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8.4.성전건축의 과제(마태복음 24:1-2)
[성경본문] 마태복음24:1-2개역개정
1.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 성전건축의 과제(마태복음 24:1-2/2013.8.4.오전) 1. 얼마 전 아사히신문 1면에 나오는 천성인어(天聲人語)에 보니 재미있는 글이 있었습니다. 숲 속의 새들이 먹이를 찾아 이 나무 저 나무로 이동하면서 벌레를 잡는 이야기인데, 첫 번째 새는 한 나무에서 벌레 5마리를 잡으면 다음 나무로 이동한다는 전략을 세워 놓고 움직였습니다.이렇게 되면 벌레 한 마리도 없는 나무를 만나면 영원히 그곳에서 이동할 수 없게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두 번째 새는 한그루의 나무에서 5분 동안만 벌레를 찾은 후에 다음 나무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벌레가 많이 있는 나무를 만나더라도 도중에 벌레 잡는 일을 그만 두고 다른 나무로 이동해야 하는 단점이 있으며, 또한 옮겨간 다음 나무에서 한 마리의 벌레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새는 자신이 정해 놓은 일정한 시간 안에 잡은 벌레가 예상한 숫자에 미치지 못하면 다음 나무로 이동한다는 전략을 세워서 움직였습니다. 새 마리의 각각 다른 새들의 전략 중에서 마지막 새의 생각이 제일 지혜로운 방법이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다른 새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예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생물이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서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은 살아 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학습하고 그것을 통해 지혜를 얻고 힘을 배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런 영적 육적인 경험을 통해 새로워지고 능력 있는 성도로 성장하는 줄 믿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전의 건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먼저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의 성전 역사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왕상6:38절에 보니 7년에 걸쳐서 완공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기원전 959년 이었으니 거의 3천 년 전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스룹바벨에 의한 성전 재건축으로 기원전 520년 때의 일입니다. 스룹바벨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1차로 귀환했던 유대인들을 모아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의 극심한 방해를 받아 중단했던 것을(슥4:11-16),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에 힘을 입어 4년 후인 기원전 516년에 완성한 성전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 당시의 성전으로 이것은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지은 성전으로 기원전 20년에 시작하여 서기 63년에 완공한 헤롯의 성전입니다. 그 때로서는 아직도 완공되지 않은 성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에게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크고 위대한 건축물이었고, 많은 여행객들에게 경탄과 찬사를 불러 일으켰던 성전인데, 기원70년의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이 헤롯 성전은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건축을 완성한 지 7년만의 일이었습니다. 현재는 성전의 서쪽에 있는 벽의 일부만 남아 있는데 이것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한국 교회의 건축 붐이 한 세대를 넘기면서도 여전히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많은 대형교회들이 수천에서 수만 명, 혹은 수십만을 헤아리는 성도들을 거느리고 교회 건축물의 위용과 함께 이 시대의 영적인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신학도들과 목회자들도 선배들의 성공한 목회(?)를 꿈꾸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도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 건물이 크면 클수록 그 목회는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를 받고, 목회자는 영력이 충만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형교회와 그 목회자들이 그런 힘을 배경으로 실제적으로 훌륭하고 많은 일들을 해냈고 또 귀한 일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무교회주의가 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内村鑑三) 라는 분이 주창하고 만든 조직으로 우리나라에는 김교신, 함석헌씨가 그 영향을 받아 「성서조선」이니 「씨알의 소리」 라는 월간지도 창간하면서 활동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왜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며 기성교회에 등을 돌리게 되었느냐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교회가 건물을 세우고 당회니 제직회니 조직을 만들게 되면 교회를 관리하고 운영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관리를 위해서 재물이 필요하고 조직을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여러 가지의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고 이것이 결국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세상에 오염되는 잘못된 신앙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의 건축이나 조직을 포기하고 정말 자신들이 원하는 신앙의 본질적인 것은 반드시 지켜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귀 기울여 들을만한 것이지만, 그러나 교회론과 기독론에 관해서 결코 바른 신앙과 신학이라고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야 하는데 무교회주의는 이 부분이 약한 것 같습니다. 4.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전을 가리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마21:12절에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하는 자들의 상을 뒤집어엎고 그들을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일반적인 가치관에서 보면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이 매우 합리적인 방법일수도 있습니다. 교회도 운영을 해야 하니 장사꾼들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임대료를 받는 것이 서로가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보다는 큰 교회가 사람이 많이 모여들과 크고 아름답고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을 마련하고 문화센터 같은 것도 운영하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삼조가 아니겠습니까? 일주일 내내 교회를 비워두는 것 보다 그 빈 공간을 지역사회나 경제적인 활동에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주일에도 교인들이 예배하고 바깥에 나가 식당에서 사먹는 것 보다는 교회에서 식사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 안에는 식당도 카페도 생겼고 서점도 있습니다. 