계로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민족적 절기를 맞아 마치 올림픽 축제에 모인 세계 나라의 선수들처럼 그렇게 예루살렘에 모여 있을 때 바로 그 한 가운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첫째로 성령 강림은 청각적인 증거로 나타났습니다.
2절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인 120명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활동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바람처럼 임함으로 그 소리와 그 분위기를 통해 성령의 강림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며, 그 형체를 알 수 없으나, 그 분이 우리 가운데 오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 하시는 그의 활동을 우리는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요3: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의 역사는 다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환경과 조건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자들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줄 믿습니다.
4. 둘째로 성령의 강림은 시각적인 증거로 나타났습니다.
3절에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 눈에 보」였다고 했습니다.
성령 자체의 모습은 보이지 아니하나, 강하고 급한 불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처럼 모인 사람들의 눈에 간접적인 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불은 하나님의 심판하시고 소멸하시는 불로 나타나셨으니 곧, 소돔과 고모라 성에 내린 불과, 레10:2절의 심판의 불이 그 대표적인 불이 있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성결케 하시는 역사로 나타나셨으니 곧,
겔1:4,13절 등에 나오는 하나님의 권능과 그의 위엄을 나타내는 불입니다.
그리고 제사와 헌물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기쁨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니,
아벨의 제사와 엘리야의 제사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기쁨과 감사로 드리는 예물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해 주십니다.
이렇게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인체의 오관을 통하여 느끼게 하심으로, 연약한 인생들이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하는데 확신을 줍니다.
5. 셋째로 성령의 강림은 언어적인 증거로 나타났습니다.
4절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모인 이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듣고, 보고, 이제는 자신의 혀를 통하여 방언을 체험함으로, 성령의 역사를 강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15개 이상의 지역과 나라들의 방언을 사용하여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배우지도, 심지어 어떤 이들은 듣지도 못했던 가본적도 없는 나라의 말들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방언의 역사를 성경적으로 살펴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에 도전하고, 하나님 대신에 자신들의 이름을 온 지면에 드러내려고 할 때,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인간의 악한 경영을 흩어버리신 사건을 기억합니다.
이것이 바벨탑 사건이요 이때부터 인류는 언어의 혼란에 빠져 의사가 소통되지 아니함으로 연합하는 대신에 흩어지고 분쟁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로 인한 분열이었습니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인류가 한 곳에 모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경영이 악함을 보시고 흩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교만한 마음으로 모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심판하셨습니다.
6. 그 결과 함께 하던 사람들은 온 지면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혼잡과 흩어짐을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회복하고 연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성령 충만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령의 강림 내지 역사하심을 믿음 안에서 확증할 수 있습니다.
곧,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사람과 사람이, 형제 사이와 이웃 사이에 분쟁이 그치고, 가정이 화목하고 교회가 일치와 화해와 연합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하나된 것을 쪼개고 이간질하여 분리시키고 분쟁하게 하지만, 성령님의 역사는 죄로 말미암아 나뉜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고, 믿음에서 떠나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사랑으로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반응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국제도시 한 가운데서 그것도 대낮에 일어난 이러한 성령 강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땅에 강림하셨을 때의 반응도 대단했습니다.
인류의 구원의 왕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오는 박사들이 있는가 하면, 권력의 위험을 느껴 나라 안을 피바다로 만든 헤롯같은 악한 왕이 있었습니다.
이제 성령강림을 통해 이스라엘은 다시 한 번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7. 저들은 크게 소동했습니다.
국제도시인 예루살렘에 모인 각각 나라에 흩어졌던 사람들과 나라 안의 사람들이 각국 나라의 말로 방언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분명히 한 사람이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들은 모두 제 나라의 말로 같은 내용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기독교의 역사에 늘 소동해 왔습니다.
복음을 실은 선교사의 배가 그 나라, 그 지역에 도착하면 일파만파로 그 충격과 영향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는 사실입니다.
천민에서 시작하여 권세를 잡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소동하다가 마침내는 교회를 핍박하고 믿는 성도들의 생명을 죽음에 내 던지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히11:38절에 기록하기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가 핍박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내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면 남편이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유는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아내의 믿음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핍박이 일어나고 소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 정도의 소통과 충격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더 큰 충격과 소동을 받게 될 날이 곧 다가오고 있으니 그것은 곧 예수 재림의 때입니다.
8. 그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놀라고 기이히 여겼습니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알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그들의 눈앞에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놀랍고 기이히 여겼다」라는 말은 계속해서 신기하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기이하다는 말은 일본 성경에는 아야시이(あやしい)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수상하고, 괴이하고, 어설프고, 의심스럽다는 의미입니다.
곧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 볼 때 그 모든 기록들과 사건들이 의심스럽고 수상하고, 때로는 어설픈 교훈으로 비쳐지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구원의 역사가 세상의 문명과 문화와 그 모든 경험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학자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성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라고 반응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지식 밖의 일이니 不可知論者들과 과학자들이 기이히 여김이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멘으로 믿고 따라가니 하나님의 큰 은혜임이 틀림없습니다.
12절에도, 「이 어찌된 일이냐」하면서 자기들끼리 토론하고 있지만, 성령의 역사는 어찌된 일이냐고 묻거나, 과학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체험하는 믿음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9. 저들은 성령 충만한 제자들을 조롱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더 이상 자신들의 가슴으로 머리로 판단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이 내린 결론이 「새 술에 취하였도다」고 조롱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당시 성령강림을 체험한 교회 앞에 던진 세상 사람들의 결론이요 답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회와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지성에 한계가 있고, 저들의 감성은 무감각해져 있고, 저들의 삶의 체험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알게 하는 장면입니다.
저들은 입으로는「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고 하면서도 결론은 비웃음과 조롱이었습니다.
이것은 초월적인 신앙의 사건을 부정하고자 하는 태도였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성령의 역사에 증인되기를 거절하고 구원의 역사에 참여 하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기막힌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10. 그러나 우리는 비록 예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현장에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신 생명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통해 이 모든 사건을 이미 체험한 줄 믿습니다.
우리들의 신앙, 우리들이 경험한 성령의 역사를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우습게 알고 새 술에 취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가운데 확증케 하고, 나아가 이 복음의 증인으로서 하나님 중심, 교회중심, 말씀중심의 삶을 살도록 곁에서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비록 그 수가 120명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나,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목적인 복음의 진보를 위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주님은 이 교회와 우리 온 성도들을 21세기의 예루살렘 교회처럼 사용하여 일본복음화와 천국 일꾼 양성, 세계선교, 성전건축의 사명을 완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우리가 가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의 세력을 이기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