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18.모든 일에 부요한 사람(고린도후서 9:10-15)

[성경본문] 고린도후서9:10-15개역개정

10.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12.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13.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4.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15.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모든 일에 부요한 사람(고린도후서 9:10-15/2010.7.18.오전)

1. 1940년대 매우 어려운 시절에 어느 목사님이 시골 교회 전도사님을 찾아갔는데,
그 당시는 잘 아시는 대로 끼니를 찾아 밥을 먹는다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닐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먼 길에 시장하던 차에 그 집에서 내어온 밥상을 보니, 밥은 없고 멀건 국물과 김칫국을 달랑 내어 와서, 목사님이 속으로 섭섭한 마음이 들어 대강 기도하고 숟가락을 멀건 국에 넣어보니 그 밑에 고기만두가 들어 있었답니다. 먹어보니 그 맛이 또한 일품이어서 목사님이 배불리 다 잡수신 후에 다시 기도합시다 하고, 크게 축복 기도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록 생활이 어려워도 손님을 대접하거나 남을 돕는 일에 대해서는 인색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한국 사람들의 심성이었고, 풍습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서 마게도니야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구제 헌금에 참여할 때, 이 사람들의 형편 역시 극심한 가난과 그 위에 신앙적인 박해 속에서도 풍성하고 넉넉한 헌금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풍성하고 넉넉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한 삶 속에 있으며, 그래서 한 번 잘 살아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며 저축하지만, 세월만 갈 뿐 생활은 좋아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해 보면, 우리의 삶이 개선되어 지지 않고 여전히 가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대로 정말 넉넉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부요한 사람이 되며, 모든 일에 넉넉한 사람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2. 고후1:4절을 보면,「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과 그 일행들이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과 환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이 전도자들 뿐만이 아니라, 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그 위에 신앙의 박해 또한 감수해야만 했던 시절입니다.
이 전도자들의 사역에서 환란을 당한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다시 세워주는 일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한 수많은 환란과 문제들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하심을, 이제는 전도의 현장에서 만나는 환란을 당한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의 받은 위로를 나누었으며, 그것이 곧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구제 헌금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랑의 구제헌금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1절에,「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다른 교회들로부터 모아온 이 구제헌금을 받는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는 어떤 감사입니까?
억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된 자들의 헌신에 대한 감동입니다.
이 예루살렘 교회의 형편과 고통을 아시아의 모든 교회가 잊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고난에 동참해 주었다는 사실에 대한 감격입니다.

3. 남의 어려움과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남을 도우려면 적어도 자신의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0절 이하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10:27)는 율법의 말씀에서 과연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에 대한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험한 길에 강도들이 자주 출몰했는데, 이곳에서 어느 유대인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모든 것 다 빼앗기고 거의 죽을 정도로 두드려 맞고 버려진 것을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놀라 도망갔습니다.
나중에 레위 사람도 그 광경을 보고 모른 척 하고 비켜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과는 매우 사이가 좋지 않은 사마리아인 상인 한 사람이 나귀를 끌고 지나가다가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 응급조치를 한 후에 주막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부탁하고는 모든 경비를 지불하고, 만일 돈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다시 지불하겠다고 약속하고 떠났습니다.
과연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는 것입니다.
벌써 15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가 여름 수양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제가 유학생 한 사람을 데리고 와까야마로 답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국도변의 일직선 도로에 차량들이 양쪽으로 줄을 지어 천천히 가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 자전거를 타고 가던 노인이 뺑소니 자동차에 받혀 넘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차가 사고난 현장 가까운 곳에 이르기 까지 아무도 그 사람을 돌보려는 사람이 없고 반대편 차량들은 피해서 지나갈 뿐입니다. 제가 내려서 돌보고 경찰에 전화해서 조치를 취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한 때,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이는 남의 어려움과 아픔을 모른 척 하고 지나가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 행위가 선행이 아니라 이웃의 당연한 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고 의로운 일을 하는 이유는 이것이 사람의 당연한 도리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선행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4. 둘째는, 구제헌금 하는 자들의 신앙의 증거가 되기 위함입니다.
12절에「이 봉사의 직무가」라고 하였고, 13절에도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희생시키는 이 사랑의 행위는 믿는 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그의 은혜에 보답함으로 말미암는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롬14:8)고 하였고, 이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 주시고 그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 목적이, 믿음을 가진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함에 있습니다.  
이런 행위를 통하여 베푸는 자와 받는 자가 더불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무엇보다도 모든 환란, 모든 궁핍, 모든 고통, 모든 문제를 이기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고, 진리가 불의를 이기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이와같은 사랑의 행위가 세상과 모든 문제를 이기게 하는 줄 믿습니다.
과연 우리가 믿노라 하면서도 지금까지 무엇을 가지 자기의 믿음을 나타내었습니까?
과연 우리는 삶을 통하여 믿음을 보이며, 또한 믿음의 본을 보이고 살았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헌금을 통해 마게도냐 교회와 고린도 교회와 모든 아시아 교회들이 풍성해지기를 원했습니다.
      
5. 선행과 헌금은 결코 자기 희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일에 열심을 내야 하는 이유는 행함이 있는 이 믿음이 신앙의 뿌리를 깊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 주머니가 회개해야 은혜가 임하고 믿음이 자란다는 것입니다.
자기 희생이 없이는 믿음이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몸소 자신을 희생하고 십자가에서 아낌없이 피와 물을 흘려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대신 버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이름, 모든 능력과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하늘의 영광입니다.  
그 분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고 더욱 풍성하신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바로 이 주님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풍성한 연보를 요구하신 것은, 그들을 더욱 풍성하게 하되, 모든 일에 넘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6.이러한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신다고 했습니다(10).
구제한다고 절대 가난해 지지 않습니다.
헌금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 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풍성하신 하나님이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씨와 먹을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지금 당장의 생활 문제 뿐만이 아니라, 장래의 모든 삶을 보증하시되, 천국 가서도 받을 의의 면류관까지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저축하고 보험 들고, 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받을 보장도 없이 어찌 지불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지불한 것은 당연히 받을 법적인 보장을 믿기 때문에 안심하고 지불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에 대한 장차 받을 보장을 믿지 못한다면 어찌 그 사람을 가리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구제와 헌금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 받는 비결인 줄 믿고, 도리어 드림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7. 둘째는, 풍성하게 하시되 의의 열매까지 풍성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10).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는 목적이 8절에,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드림으로 더욱 풍성함을 체험하는 삶입니다.
구멍가게나 길에 좌판을 놓고 장사하는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가치관이 있고 계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하는 사람은 생각이 다릅니다.
사업하는 방법이나 수단이 다릅니다.
구멍가게 주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일을 생각하고, 그들이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선하신 목적은, 우리를 모든 일에 풍성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풍성함을 통하여 넘치는 선행과 풍성한 감사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모든 선한 일에 풍성함으로 예비함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풍성한 삶의 비결은 하나님 앞에서 먼저 풍성한 연보와 선행에 있습니다.

8. 셋째는, 모든 사람 앞에서 존귀함을 얻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14절에,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풍성한 연보를 통해 풍성한 사람을 체험한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이 이 헌금을 보내온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그들을 사모하는 마음에 넘쳤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어서 고린도교회와 성도라는 존재가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영광이요 축복입니다.
나의 지극히 적은 정성과 희생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만들며, 나를 사모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향해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헌금과 구제는 우리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고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되게 합니다.
헌금과 구제는 세상 학문이나 인생 경험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인생의 풍성한 영적 자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5절에서 결론을 맺기를,「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헌금과 구제를 통하여 우리를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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