교회로서는 할 수만 있으면 교인 중에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 물질이 많은 사람, 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에서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습니다. 헌금하는 사람들이 자루로 쏟아 붙는 것은 모른 척 하시고 과부의 두 렙돈 헌금에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시고, 성전에서 장사를 못하도록 사람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교회를 유지하려면 많은 재물이 필요한데 왜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행하셨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5. 문제는 인간은 연약하고 심히 제한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원하는 것 다 이룰 수 없으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건물도 중요하고 조직도 중요하지만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본질적인 것들입니다. 예수님이 왜 예루살렘 교회를 보시고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존속시키는데 필요한 것이 사람들의 지혜나 세속적인 방법의 경영이 아니라 두 렙돈 헌금한 과부처럼 온전한 예배와 헌신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의 현실을 보면 성전을 건축하는 것 때문에 정말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아름답고 귀한 것들을, 신앙의 본질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 건축이라는 것 이것 때문에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변질되고, 삶이 고통스럽고 그들의 영적인 꿈들이 무너진다면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건축한 것이 아니라 건축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욕심과 야망에 미혹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길 때 섬김을 받는 부모 입장에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제 자식이 팔을 잘라내고 눈을 빼가면서 까지 부모를 섬기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도리어 자식 잘되는 일이라면 부모가 팔을 자르고 눈을 빼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 사랑이듯이 우리 하나님의 사랑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성전 건축 때문에 사람 도리를 제대로 못하고, 돈을 갚지 못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고 쫓겨 다니고 약속을 어기고 코피가 터지고 간이 다 녹아내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건축을 그만두라고 하실 것입니다. 6. 예수님이 우리들 생각처럼 교회들마다 성전을 건축해서 봉헌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왜 부자들의 헌금은 칭찬하지 않으시고, 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우리가 지키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그런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는 이 말씀은 사람들이 그렇게 수고하고 많은 헌금으로 정성을 다하며 온갖 귀한 것들을 희생해서 세운 교회 건축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운 것은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도 시간이 갈수록 무너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한계시록에 보면 종말에는 하늘과 땅도 다 사라지고 만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유한하고 비본질적인 것들 때문에 우리의 생명만큼 귀하게 여기는 영적인 것들이 상처를 받고 흔들리고 변질된다면, 그리고 많은 영혼들을 실족하게 만들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크게 여기고 귀하게 여겼던 교회 건축은 무엇이며 교회의 관리며 조직은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물론 교회건축도 필요하고 조직도 필요하고 할 수만 있으면 더 크고 멋지고 아름다운 교회를 짓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시험 들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싸우고 그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으며 그것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것들이 망가지고 오염된다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면 하던 건축도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왕상 8:27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 후에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솔로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건축은 했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7.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체가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성도는 교회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고전12장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말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고, 하나된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 되는 것, 이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성전건축도 중요하지만 예배로부터 시작하여 선교하는 일, 구제하는 일, 섬기는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 될 때, 이것이 참된 교회의 표상입니다. 약한 것과 강한 것, 많이 쓰임을 받는 것과 덜 쓰임받는 것, 요긴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 사이에 분쟁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면 몸의 어느 것 하나라도 고통을 받으면 전체가 고통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 들어 있다 보니 여러 가지 불편한 것도 많고 어려운 일들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과 영적인 자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모이는 장소로서의 구심점도 필요하고 그래서 건축은 필요하고 교회의 조직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 때문에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곧 성도들의 신앙이나 양심이나 삶의 모습이 망가지거나 오염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욱이 건축하는 것 때문에 하나된 것이 깨어져서는 더욱 안될 것입니다. 더욱 교회가 건축이나 전도니 섬김이니 이런 일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어서도 손가락질을 당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교회는 재정이 어렵지만 누가 얼마나 헌금을 했는지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이 믿음의 공동체를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시고 그래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어려운 환경을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때를 따라 건축할 수 있도록 하나님 스스로가 역사하시는 그 때까지 함께 기도하며 인내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