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11.헌금의 모범(고린도후서 9:1-9)
[성경본문] 고린도후서9:1-9개역개정
1.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2.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3.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4.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5.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헌금의 모범(고린도후서 9:1-9/2010.7.11.오전) 1. 목회를 하다 보면 곤란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 하나 민망스러운 것은, 열심을 내는 성도를 칭찬하고 자랑했는데, 나중에는 그 본심이 드러나서 세상 사람보다 못한 행동을 하고, 교회에 덕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 올 때 목회자로서 참 난감하기 마련입니다. 처음에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입니다. 인간관계도, 교회와의 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도 처음에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나중이 잘못되면 다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말대로 공든 탑이 무너지면 지금까지 열심을 내고 수고한 모든 희생이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바울에게도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을 향하여, 신앙의 박해 가운데서 흉년을 만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모든 교회가 헌금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고린도 교회가 제일 먼저 감동을 받아 열심을 내어 헌금을 모금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저들의 열정을 뜨겁고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그 마음의 간절함을 보고 바울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마게도냐 교회에 자랑하였고, 이 고린도교회의 열정을 안 마게도냐 교회는 그 가슴에 불이 붙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회는 고린도 교회에 비하면 지나치게 가난한 교회였고, 신앙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게도냐 교회는 자신들의 형편에 지나치도록 풍성한 헌금을 만들어 가장 먼저 이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2.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습니다. 분명히 마게도냐 교회가 고린도 교회의 열심 있는 소식을 듣고 감동을 받고, 격려를 받아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일을 처음 시작한 고린도 교회는 아직도 지지부진하여 헌금이 준비되지 못한 것입니다. 선한 일에 먼저 시작하여 다른 교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다른 성도들에게 격려가 되고 자랑이 되는 것 좋았는데, 정작 본인들은 일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런 교린도 교회의 사실이 다른 교회들, 특히 마게도냐 교회에 알려 진다면 심각한 문제에 빠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첫째로, 지금까지 고린도 교회의 열심을 자랑하던 사도바울의 말은 거짓선전에 불과한 것이 되고, 바울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둘째는, 고린도 교회를 믿었던 바울의 마음은 큰 상처를 입고 말 것입니다. 셋째는, 마게도냐 교회 뿐만이 아니라. 전 아시아에 있는 교회에 대한 고린도교회의 이미지와 신뢰는 추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은 해 놓고 실천하지 못할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감동을 받아 불같이 열심을 내어도 속히 일의 결과를 열매 맺지 못하면 주의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처음도 좋지만 나중을 더 좋게 더 아름답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고 우리에게도 복이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문제를 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헌금의 바른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3.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참된 연보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5절에,「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헌금을 받으러 온 사람이 도착했는데도 줄 사람이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그것도 일 년 전부터 헌금을 준비했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받을 것이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면 세상적으로 표현한다면 사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이라도 속히 준비하도록 미리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공부 못하는 학생은 공부를 억지로 합니다. 이번에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부모를 죽이려 했던 15살 여중학생도, 공부가 싫어서 수업시간에도 도망 나가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마지못해서, 남을 위해서 공부를 해주는 것처럼 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결국은 패륜을 저지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 잘 하는 학생은 다릅니다. 스스로 합니다. 즐거움으로 합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니 시험성적도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은 토요일이라 마음 놓고 마시고 놀다가 주일날에 일어나지 못합니다. 겨우겨우 교회 나와 앉아도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니 헌금이 준비되어 있을리가 없습니다. 헌금 시간이 되자 주머니라는 주머니는 다 뒤지고 앉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은혜를 체험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며 감사며 선교 건축 헌금을 세금이나 공과금이나 식비 등을 먼저 지출하고 월급 봉투 밑구멍에서 남는 것으로 헌금하려면 절대로 모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부터, 처음에 나누면 하나님 앞에 풍성하게 드릴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이 미리 준비하는 자세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한 달 생활을 모자라지 않도록 채워주시는 줄 믿습니다. 4. 둘째로, 심은대로 거두는 원리가 있습니다.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했습니다. 이런 원리를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다 알면서 쉽게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욕심 때문입니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분쟁이 나오고, 거짓이 나오고, 고통과 죄를 낳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 동네 뻥튀기 가게가 있는데, 항상 아이들이 북적거립니다. 부피는 엄청 크지만 웬만큼 먹어도 배를 불릴 수는 없습니다. 쌀이니 강냉이 틈 새로 공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은 아무리 먹어도 욕망의 배를 채울 수 없습니다. 쉽게 번 것은 쉽게 빠져 나가고, 죄로 번 것은 고통만 남기 마련입니다. 여기「적게」라는 말은 헬라어로 인색하다는 의미입니다. 헌금을 하면서도, 남을 구제하면서도 아까운 마음으로 인색한 마음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많이」라는 말은 자비로움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 속에는 축복의 원칙으로, 축복을 목적으로 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남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5. 구제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이요(신15:10-11) ,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기 때문입니다. 풍성함을 원합니까? 그렇다면 구제하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잠19:17절에 보니,「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심은대로 거두는 원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기쁨으로 심으면 넘치는 기쁨으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심으면 더 많은 감사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풍성함으로 심으면 더 많은 풍성으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색함으로 심으면 하나님도 인색함으로 갚으십니다. 