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26.신앙고백(마태복음 16:13-20)

[성경본문] 마태복음16:13-20개역개정

13.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신앙고백(마태복음 16:13-20/2012.8.26.오전)
1. 지난 20일 부터 22일까지 동지사대학의 수양관에서 관서지역 선교사들의 수양회가 열렸는데, 그곳에서 보고된 내용은 한국교회가 전도 할 때 돌멩이를 맞고 부상 입은 성도가 있고, 고함지르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등의 폭언을 퍼붓는 등의 몇 건의 사건들이 보고되었고, 화요일 밤에는 한국 국회의원 장로님의 일본 입국도 금지되어 공항에서 기다리던 선교사님이 되돌아와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일 관계가 매우 시끄러운 가운데 있습니다마는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중요한 것은 이웃과의 화평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이익과 권리를 찾기 위해서 분노하고 싸움질 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런 권리와 이익을 뒤로 미루고 다시 손을 잡고 화평을 이루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화평보다는 분노와 분쟁을 앞세우면서 살아온 이유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질병의 문제는 근원을 치료해야 해결되듯이 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이나 사회가 화평을 잃어버리고 근심과 질병과 분쟁으로 가득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라와 나라가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며 피를 흘려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과 화평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것임을 안다면 한일 간에 작은 섬이나 왕의 명예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서로 물고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분쟁이 있는 곳에 화평의 복음을 위해 일하도록 우리를 보내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는 것입니다.
언 듯 생각하면 연말의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서는 사람들처럼 예수님이 세상의 여론에 신경을 쓰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을 보면 예수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닌, 지금 예수님 곁에 함께 하고 있는 이 제자들이 과연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따르고 있는지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2. 제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다, 엘리야다, 예레미야가 다시 살아 우리 가운데 나타났거나, 아니면 그들과 같은 사명을 띠고 이 땅에 나타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에는 전연 관심이 없고, 제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답 중의 하나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불리는 16절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고백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셨고 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리고 칭찬을 듣기에 충분한 고백입니다.
왜냐면 그는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요한이니 엘리야니 하는 것은 그의 신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해방을 위해 오신 분이거나 예언자 정도의 수준이나 병들고 가난한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오신 성인군자쯤으로만 생각했지 하나님의 아들인 줄은 몰랐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의 생각의 한계였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인간의 한계, 생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 처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저주와 고통 속에 방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받은 복음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칭찬하시면서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이상합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17)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작 선지자 중의 하나이거나 성인군자쯤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볼 수 있었던 영적 통찰력이 베드로 자신이나 그의 조상의 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이 알고 깨닫도록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스스로 깨달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반은총으로서의 계시가 있습니다.
롬1:19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능력과 신성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으며 그에게 가까이 나오지 않습니까?
사도바울은 그 이유를 인간의 미련한 마음과 더러운 정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두 번째 계시가 있는데 그것은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우리에게 특별계시로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계시된 말씀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게 하셨고, 신약시대의 사람들에게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함으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4.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이 구원을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흔들림이 없이 지키고 세우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예배에서 사도신경을 통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이 신앙고백을 천천히 뜻을 음미하면서 외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이 신앙고백은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고백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사도신경을 만들게 된 것은, 사도 이후의 신앙 세대들이 박해와 이단들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바로 전하고 바로 지키기 위해 사도들의 교훈을 하나의 강령으로 만든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라고 불리는 신앙고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기원100년경에 로마교회에서 세례를 베풀 때 사용했던 신앙고백과 일치하며, 기원 325년에 열렸던 니케아 종교회의 등의 여러 시대의 종교회의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신앙고백문서로 정착이 되었다고 합니다.  

5.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신앙고백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인간 구원은 신앙고백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또 세례를 베풀고 제자를 삼는 일에 있어서 반드시 신앙고백을 하도록 만듭니다.
이유는 이 신앙고백을 통해 우리가 받은 죄 사함의 은총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룩함과,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을 이러한 고백을 통해 확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와 은총이 없이는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 수 없으며,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적인 목마름의 갈급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우상숭배나 여러 가지의 미신에 빠져 고통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도신경과 같은 신앙고백이 주어지고 그것을 신앙의 공동체와 함께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요 은혜중의 은혜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감히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계시의 은총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성경에 능통한 많은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들은 너무 적었습니다.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해서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요4:13절에 보니,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아느니라」고 하였으니 성령 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계시적 은총을 입을 수 있으며 성령 받은 자만이 예수를 그리스도 곧 구원의 메시아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뵐 때 그 분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보며, 그리스도를 구원의 메시아로 볼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깨닫게 하시는 남다른 은혜를 입은 결과입니다.

6. 중요한 사실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의 신앙고백위에 주님이 친히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베드로를 교회의 우두머리로 삼거나 베드로에게 교회의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는 천주교의 잘못된 해석이 아니라, 그가 고백한 이러한 신앙고백 위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석」이란 원문에 보면 3인칭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반석이 베드로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고백이 없는 교회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를 나의 구주로 섬기며 고백하는 이 신앙고백 위에서 반드시 교회가 세워져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개인의 사유화가 될 수 없으며,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세속화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베드로가 아니고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아니며 오직 교회는 주님의 피 값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그분의 몸이요 그분의 소유이며 그분께 속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것은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는 말씀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내 교회」는 예수님께 속한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세운다」는 말은 원문에 보면 내가 세울 것이라는 미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설립자는 예수님이고 그 주인 또한 예수님이심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온전한 믿음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는 분명 예수님의 교회요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의 소유인 줄 믿습니다.

7. 그렇다면 베드로의 바른 신앙고백을 통해 나타난 결과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교회 중에는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없는 교회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유물로 전락한 교회가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기업처럼 더러운 이익을 위해 변신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입으로는 진리와 공의를 외치면서 서로 싸우고 분쟁하는 교회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지만, 이런 교회는 음부의 권세에 의해 삼킴을 받아 이름은 그리스도의 교회이지만, 이미 음부의 권세에 짓눌려 힘 없고 무능한 교회일 뿐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없는 교회는 마귀를 이길 수 없고 사망의 권세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속한 교회는 예수님처럼 부활의 능력을 받아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마귀와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이 시대의 구원의 방주가 되는 줄 믿습니다.
둘째로, 교회가 「천국의 열쇠」를 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의 열쇠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고 그것을 지키려고 힘쓰는 자들에게 주신 영적 권세를 말합니다.
또한 이것은 사랑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과 희생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은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곧 다함이 없는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함께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같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줄 믿습니다.
또한 이것은 전도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는 전도의 방법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구원하도록 하나님은 그 특권을 우리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땅에서 어떤 것도 묶을 수 있고 어떤 묶인 것도 풀어낼 수 있는 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주님의 몸 된 교회만이 소유할 수 있는 특권인 줄 믿습니다.

8.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동일한 신앙고백의 선상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가 자신의 눈앞에 계신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계시적 은총에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고백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위해 온몸과 생명까지 바쳐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 생명과 남은 생애를 온전히 드렸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매우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습니다.
이 때 신앙고백이 살아 있는 교회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교회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말씀 중심의 삶이 필요합니다.
껍데기 신자가 아니라 말씀으로 채움을 입는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늘 성령 충만한 삶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우리 자신을 십자가 제단에 희생의 제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신앙고백이 사단의 세력을 묶어 버리고, 우리 자신을 말씀 위에 바로 세워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도록 하는 줄 믿습니다.

신앙고백이 살아 있는 성도,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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