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7.8.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태복음 14:13-21)

[성경본문] 마태복음14:13-21개역개정

13.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태복음 14:13-21/2012.7.8.오전)
1.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려 고생을 하다가 엘리사가 능력이 많은 줄 알고 수많은 보화를 싸들고 그를 찾아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문도 열어보지 않고 하인을 시켜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깨끗해 질 것을 말합니다.
온갖 정성과 수고를 다하여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아온 결과가 말도 안되는 태도와 치료법이었습니다.
아람 나라의 최고의 권세를 가진 자가 찾아왔으면 정중하게 맞이하는 것이 예의이고, 또 문둥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나아만의 표현대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왕하5:11)다고 생각 했으니 나아만이 수치와 모욕감에 치를 떨며 노할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던 나아만이 지혜로운 종들의 권고를 통해 노여움을 풀고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 강에 7번을 들어갔다가 나온 결과,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14) 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병들고 실패하고 고생하고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통해 인생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다면 우리와 세상 사람들이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의 본질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을 가리켜 이것이 참 신앙이라고 말 할 수가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제목으로 신앙의 본질적인 것들을 깨닫고자 합니다.

2. 오늘 본문의 상황을 보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든 수많은 군중들은 그분의 귀한 말씀과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이미 저녁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목자 없는 양떼들처럼 고생하고 방황하는 이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치료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을 뒤늦게야 아셨습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 자고 했습니다.
말이 사먹게 하자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을 정도면 당시 상황으로는 잘 사는 편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형편을 왜 제자들이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제자들은 수많은 군중들이 귀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속히 해산을 시키고 우리끼리 예수님을 모시고 어디로 가서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은 의외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16)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의 말씀은 말도 안되는 소리요 불가능한 것을 제자들에게 주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로는 예수님이나 제자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도 더 잘아시는 예수님이 지금 말도 안되는 것을 제자들에게 주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빈들이고 저녁때가 되었는데 어디 가서 이 많은 사람들의 양식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불가능한 일입니다.

3.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어려운 것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한 번 해봐!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어린 자녀의 생각에는 그 수준에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고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경험이 있고 지식이 있고 가진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자녀에게 해 보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정 못하면 부모가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에 해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과 판단으로는 안되는 것 같아도 부모의 명령이니까, 부모를 믿으니까 한 번 해 보는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이것은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난처하고 말도 안되는 말씀이지만, 예수님은 이미 해결책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12명의 제자들은 이 명령으로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 중에 지혜로운 제자들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뭔가 가능성이 있으니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제자들이 생각해 낸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 속에서 먹을 것이 얼마나 나올 수 있는지 한 번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였습니다.

4. 그들이 찾아낸 것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겨우 찾아낸 것은 예수님 혼자 드시기에도 부족한 어린아이의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예수님께로 가져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말씀에 대한 순종이고 믿음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종살이 하면서 고생고생 하다가 겨우 출애급 했는데 좋은 길 열어 주시지 않고 왜 광야에서 그것도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고생시킵니까?
광야로 사막으로 인도함을 받은 그 길이 시편 23편에 나오는 목자가 인도하시는 그런 길이 아니라 항상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편으로는 오래된 노예근성의 뿌리 뽑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굳센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고 이 훈련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축복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길도 없고 물도 없고 양식도 없고 그늘도 없고 쉴 곳도 없는 사막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을 붙들고 나아가면 어떤 길이 열리는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을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난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할 수도 없는 것을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복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셨고, 그 제자들은 군중 속에서 찾아낸 떡과 물고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축복 기도하시고 떼어주신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다 배불리 먹고 12광주리에 가득하도록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세상일도 방법과 결과를 미리 알고 나면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방법을 모르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를 때 힘들고 어렵고 난감한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나면, 끝내고 나면 쉬운 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에는 불평이 나오고 불만이 생기고 낙심하지만, 알고 나면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특별 계시를 받았다 응답을 얻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믿음이 연약해서 그런지 그런 것이 잘 안됩니다.
계시 잘 받고 음성 잘 듣는 사람들이야 사역과 신앙생활이 쉬울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잘 안되는 사람도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알 수 없으니 먼저 믿고 순종해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본문과 같은 사건이 나옵니다.
그곳에 보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이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이 계산에 빨랐기 때문에 이 군중들의 배를 채우려면 200데나리온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적게 잡아도 200만 엔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것입니다.
데나리온 이라는 화폐단위는 로마 사람들이 발행한 은으로 만든 동전으로 그리스의 드라크마와 거의 같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노동자 하루의 품삯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유럽이 유로 경제권을 만들기 전에 그리스의 자국 화폐단위는 드라크마였습니다.

6. 부산에는 예로부터 무당이 많았고, 서울에는 점쟁이들이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들이 만난 문제점은 잘 찾아냅니다. 그래서 족집게라는 말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만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무당이나 점쟁이들에게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내가 만난 문제를 귀신같이 찾아내니 문제도 귀신같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기 때문에 무당이나 점쟁이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귀신에게 속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인생을 만드시고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해결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교인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머리는 똑똑한데 행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깨닫는 것도 많고 그래서 할 말도 많은데 정작 문제를 해결하는 믿음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빌립같이 계산에 빠른 교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이 안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한6:8절에 보면 제자 중에 한 사람인 안드레가 나옵니다.
이 사람이 사람들 사이로 다니면서 먹을 것을 가져온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아마 어떤 제자들은 제 먹을 것도 없는데 누가 먹을 것을 내 놓을 수 있으며, 만일 가져왔다고 한들 그것을 어찌 내어 놓겠는가 생각하고 찾을 생각도 하지 않은 제자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 하나가 자신의 있는 것을 그대로 내어 놓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 같이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7. 설교 서두에서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고 무엇을 가리켜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안드레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군중 속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찾았고, 그 오병이어를 많다 적다 판단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주님에게로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순종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믿음의 능력을 말씀하실 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고 했습니다.
순종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순종을 먹고 자라는 생명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지만, 할 수 없는 나머지 부분은 믿고 주님께 맡겨야 그것이 신자고 제자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고 했을 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먹을 줄 수 있을는지 생각하고 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적고 보잘 것이 없는 존재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일단 있는 그대로 나타난 그대로 주님께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왜? 나머지는 주님께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8. 본문 18절에서 주님은 두 번째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게로 가져 오라」 는 말씀입니다.
믿고 주님에게로 가져가면 주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데 지금까지 내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이것 가지고 무엇을 할까? 이것은 너무 적다,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부끄러워서, 예수님께 죄송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아낸 것이 어린아이가 겨우 먹을 수 있는 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아시면서도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에는 수많은 군중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 문제는 주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다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에 순종한 것 뿐입니다.
내가 순종한 결과는 적은 것이고 보잘 것이 없는 것이지만 일단 우리의 순종 한 결과를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릴 때 주님은 그것으로 이스라엘을 애급의 손에서 구원하시기도 하셨고, 이방인 나아만 장군도 치료해 주셨고, 군중들의 굶주린 배도 채워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것과 「그것을 내게로 가져 오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앙은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순종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십자가를 붙드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 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은 무능하고 못난 사람들의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주받은 십자가에서 도리어 구원을 경험하였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감사와 기쁨과 은혜와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말도 안되고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도 말씀에 순종하여 믿고 가면, 믿고 순종하면 그곳에서 능력이 나아고 축복이 나오고 기적과 구원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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