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6.심은 것을 거두는 복의 원리(고린도후서 8:10-15)

[성경본문] 고린도후서8:10-15개역개정

10.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13.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심은 것을 거두는 복의 원리(고린도후서 8:10-15/2010.6.6.오전)
1. 21세기 현대인들은 과학의 발달로 최고의 문명을 누리며, 최고의 지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롬1:21절에 보니,「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마음이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도「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시14:1)(시14:3) 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고 한 가지로 치우쳐 무익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현대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데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 지구촌은 분리된 모든 것들을 급속한 속도로 하나를 이루어 나가고 있지만, 문제는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가 있고, 그 계시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교회가 받은 사명입니다.
이 말씀이 어리석은 자를 깨우치고, 말씀의 능력으로 구원을 이루고,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사람을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어진 본문을 통해 받을 은혜의 말씀은 심는 것을 거두는 복의 원리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시작한, 어려움을 만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진보가 없이 세월만 보내며 지지부진한 것을 지적하면서, 더욱 환경과 조건이 어려운 마게도냐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데 모임을 보인 것을 예로 들면서, 고린도 교회도 속히 이 일을 매듭짓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는 마치 농부가 씨를 심는 것과 같고, 농부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고 가을이 되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것과 같은 원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의 삶을 살면서 복을 받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권면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재조명하면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정체된 곳에 머물것이 아니라 속히 축복의 세계로 은혜의 세계로 능력의 세계로 나아가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축복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2. 바울은 본문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원리 몇 가지를 살펴본다면, 첫째로, 연보는 명령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면,「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헌금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스스로 자원하여 시작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1년 전에 시작한 일이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고 하던 일을 미루게 되면, 마음에 열기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다른 생각이 틈을 타기 마련입니다.
또한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지지부진한 상태로 끌고가면,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한국 속담에도 쇠뿔은 단김에 뽑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보다 늦게 시작하고도 다른 교회들보다 더 큰 열심과 열정을 가지고 일을 마무리한 마게도냐 교회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마게도냐 교회가 고린도 교회보다 넉넉하거나 환경이 좋았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들은 극심한 가난과 환란 속에서 풍성한 헌금을 만들어 내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일이란 것은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습니다.
같은 일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전연 다릅니다.
불쌍한 마음에, 주님 사랑하는 심정으로,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번으로 족한 것은 의무감에서 올 수 있지만, 주님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은 못할 일이 없는 법입니다.

3. 우리가 무슨 일을 시작하면 속히 참여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뜸을 들이고 관망하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막연히 자신의 형편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는 일은 빨리 끝내는 것이 신앙적으로 대단히 유익합니다.
왜냐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것이 자신의 발을 걸고 넘어지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입는 순간에는 저 사람에게 보답을 해야지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일을 미루다 보면, 나중에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한 일 때문에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세월이 가면 까맣게 잊게 됩니다.
결국 그런 것이 하나 둘 쌓여 가다보면, 남들에게 비쳐지는 내 자신은 불성실한 사람,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됩니다.
더구나 믿음의 세계의 배후에는 반드시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이 있어서, 선한 일을 속히 끝내지 못하게 되면, 시험거리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늘 틈을 노리기 때문에 바울은 지지부진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을 빨리 마무리 하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말과 지식에 풍부하고, 열정도 있지만,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훨씬 가난하고 어려운 마게도냐 교인들보다 연보하는 일에는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4. 12절에 보면, 연보에 대해 말하기를,「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헌금에 대한 바른 자세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제헌금이나 선교헌금, 특별한 일을 위해 헌금하는 일이 있는데, 이 때 이런 것들이 누구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2절의 말씀은, 비록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구제헌금이라 하여도, 이것을 받으시는 분은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할 때,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드린 헌금이 어디로 가는가? 어디에 쓰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된 헌금은 드림으로 끝내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왜?
헌금이란 주님 은혜에 감격하고, 받은 사랑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 난 이후에 섭섭한 마음이 들고 시험거리에 빠지게 됩니까?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헌금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구제헌금이나 선교헌금을 해도, 내 돈이 내 주머니에게 나감으로 나는 손해보고, 저 사람, 저 교회는 나 때문에 덕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습니까?
교만한 마음, 정욕에 가득찬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헌금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희생을 보상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의 헌금은,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겸손한 헌금이 되고, 그렇게 해야 자랑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5. 분명히 12절에 「있는대로 받으시」고, 13절 끝에 「평균케 하려 함」(13)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드리고,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드리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또한 자신의 십일조 역시 일 년 동안 똑 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때는 이외의 수입이 늘어나면 더 드리게 되고, 어떤 때는 수입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 년 내내 똑같은 십일조는 온전한 십일조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 「평균케 하려 함」이란 말씀은 극심한 가난에 어려움을 겪는 예루살렘 교회를 다른 교회들이 돕고, 나중에 다른 교회가 어려울 때,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 연보에 동참하여, 서로 상부상조함으로 극닥적인 빈부의 격차가 없도록 하기 위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서는 예를 들어 100만엔의 수입의 사람이 1/10인 10만엔을 헌금하는 것과, 10만엔 수입의 사람이 1/10인 1만엔 헌금한은 것은 숫자의 다른 것 이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돕고, 평안한 자가 고통당하는 자를 돕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원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제로 분배하여 평균케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가 썩는 것은 가진 자의 횡포의 덕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세계의 특징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드리는데 있습니다.
이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이 연보가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유지하고, 밖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제도 넉넉한 마음으로 하고, 각 기관의 모임에서도 있는 자는 더 내고, 없는 자는 더 내는 사람의 도움을 받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평균케 하는 것입니다.

