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13.간절한 마음으로(고린도후서 8:16-24)

[성경본문] 고린도후서8:16-24개역개정

16.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18.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20.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22.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23.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간절한 마음으로(고린도후서 8:16-24/2010.6.13.오전)
1. 오사카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安藤忠雄)는, 자신의 하는 일이 외관으로나 기능적으로나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은 건축물 같은 어떤 형체가 아니라 마음이라 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세상에서 모든 건물이 다 없어져도 한 장의 건물 사진만 남았다고 해도, 그것을 본 후세의 사람이 건축가인 내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한국 사람과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세또나이(瀬戸内)의 작은 섬인 나오시마에 이만수씨의 개인 미술관을 지상이 아닌 땅 속에 건축한 일입니다.
관람객들이 마치 태아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들도록, 무덤 속에 들어간 느낌이 들도록 그렇게 만든 건축물입니다.
그의 말대로 미술가와 건축가가 만나서 실현한 미술관이라고 하는데, 내일 모레면 개관한다고 합니다.
결국 그가 이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것은 건축물 이전에 그 건축물에 새겨 넣은 사람의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4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말씀도 다름아닌「간절함」이라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간절함을 일본어 성경에서는 열정, 혹은 열심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17절의 간절함이란, 「보통보다 더욱 간절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사도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를 위해서 고린도 교회에 디도와 더불어 이름이 밝혀지지 아니한 믿음의 형제를 함께 보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밝혀지지 아니한 사람을 누가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마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대신하여 고린도 교회에 보낸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소개하는 가운데, 디도에게는 「같은 간절한」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했고, 또 다른 믿음의 형제에게는「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라고 하면서, 22절에 가서는,「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음으로 더욱 간절하니라」고 함으로, 바울 지신은 물론이고 고린도교회에 파송된 이 사람들의 마음이 믿음의 형제들인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얼마나 진지하며,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는가를 단번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슨 사명을 부여 받았든지 간에, 무슨 일에 종사하던지 간에,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나 지식이나 어떤 특별한 남다른 조건이 그 사람을 가치있게 만들고, 일의 아름다운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주일의 본문에도, 마음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11절에는「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대로 하라」고 하였고, 12절에서는「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주의 종들과 사명자들은 물론이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서 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간절한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우리 교회가 벌써 26주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 느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 간절한 마음, 불타는 열심, 뜨거운 마음이 많이 식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한 영혼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과, 교회를 위하는 자원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잃어버린 간절함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믿음의공동체인 오사카중앙교회 안에서 어려움을 만나고 고난을 당하는 믿음의 형제들을 향한 태도가 지나치게 미지근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의 성도들은 남들 모르게 선행하며, 도우며, 열심히 기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도 어렵고 피곤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형편이 좋아지길 기다리고, 나는 남들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만 한다면 평생에 선한 일은 고사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기회는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문제가 많다 해도, 아직 까지는 사랑과 은혜가 넘치고 있습니다.
성도가 상을 당했는데, 온 교우가 문상을 가고, 나중에 들어온 부조가 수천 만 원이 되었다거나, 질병과 사고를 만나 병원에 입원했는데, 많은 성도들이 위로차 다녀가고, 나중에 퇴원 수속을 밟을 때 보니, 이미 누군가가 수백 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대신 지불한 일이나, 교회 앞과 인근 거리를 성도들이 앞 다투어 나와서 청소하여 온 동네에 아름다운 소문이 자자한 것 등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복음에 충성되고, 주님을 사랑하여 자원함으로 성도들을 도우며 위로하고, 교회 일에 앞장서는 일은 간절한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를 위해 적당한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간절함이 넘치는, 그 마음에 형제 사랑함이 흘러넘치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낸 것입니다.

