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7.하늘의 영광, 땅의 영광(마태복음 6:1-18)

[성경본문] 마태복음6:1-18개역개정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

17.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늘의 영광, 땅의 영광(마태복음 6:1-18/2011.6.27.오전)

1. 마태복음 6장에서 기본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3가지입니다.
구제와 기도와 그리고 금식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천국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구제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행위 중에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고, 기도는 영혼의 호홉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으로 대화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금식은 개인의 경건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규범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에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금식했습니다.
개인의 금식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민이나 문제,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수단으로 금식했습니다.
이런 것은 이슬람교도들의 의무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신앙고백, 하루 5번의기도, 금식, 구제, 그리고 성지순례를 신앙의 5대 의무로 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규범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의 분출구로 삼으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나 구제, 그리고 금식들이 신앙인들 가운데서 육신의 자랑스러운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시면서, 잘못하면「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할 것」이라 경고하심으로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조심한다면, 장래에 소망이 있으며,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을 얻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2. 본문의 구제, 기도, 금식 이 세 가지는 믿음으로 바로 행하기만 하면 상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들을 잘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은밀하게 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반드시 상이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과 넷째는 잘못 행하면 상은커녕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의 영광이요 상이요 인정받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 풍조는 나중에는 산수 갑산을 갈망정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 탈렌트, 가수 등의 사람들은 잠시잠깐의 인기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온 몸을 마치 로봇처럼 개조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인기가 떨어지고 내 뜻대로 안되면 쉽사리 삶을 포기합니다.
왜 사람들은 잠시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허무한 세상의 영광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는 마음,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하는 마음,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이같은 교만한 마음은 전부 죄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약1:15)다 했습니다.
남들보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 천사를 마귀로 만든 것입니다.
허황된 마음, 허영심이 가롯유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도 그 기도를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의 내용을 사람들이 듣도록 외식하는 것입니다.
구제하면서도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해서 나팔을 불고, 금식하면서 금식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반복되고 있는 「외식」偽善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휘포크리테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가면을 쓴 존재를 말합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거짓으로 말하고 거짓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상」즉 세상에서 받는 영광이 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구제나 기도나 금식을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제나 기도나 금식은 세상의 영광을 얻을 목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얻을 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하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제하는 동기도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거나 신앙인으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가난하고 연약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같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에서 희생하기를 기뻐하셨듯이 그런 마음, 그런 자세로 구제에 임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목적으로 구제에 임한다고 하면, 가난한 자의 고통을 이용하여 하나님과 더러운 거래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도를 이용하여 자신이 매우 경건하고 의로운 종교인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복잡한 시장 거리로 나가서 그 귀퉁이에 서서 큰 소리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마 예수님도 시장에서 그런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할 수 있으면 골방에서 은밀한 가운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사람이 들어야 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들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듣는 기도는 한 두 번의 칭찬으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능력과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4.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정기적으로 금식했다고 합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쯤에 금식하는데, 이때는 자신이 금식하는 사람임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씻지도 아니하고 머리는 산발을 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얼굴에 횟가루를 바르는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더욱 낮춤으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신앙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위선 속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영광을 얻으려는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그 공로를 남기기 위해서 성전 주춧돌이나 어떤 지정한 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심지어 교회 의자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시대의 징조입니다. 말세의 징조입니다.
신앙이 무너지는 위기 시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제나 기도나 금식이 왜 필요합니까?
세상 욕심과 정욕을 따라가는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요, 우리 보다 앞서 가시면서 사랑과 믿음의 본을 보여 주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수단입니다.

5.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나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구제나 기도나 금식을 반복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점점 더 교만해지고, 점점 더 허영과 욕심으로 충만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은밀한 가운데 행해져야만 하는 구제나 선행이 자랑거리가 되고 있으며, 금식을 통해 얼굴에 광채가 나야 하는데 꼭 마귀 형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늘의 영광이 아닌 땅의 영광을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하심으로 하늘에서 받을 상이 없음을 미리 밝히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말을 많이 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받는 영광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그것이 얼마나 부실하고 연약한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영웅들은 세상에서 받는 잠시잠깐의 자기상이 아니라, 영원한 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받기 까지 인내함으로 믿음을 경주한 줄 믿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밝히기를,「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했습니다.

6. 참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줄 믿습니다.
세상에서의 어떤 보상이나 영광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는「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롬8:18)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 가운데 있지만 세상에서 받는 영광을 기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광, 시간이 가도 모든 것이 바뀌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광을 주님으로부터 받아 누릴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제하고 기도하며 금식하는 자들에게는,「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는 것과,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8)는 것과, 「은밀한 중에 보시」 (18)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땅의 영광이 아닌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는 하늘의 영광이요 영원한 영광인 줄 믿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우리를 기다리는 하늘의 영광 속으로 우리 모두가 들어갈 것입니다.
그 때는 세상의 모든 영광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무한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썩지도 아니하고 다함도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 그 상급을 바라보고 오늘도 구제와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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