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24.성도의 힘(마태복음 21:18-27)

[성경본문] 마태복음21:18-27개역개정

18.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2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도의 힘(마태복음 21:18-27/2013.2.24.오전)

1. 믿음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무슨 단어가 가장 적당할 것 같습니까?
여러 가지 표현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타당한 표현 중의 하나가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야고보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고 하면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약2:22,26)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행함이라는 것이 힘을 말하는 것이고, 이 행함이라는 힘을 통하여 사람의 믿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앙을 영적인 힘이라고 말하는데, 영적인 힘이 크고 많으면 능력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이나지만, 영적인 힘이 적으면 제 믿음 하나 지키기도 어려운 법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한계점 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비참함을 느끼고 패배의식을 느끼고,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인간이 한계상황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고 해도 그 사람에게 영적인 힘이 있으면 큰 역사가 일어나고 예수님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일본은 물론이고 지구촌의 환경이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구촌의 환경을 볼 때,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방법이나 가치관으로는 이 어려운 세상을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너나 할 것 없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변화를 시도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지만 변화한다는 것도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믿음으로 바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무엇이고 세상을 이기는 힘이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살펴보고 능력과 기적과 구원을 일으키는 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2. 본문 18절을 보면 예수님의 일행이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이 아침부터 시장하셨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루 전의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하며 영접하던 장면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보내시는 생애의 마지막 주간의 첫 아침을 굶주림으로 맞이할 정도로 군중들의 환호는 공허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밤에 쉴 수 있는 처소가 필요했고 아침을 맞이하면서 배를 채울 빵이 필요했지만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돌로 떡을 만드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능력이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위해서는 그런 능력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에서 예수님은 원하시는 것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의 저주를 받아 그 즉시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막11:13절에 같은 사건의 내용 중에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 라고 하는 말씀을 가지고 논란을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 저자 마태가 그 내용을 생략했다는 것은 이 무화과의 때라고 하는 시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이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예수님이 강조하시려는 내용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잎사귀가 무성하여 사람들에게 열매가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무화과나무가 이 당시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23-24장의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과 성전의 멸망을 이 무화과나무의 사건을 통해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3. 이것은 본문 20절 이하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말랐나이까" 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이 하신 대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해서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의 문제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을 상실한 것에 두고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문제라는 것이고 의심한다는 것은 그들이 잘못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로 비유되는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이요 스스로 회생할만한 믿음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곁에 있는 제자들조차도 이 일을 "보고 이상히 여겼" 고,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라고 할 정도로 그들도 눈앞에서 일어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사람이 질병이나 노령이나 사고로 인해서 육체의 힘이 약해지면 행동반경이 줄어들고 활동량이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그렇습니다.
영적인 힘이 약해지면 의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임하고 영적인 시야도 점점 좁아집니다.
문제는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이기고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5:8)다고 했는데, 먹잇감을 찾으러 밤낮 배고픈 사자처럼 돌아다니는 이 마귀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4. 오사카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한국에서 오시는 목사님들이나 성도들은 이곳 형편이 어떤지 생각하지도 않고 의논도 하지 않고 무조건 공항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낮선 곳에 찾아오니 당연합니다. 두려움이 있고 걱정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나 외국을 많이 다니신 목사님들은 이렇게 저렇게 찾아오시라고 하면 잘 찾아옵니다.
낮선 곳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훈련이 되어 있다는 것은 경험이 많다는 것이요 그래서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 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수지에 가면 많은 물이 모여 있고, 바다에 가면 바닷물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저수지의 물은 가뭄으로 말라버릴 수 있지만, 바닷물이 말라버리는 것은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요 그런 것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닷물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닷물은 사라질 수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음만큼은 없어져서는 안되는 것인데, 없어질 것은 남아 있고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사라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5. 목욕탕에 물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생선 가게에 생선이 없으면 장사는 망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믿음을 찾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지상교회가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교회 문을 사람들이 닫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닫아버립니다.
이것이 그 교회 안에 있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처방을 주셨습니다.
열매 맺지 못해서 죽어가는 교회를 살리고, 믿음이 없어 의심하는 성도들을 살리는 비결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2절에 보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너희가 할 수 있고, 기도하면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21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1절에서 마음에 걸리는 단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이라는 단어와 무엇이 "있고" 와 무엇 하지 "아니하면" 하는 단어입니다.
이것들은 전부 가정법이고 조건적이고 그래서 현재와는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메말라 버린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있는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눅7:9) 하시며 그의 행위를 보고 감동을 받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감동시킬 만한 믿음이 이스라엘 가운데 찾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감동시킬 만한 열매가 없으면 우리는 사기꾼들입니다.

6. 제 능력을 믿고, 제 실력을 믿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소유가 많은 사람도 기도하지 않으며, 운이 좋은 사람도 그렇고 얼굴 예쁜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말로 다른 믿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할 만한 사람이 실패하고 문제없어 보이는 사람이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기도를 강조하는 것입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내 삶의 한가운데로 가져오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21절의 말씀은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입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기도할 때 죽어가는 교회가 살아나며, 기도할 때 구원의 문이 열리며 기도할 때 우리의 믿음에 힘과 능력과 기적으로 충만한 줄 믿습니다.
23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능력 행하시는 이런 권세를 가지고 종교지도자들이 시비를 걸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26절에 보니 백성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왜 백성들이 소동하는 것은 무섭고 예수님의 심판은 무섭지 않습니까?
그들의 믿음 속에서 말씀이 사라지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가지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도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아예 기도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기도하면서 의심하고 기도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기도하면서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도 응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7. 마가복음 13:13절에 보면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했으니, 인내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완성을 이루려면 성도의 힘은 필수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반드시 기도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보면 기도와 관련된 하나님의 약속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22절에 기록된 것처럼 "너희가 기도할 때"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무화과나무가 즉시 뿌리째 말라버리는 것처럼 말만 하고 명령만 해도 그대로 됩니다.
산을 옮겨 바다 가운데 던질 만한 능력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기도하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도 피곤하여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김으로 아론과 홀이 모세의 두 손을 붙들어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였더니 그 전투에서 승리하였다고 했습니다(출17장).
이것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탄식이 무엇입니까?
믿음도 없고 의심만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이스라엘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힘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즐거움은 기도 응답에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기도의 응답으로 세상을 이기고 권세를 이기고 온갖 핍박을 이기면서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성도의 사명은 기도의 능력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구원을 이루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힘이요 교회의 힘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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