6. 이런 것은 세상 사람들도 잘 하고 있습니다.
UN을 보십시오. 각국의 분담금을 일률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잘 사는 나라는 많이 내고, 미국은 자국 내에 UN본부가 있고, 여러 가지로 유엔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은 분단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각국의 자발적인 도움을 받아 잘 사는 나라는 많이 내고, 어려운 나라는 도리어 도와줌으로 전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교회가 남을 돕는 선교나 구제나 기타 연보에 인색하다면, 이는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10:32절에 예수님 스스로도 세상 사람들에게「선한 일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단체나 집단도 상부상조해야 유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도 나누는 것입니다.
심은 것을 거두는 원리는 다름 아닌 나눔에 있습니다.
주님은 이 나눔의 원리가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인가를 자신의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벳세다 광야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참 사랑의 나눔은 자신을 찢는 희생을 통해서 옴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렵다고 항상 어려운 것 아니고, 풍부하다고 항상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사람은 남의 도움으로 일어나 성공하게 함으로,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도 남을 돕게 하시고, 그 도움에서 큰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7.바울은 이런 구제의 역사를 효과 있게 매듭짓게 하기 위해서, 과거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만나를 예로 들었습니다.
욕심을 내어 만나를 많이 거둔 자는 그 남은 것이 썩었지만, 적게 거둔 자는 모자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제 생각은, 많이 거둔 자가 다른 어떤 사정으로 말미암아 적게 거둔 자에게 자신의 남은 부분을 나누었기 때문에 적게 거둔 자가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의 희생적인 사랑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죄인도 용서 하시고 용납하시며 사랑하시되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연보는 그 어떤 명분을 가지고 거둔다고 하여도,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연보는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여 자발적으로 드리는 헌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베푸시는 만나를 거두어들이는 심정으로 살아간다면, 세계 경제의 위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팽창되어 언제 터질지 모를 것 같은, 그러면서도 계속 팽창하는 이 세계 경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국가 경제가 파탄이 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나친 탐욕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8.「나우루 공화국의 비극」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어떻게 철저하게 파괴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책입니다.
불과 수천 명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소국이, 섬 전체가 인광석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을 무제한으로 퍼내어 팔아 부를 축적하고 축적된 부를 가지고 전 국민이 흥청망청 즐겼습니다.
그래서 미국보다 훨씬 잘 사던 나라가 되었지만, 인광석이 바닥이 나자 천국 같은 생활도 30년 만에 파탄이 나고, 전기마저 끊어진 거지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잘 먹고 잘 살던 덕분에 지금은 가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비만도 1위, 당뇨병 환자 1위의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참 부자는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가진 소유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많이 가지고도 썩어질 육체의 소욕과 악한 일에 쓰인다면, 그 부가 도리어 자신에게 임하는 재앙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부한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약5:3)고 했습니다.
적게 가지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적은 예물이 귀하게 쓰여 진다면, 이는 영원한 영광이요 영원한 축복의 징조일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심은 것을 복되게 거두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 몸과 마음과 재물이 쓰여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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