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8.18.종말을 사는 지혜(마태복음24:3-14)

[성경본문] 마태복음24:3-14개역개정

3.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종말을 사는 지혜(마태복음24:3-14/2013.8.18.오전)
1. 연일 35도를 웃도는 일본의 더위는 매일 천여 명의 열사병 환자가 병원에 실려 가고, 그 중에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하는데, 며칠 전에는 시고꾸에서 41도를 기록할 정도로 살인적인 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에어컨을 가동하고 새벽에 일어나 집안 공기를 순환시키려고 베란다 문을 열면 더운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 올 정도입니다.
사람들의 말이 동남아시아의 날씨보다 일본이 더 덥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 건강하면 더위도 이겨낼 수 있고 잠시잠깐 고생하면 아침저녁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여름은 흔적도 없이 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옛적부터 농사짓는 사람들을 위해서 1년의 사계절을 24단계로 나누어서 다가오는 계절을 미리 계산하면서 농사를 짓도록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계산법은 아니고 아시아의 농경사회가 지금도 이 계절력에 맞추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만, 지난 7일이 입추였습니다.
입추는 가을이 들어선다는 의미이고 일본에서는 이 시기가 지나서 바다에 들어가면 해파리에 쏘이게 되니 물에 들어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23일은 처서로 이것은 더위를 처분한다는 의미로 이때가 되면 극성스럽던 모기의 입도 비뚤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9월7일은 백로로 이슬이 내리면서 하루의 일교차가 심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24계절의 변화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해도 그 더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을 잘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2.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도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고도 지혜로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말세의 징조에 대한 내용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말하기를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전3:1) 다는 것입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으면 치료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개개인의 생명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우주적으로 만나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는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 예수님은 두 번씩이나 확인하고 계시고 있으며, 제자들도 이 사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만의 관심이 아니라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관심이 많은 만큼 신학적인 논쟁도 많았고, 그만큼 종말론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져 신앙의 항해에 좌초를 당하거나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영생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아래에 머무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마24장의 내용은 가깝게는 예루살렘의 멸망에서부터 멀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이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환란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란을 이기고 영적인 승리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 말씀 속에서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대의 징조를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4절에 보니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는 것입니다.
중요한 핵심이 무엇입니까? 미혹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말세의 징조로 우리에게 3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니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6-7절에 보니 전쟁과 기근, 그리고 지진으로 인한 환란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9-10절에 기록된 대로 신앙적인 핍박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종말을 사는 성도들의 지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입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유혹하여 넘어뜨리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혹하던 마귀인데 우리라고 그냥 내버려 두겠느냐는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약점은 신앙적인 뿌리가 약한 것입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 훈련 받지 못한 영성, 그리고 지식적으로 치우치거나 습관화된 종교생활이 작은 유혹과 핍박에도 잘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면서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제 고집대로 제 방식대로 신앙생활 하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마귀가 이런 사람을 제일 먼저 공격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래서 10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진" 다는 것입니다.
여기 시험에 빠진다는 표현은 걸려 넘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믿음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진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생각해 보면 영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5. 둘째는, 전쟁을 포함한 많은 재난, 곧 기근과 지진으로 인한 환란입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재난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에 초 메가톤 급으로 지구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큰 사건은 일본의 후꾸시마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입니다.
2년 반이 지났지만 방사능 위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상태입니다.
원전 사고는 그 어떤 전쟁이나 기근보다 더 무서운 지구촌 전체의 재앙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의 영광 핵발전소의 경우는 사람 사는 동네와 불과 1키로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며, 그것도 원자력 부품들이 불량품이 많아서 계속 작은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원자력 발전소를 무슨 화력 발전소쯤으로 생각하는, 이런 위기에 대한 불감증이 결국에는 어느 날 갑작스런 재앙으로 나타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또한 한국도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8절에서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 이라는 것입니다.
재난의 시작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런 사건을 가지고 지구 종말을 말하면 그것은 잘못된 정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작금에 일어나는 초대형 사건들을 놓고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종말론으로 사로잡으려고 하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 끝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일할 기회가 아직은 많다는 것입니다.  

6. 셋째는, 9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신앙의 핍박입니다.
이 신앙의 핍박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하면, 바깥으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박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9절과 같은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이미 지구촌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가증스럽고 통탄할 것은 교회 안에서는 신자들끼리의 배신행위로 말미암은 박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주위를 보면 교인들끼리 고발하고 잡아 가두고 미워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문제는 배신과 불신의 현상들이 영적인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재산이나 여러 문제로 싸우면서 세상 법정에 같은 성도를 고소하고 재판에 넘기고 있는데, 이런 사건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을 곳이 없고,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이 있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은 멸망의 징조일 뿐 아직 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낙심하거나 신앙생활을 게을리 할 수 있는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7. 계속해서 예수님은 12절에서 강조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불법이 성행하는 것과 이로 인하여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불법이 성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무법천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국회에서 기독교 신앙을 박해하기 위해서 교묘하게 새로운 법을 만들어 신앙을 규제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불법의 일들로 인하여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9-11절의 말씀을 보면 이 내용은 한마디로 지상 교회들의 타락과 부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교회가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상실하고 세속적인 집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향하는 방향이 경제적인 이익에 있고,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처럼 세력을 불리고 이름을 드러내는 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교회로서의 사명과 기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염증을 느껴 교회를 등진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특효약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13절의 말씀으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특징은 인내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느낀 대로, 감정대로,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나중을 생각할 줄 모르고 멀리 내다 볼 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끝까지 인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인내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멀리 보는데 있고, 장래를 소망하는데 있습니다.
서로 잡아주고 배신하며 실망시키는 일이 매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다 할지라도 고난의 기간이 끝날 때까지 믿음의 반석위에 굳게 서서 낙심하지 않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온간 재앙과 환란이 파도처럼 밀려와도 해안을 지키는 바위처럼, 절벽처럼 환란 속에서도 제 자리를 지키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8. 왜냐하면 14절의 말씀대로 그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란과 거짓과 핍박이 심해도, 예수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생각지고 못할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구원받는 영혼들이 계속 늘어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배교와 미움이 싸여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혹에 빠져 믿음에서 떠난다 할지라도, 다른 한쪽에서는 계속된 구원의 은총이, 성령의 역사가 멈추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이 일을 위해 우리가 받은 사명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사명을 완수하고 믿음을 지키고 마지막까지 승리하려면 말씀의 반석위에 우리 자신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사단의 역사를 바라보지 말고, 환란을 뚫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성령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복음의 사명을 완수할 때 그제야 이 세상은 끝이 난다고 1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종말을 맞은 성도의 지혜인 줄 믿습니다.
종말의 시작이라는 징조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종말의 시작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화의 꿈을 꾸게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9. 지금 우리 주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신앙과 가르침에 빠져 있으니 참 신앙과 바른 신학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종말의 징조로 나타나는 재앙으로 말미암아 고통에 빠져 있으며,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이 무엇인지 삶을 통하여 보여주고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신앙의 핍박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이 지구촌의 사방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인내하고 견뎌낼 수 있도록 사랑과 위로의 손길로 붙잡아 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때 종말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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