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16.그리스도는 누구인가(마태복음22:41-46)

[성경본문] 마태복음22:41-46개역개정

41.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마태복음22:41-46/2013.6.16.오전)
1. 21세기는 하룻밤 자고 나면 모든 것들이 변화는 그런 시대입니다.
지금 미국 사회에서는 동성애는 죄가 아니고 도리어 동성애를 거부하는 것이 죄가 되고 있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그런 상황에 있다고 합니다.
미국 워싱턴의 한 꽃 가게 주인은 동성결혼식에 꽃 판매를 거절해서 고소를 당했고, 오리건 주의 빵집 주인도 같은 이유로 빵을 파는 것을 거절했다가 고소를 당했는데, 동성애 지지자들이 매일 장사를 방해하고 협박하고 자녀들에게도 저주를 퍼 붓는 바람에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시험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돕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 있어서 이전보다 영적인 환경이 얼마나 어려워졌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 보다는 사람의 권리를 앞세우고, 하나님의 은혜 보다는 사람들의 인권을 더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지만물은 물론이고 사람은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바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그의 형상을 입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고난은 있어도 하나님이 능히 도우시고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영적인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키려는 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2.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이 유다 종교지도자들과 더불어 오랫동안 논쟁하신 것들 중에 마지막 논쟁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에게는 하루하루가 너무 귀하고 소중한 시간들이었지만, 어리석은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모함하고 올무에 걸리도록 시도 때도 없이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이런 논쟁을 두 번 다시 재현할 수 없도록 모든 대적자들의 입을 막아버린 중요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 마지막 논쟁은 신학적으로나 신앙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신앙의 중심이 무엇이며, 핵심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메시아 즉 그리스도에 대한 논쟁입니다.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이 본문 4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로 인한 고통 속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왕의 혈통을 잇는 영웅이 나타나서 다윗 이상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로마를 물리치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제국인 시온을 건설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홀연히 나타나서 강대한 애급을 무너뜨리고 그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조상들을 홍해를 가르고 구원하듯이 그런 인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우리 가운데 오신 목적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결코 사람들이 원하는 육신의 형통함이나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왜 메시야로 오시면서 그 목적이 인간의 형통함이나 행복이 아니란 말입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병에서 모조리 해방시켜 주시면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하고도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잊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고통하며 죽어가는 불행의 근본적인 이유는 죄 문제에 있습니다.
그래서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더 많은 갈등과 고통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인간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가 그 좋은 예가 됩니다.
19절에 보면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한" 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사치하며 즐기며 놀았다는 말입니다.
돈 쌓아놓고 하고 싶은 대로 즐기고 싶은 것을 다 누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바깥에서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위해 온갖 짓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불꽃 가운데서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할 한 방울의 물도 얻을 수 없는 곳에 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부자가 돈만 있으면 인생의 문제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결과를 보니 자신이 돈과 세상에 속았던 것입니다.

4. 사람들은 지금도 세상에 속고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죄 문제는 해결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육신 문제만 해결하려고 바쁘게 설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사는 것이 지옥 같은데 죽어서 이것보다 더 하겠느냐고 말하는데,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지금 살아서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이 죄 문제가 해결이 안되기 때문에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이 죄 문제를 해결해야 세상에서도 고통과 저주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영원한 고통인 지옥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상에서도 지옥생활이 변하여 천국 생활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신앙이 계속해서 변절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보면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계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생각으로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고, 이 사람은 갈릴리 출신이고, 이 사람이 함께 하는 사람들은 전부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자들과 죄인들과 천민들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에게 무슨 힘이 있으며 자랑거리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이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리새인들의 생각과 판단이 족보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족보도 필요하지만 족보에 빠지면 그곳에는 영생도 없고 미래도 없고 오직 과거뿐이라는 사실을 이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5.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육신으로, 지식으로 보면 전부 모순투성이입니다.
이해가 안되는 말씀이 너무 많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구원의 메시야로 믿어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식은 머리로 받아들이고, 사랑은 가슴으로 받아들이듯이, 복음은 심령으로 받아야 하는데 계속 지식을 받는 것처럼 머리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머리로만 자꾸 받아들이면 나중에는 돌아버립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어머니와 어린아이는 하나가 될 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기를,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인가 물었고, 그들은 대답하기를, "다윗의 자손"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지식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들은 알고 있는 상식대로 머리의 생각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의 질문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기록한 시편 110편 1절 이하의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한 것으로, 43-45절에 보니,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였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에게 무릎을 꿇고 나의 아버지여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다윗이 장차 자신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 즉 예수를 가리켜 "나의 주" 라고 고백했으니 바리새인들의 머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못하였고, 그 이후로는 감히 질문하는 자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두 번 다시 예수님에게 시비를 거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6.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것은 오늘의 우리들의 문제점도 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는 예수님의 질문을 통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믿어왔던 잘못된 전통적인 신앙적 가치관을 인정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메시아로 인정하기는 더더욱 싫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통하여 수도 없이 강조해 오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그들 앞에서 많은 기적과 능력들을 보여 주셨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께서 친히 증거 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증거를 받고도 믿지 아니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의 메시아로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증거가 부족해서 그렇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많은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바알세불 즉 귀신의 왕, 사단의 힘을 빌려 행하는 것이라고 왜곡하였습니다(마12:24).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제 고집에 망하고 만 사람들입니다.

7. 우리가 본문의 통해서 반드시 기억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로 그 안에는 다윗의 혈통을 잇는 인간으로서의 예수가 계시며, 동시에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실체가 존재하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골2:9) 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육체 안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으로서의 예수만이 아니라 하나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향해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 이라고 고백하였고, 이 고백을 예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같은 말씀을 배우는 것 같아도 생각이 다르면 믿음의 길을 끝까지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자들과 많은 교인들이 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처럼 유대주의 신앙에 속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고, 그래서 동정녀 탄생도 부인하고, 부활과 승천도 부인하고, 그분의 재림도 부인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전부 무시하고 부인하고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그런 신앙 속에서 무슨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며, 무슨 기도의 응답이 있으며, 그런 신앙의 모습으로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배우에서 활동하는 사단의 역사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8. 유대인들은 늘 다윗 시대 이상의 시대를 재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 보다 더 크고 강대한 나라, 그 때 보다 더 위대한 민족을 꿈꾸면서 살아왔지만, 현실은 늘 약소국으로 남의 나라에 짓밟히고 빼앗기는 비참함을 경험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강력한 메시아를 대망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동의도 없이 제 마음대로 와서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는 일만 행하고 정작 원하는 일은 돌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다윗의 자손" 뿐만이 아니라, 다윗이 나의 주라고 부르는 존재임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은 다윗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과 권세로 저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누구보다도 성경을 잘 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에 관해서도 충분한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도 자신을 갖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왜 다윗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나의 주" 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 가 되어야 하는지 왜 나와 나의 자녀들의 "주" 가 되시는지 분명한 답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도 바리새인들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9.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고, 이 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과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이는 믿는 자에게 하나님 자녀로서의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며 영원한 천국의 시민으로 영생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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