3. 교회가 일꾼을 세우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본문 21절에 보면,「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를 20절에서「거액의 연보」라고 강조하면서, 21절에서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복음과 관련된 교회의 일은 반드시 악한 세력의 방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방해의 선봉에 사단이 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단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 서기 마련입니다.
이 오사카만 해도 교회에서 재정을 담당하다가 사고를 친 사람들, 그런 피해를 본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평소에는 잘 할 수 있어도 문제가 생기면, 급한 마음에 잠시 빌린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결국에는 도적질이 되고, 받은 은혜가 떨어지면 사람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마음만 앞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바울은 본문에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조심」이라는 단어는「주의를 기울인다, 우려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이 자칫 어떤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선한 일 자체가 무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자칫 사람들이 오해하여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신중을 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택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한 가지의 일에 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의 일꾼을 세웠습니다.
이 일에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이 있는 디도와, 모든 교회에서 인정하는 칭찬이 자자한 믿음의 형제를 세워 파송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7월 초에 임시 공동회의를 열어 권사 투표를 하고, 투표에서 통과된 사람을 11월에 정식으로 권사로 세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일군으로 세워야 합니까?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권사 직분에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믿음의 형제자매를 향한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 넘치는 사람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4. 그렇다면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며, 어떤 사람이 간절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16절의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저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우리가 소유하여도, 그 마음이 간절한 마음이 되도록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스스로가 드러내는 간절함도 있습니다.
주님의 일보다는 교회의 직분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직분에 간절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육신과 그 장래를 위한 간절함에 열심을 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간절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앞장서서 일하는 것 같아도 세월이 가면 저 맨 뒤에 서서 따라 오다가 나중에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우리를 부르실 때에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간절함은 사도바울처럼 평생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뜨겁고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수고하기 마련입니다.

5. 우리가 살면서 자기 마음을 자기 스스로 다스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알아야 합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 하나님께 신실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고, 마침내 하나님을 버렸더니 하나님도 그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그 마음에 악신이 들어 왔고, 그 때부터 사울은 자기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사위된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고, 나중에는 엔돌의 점쟁이 여자를 찾아가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롯유다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주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에 사단이 들어가고 그 때부터 자신의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스승인 예수님을 짐승 팔듯이 팔아먹고, 나중에 제 정신이 들자 스스로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것 보다 우선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간절함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에 간절한 마음을 달라고,
선교와 건축에 간절한 마음을 달라고,
성도들을 돌아보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충성된 일에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주님이 받으시는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요, 이 간절함에서 나오는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6. 어제 아사히신문의 「천성인어」라는 란에 이런 매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목표를 높게 잡으면 비현실적이라고 하고, 현실적으로 목표를 잡으면 용기가 없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 세상의 영원한 모순이라고 하면서, 자민당의 다니가끼 총재가 이번 7월에 참의원 선가의 목표를 40석으로 잡은 것을 두고, 당내에서는 사기가 떨어진다는 소리가 많다고 합니다.
왜냐면 옛날 같으면 이것은 참패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자민당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거에서 세운 목표 의석수가 작아서가 아닙니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외치는 슬로건은 이치방, 곧 일등이라고 하면서, 목표는 형편이 없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슬로건을 바꾸던지, 목표를 다시 세우던지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자민당 총재의 마음이나 자민당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세상만사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에서 끝난다고 할 것입니다.
바로 그 마음들이 주님을 향해 열려 있다면, 주님은 우리 마음에 간절함으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7. 바울은 주님의 일을 안심하게 맡길 수 있는 디도와 같은 훌륭한 사람들을 곁에 두었습니다.
그는 이 디도를 칭찬하기를,「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23)이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칭찬이요 상급입니까?

이왕 우리가 주님의 선한 일꾼으로, 복음과 교회의 청지기로 세움을 입었으니, 억지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간절함과 뜨거움으로 섬긴다면, 영원토록 주님의 자랑거리요 영광이 될 것이요, 그것이 곧 우리가 이 지상에서 받는 가장 놀라운 축복이요 영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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