근심으로 심으면 낙심으로 거둘 것입니다. 억지로 심으면 고통으로 거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 헌금의 동기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금이나 혹은 구제하는 일은 우리의 마음을 넓히는 것입니다. 농부가 많이 심어서 열심히 심어서 가난해 지는 것 보았습니까? 누구나 다 알면서도 잘 모르는 중요한 사실, 그것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6. 셋째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헌금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7절의「인색」하다는 단어는 근심을 말하고, 「억지」라는 말은 궁핍을 의미합니다. 이는 근심이나 궁핍함으로 헌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헌금 드리고도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요 근심이라면 이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물을 줘서 기쁜 사람이 있습니다. 내것을 주고도 내내 마음이 기쁜 것은 억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빼앗기는 심정으로 줄 때가 있습니다. 생각하면 기분 나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억지로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70년대에 일부분의 부흥사들이 목적한 헌금을 위해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감정을 부추겨 많은 헌금을 하게 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칭찬 받을 목적으로, 혹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하는 것도 옳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면 어떤 헌금이 바르고 정당한 것입니까? 자기의 생활 형편과 자기의 믿음의 분량을 잘 조화시켜서 하는 헌금입니다. 귀한 헌금이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내 정성을 다해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7. 또한 은밀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액수가 너무 많아 본의 아니게 자랑거리가 되거나 남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만한 것은 은밀하게 함이 좋습니다.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구제하는 것도 은밀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은「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마6:3)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마6:4)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볼 때, 자기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 보다 조금 더 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택시를 타고 팁으로 조금 더 주는 것, 일을 시키고 나서 사례를 조금 더 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듯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인색한 사람은 과도하게 아껴도 점점 더 궁핍해 진다고 기록되었지만(잠11:23),본문 9절에「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함같이 남에게 긍휼을 베풀고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은 나의 경제적인 영역을 점점 넓혀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부자들이 많이 나와서 가난한 자들을 돕고,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그런 축복 받은 사람들이 많기를 소원합니다. 돈 많은 것을 자랑만 하지 말고, 은밀하게 연약하고 불쌍한 자들을 돕는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의의 옷을 입히시고 더큰 물질과 능력으로 축복 하실 것입니다. 8. 이같은 원리로 하나님 앞에서 바른 자세로 헌금 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8절에 보니 모든 은혜를 넘치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수십 백만 원에서 수백억 원을 헌금하는 것이 넉넉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풍성한 헌금에 관해서는 넉넉해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믿음으로 인한 담대한 마음과 넉넉한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넘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또 다른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남이 할 수 없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능력으로 만들어 주실 때, 제일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담대함과 넉넉함으로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마음이 크고 마음이 넓어야 복을 받고, 주신 사명도 감당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을 새로 비유한다면, 참새 같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숫자가 모였지만 시끄럽기만 하고 되는 일이 그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모이를 찍어 먹다가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소리도 없이 어느 틈에 날아와서 큼직한 닭이나 토끼를 확 잡아채어 하늘을 높이 올라갑니다. 넘치는 감사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에 넘치는 축복입니다. 9. 둘째로, 8절에 보니「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성도는 받은 은혜를 나누고, 받은 구원을 나누고, 받은 축복을 나누는 존재입니다. 이 나눔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믿음의 공동체가 아름다워지며, 이 나눔을 통해 복음이 더욱 힘을 얻어 불신 세상을 향해 누룩처럼 번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어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적어도 물질 때문에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잘 사용하여 지금부터 영원까지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사는 상급이 있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박범성 전도사님의 졸업을 두고 생각해 보니 참으로 적은 능력을 가지고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사카 중앙교회가 8명의 장학생을 포함하여 10명의 주의 종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세 사람을 한국의 신학 대학원을 졸업시켜 목회자로 세웠습니다. 또 다른 세 분을 고오베 개혁파 신학교를 졸업시켜 두 분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인 두 분을 서울의 그리스도 신학대학에 유학시켜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장학금과 관계없이 우리 교회 안에서 두 분이 신학을 졸업하여 한 분은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 선교사가 4분이나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이며, 바로 이런 귀한 일을 하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과 물질과 이웃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줄 믿습니다. 셋째는, 9절에 보니, 그 상급이 넘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곧「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의를 말하는 것입니까? 물질로 내 육신 내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치스런 물건들과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으로 자랑하는 의가 아닙니다. 그 의는 다름 아닌 자원하여 기쁨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린 연보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영화와 자랑은 한순간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의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헌금을 통해 시험에 빠지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을 위해 귀히 쓰임을 받는 축복의 사람, 능력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