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19.남보다 더 하는 것(마태복음 5:38-48)
[성경본문] 마태복음5:38-48개역개정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남보다 더 하는 것(마태복음 5:38-48/2011.6.19.오전)
1. 어느 목사님의 수필에, 남편이 아내와 3자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도망을 가자 홀몸으로 모진 고생을 하며 3자녀를 대학까지 보내고, 20여년의 세월을 교회를 섬기면서 권사의 직분까지 받아 충성한 여성도 계시는데, 50이 넘어 신부전 합병증으로 임종을 맞아 목사님이 심방을 갔다고 합니다.
임종을 앞두고 전 남편이 찾아왔는데 온갖 저주를 퍼붓고는 쫓아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용서한다고 하면서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마음에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왜 죄 지은 사람은 지금까지 건강하고 잘 사는데, 억울하게 버림당한 권사님은 도리어 평생을 고통으로 살다가 먼저 가야만 하는지 그것을 모르겠더랍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죄 지은 사람의 죄보다 믿는 사람이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는 죄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결국 용서란 상대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남보다 더 하는 것, 즉 세상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산상수훈의 내용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의 내용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결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결국 남 다르게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인데 결국 우리의 이웃 이나 원수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며, 또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것입니까?
주님이 명령하시는 이웃 사랑, 원수 사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사랑의 근본이신 주님의 사랑에 남은 생애를 온전히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고자 합니다.
2. 46절에 보면,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사랑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것은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영국의 죤 스토트 목사님은 사랑에 관해 말하기를, 인간의 가장 선하고 고귀한 사랑까지도 어느 정도 이기적인 불결함에 더럽혀져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총이 없다면 이기적인 것이 없는 사랑이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만약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우리는 사기꾼이나 다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형제자매, 즉 믿는 사람들끼리만 인사를 나눈다면 우리는 이방인이나 다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방인들도 자기들끼리는 서로 인사를 잘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7절에서,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필요를 따라 움직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으로 선을 갚고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세속적인 사람들조차도 좋아하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은 한 마디로 남다른 사랑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이웃은 이스라엘 사람 자신들로 동포를 의미하며, 원수는 개인적인 적대자 보다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공공의 적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원수는 악인으로 생각하고, 이 악인의 부류에 세리와 이방인들도 포함시켰고, 그들을 멸시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차별은 이스라엘 선민으로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3. 그러나 주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하나님 자녀된 표시이며, 제자된 자의 가장 중요한 표이기 때문입니다(45).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자야말로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부모를 닮기 때문이고, 제자는 스승의 성품을 닮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이것은 더러운 거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사랑이라는 명목아래 실제로는 매우 더러운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사랑에서 벗어나서 참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빙자한 행위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참 사랑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품에 계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향하신 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4. 그런데 46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온전한 사랑을 행할 때에는 분명한 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상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들처럼 해서는 절대로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나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관심을 사고, 친밀해지고, 남들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면 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남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처럼 해서는 특별한 은혜, 남다른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며, 남다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8-42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남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남들처럼 행동해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이란 오른뺨을 치면 왼편 뺨도 돌려 댈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속옷을 빼앗고자 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내어주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동행케 하려는 자에게 그가 요구하는 것 보다 더 멀리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남다른 삶이요, 남보다 더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가르침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께로 온 것입니다.
어떻게 온 것입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5. 지난번에 한국가서 만난 한 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김영봉 목사님의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것은 윌리엄 폴영이라는 미국 사람이 쓴 「오두막」이라는 소설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해서 내어 놓은 책인데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오두막의 저자 윌리엄 폴영은 선교사 자녀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뉴기니아로 가서 그곳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런 숨기고 싶은 치욕적인 아픔의 기억들을 묻어둔 마음의 깊은 곳이 바로 오두막입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맥은 연속 살인범에게 자녀를 피살당하고 고통 속에 스스로 갇혀 살다가 주님을 만나 치유되고 변화되는 과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무려 29개의 출판사로부터 거부당해야 했습니다.
이유는 무슨 소설책에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007년 출판된 이래 곧장 아마존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이 되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 오두막이 많은 교회에서 소그룹 모임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김영봉 목사님은 자신의 책에서 밝히고 있는 사실은, 오두막의 저자나 그 책 속의 주인공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프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숨겨진 상처가 있고, 숨겨진 분노와 슬픔, 혼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는, 치유되지 못한 이런 상처나 숨겨진 것들을 방치하면 그것이 우리의 성품과 기질,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파괴시키고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고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6.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저 맹목적인 눈이 어두운 사랑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우리 속에 너무도 많은 상처와 숨겨진 고통과 분노가 있음을 아시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까지 기꺼이 희생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우리 각자 속에는 숨겨진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가지만 주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까지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 우리가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향해 분노하고, 멀리하려고 합니까?
그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도 나처럼 숨겨진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고, 숨겨진 상처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아! 이 웬수같은 인간에게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구나.
이 무뚝뚝한 남자에게도 슬픔이 숨어 있구나.
저 여우같은 여자에게도 숨겨진 남모르는 상처가 많구나, 하고 생각할 때 우리의 태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하시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러고 보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요구는 그렇게 어려운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며,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7. 우리 주위에는 문제의 자녀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자녀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왜 부모가 날 더 사랑해 주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 불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일수록 부모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부모님을 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존경하거나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가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나만 차별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해도 불평이고 만족이 없고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만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저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나와 내 자녀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도 너무나 많은 상처와 슬픔과 분노, 그리고 고통이 있음을 잘 아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우리를 품으셨고, 무조건 우리를 용서하셨고, 자녀 삼아 주신 것입니다.
8.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멧세지를 주고 계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사랑의 행함에 있어서 남들과는 달라야 하며, 남들과는 다른 사랑으로 행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으며 동시에 그 사랑에 대한 상이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청년 시절에 산상수훈에 관한 설교를 읽고 은혜를 체험했고, 남아프리카에 가서는 톨스토이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간디는 인도에 돌아와 이것을 실천함으로 인도를 살리고 무저항주의의 선구자가 된 것입니다.
간디는 말씀을 통해서 남들보다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았던 것입니다.
결국, 48절의 「온전한 사람」이란 다름 아닌 원수를 억지로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된 그 사람에게도 나처럼 숨은 상처와 고통이 있음을 알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때 내 안에 있는 상처는 작아지기 시작하고, 무겁게만 보였던 내 안의 짐들은 가벼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예외없이 이런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고통하며 외롭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며, 그 분이 행하신 사랑을 우리도 넉넉히 행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시며, 이런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증거하는 일에 은혜와 축복이 더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