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6.새사람에게 주신 것(고린도후서5:17-21)
새사람에게 주신 것(고린도후서5:17-21/2009.9.6.오전)
1. 용팔이란 별명으로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치면서 1987년에는 통일민주당 창당대회를 200명의 깡패로 난장판을 만들었던 정치깡패 김용남씨가 작곡가 조운파 선생의 전도를 받아 2002년 10월 예수를 믿게 되었다.
다시는 주먹을 쓰지 않고 하나님 자녀로 살겠다고 맹세하고 하루 10시간 씩 성경을 필사해서 1년 4개월 만에 완성하고, 지금은 벌써 4번째 필사를 하고 있는데, 필사를 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열심히 읽으면 6개월에 일독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슨 성경 한 권 읽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나 생각하고 읽어보니 보름 만에 일독을 했고, 그 목사님이 보름 만에 성경 일독한 것을 믿어 주지 않아서 그렇다면 써서 보여주자고 결심한 것이 필사를 하게 된 것이고, 두 번째 쓰면서 고질병들이 치료되고 중이염, 축농증, 약한 시력은 물론, 나쁜 습관까지 다 치료되고 영육간에 새사람이 되어 지금은 사랑의 교회 집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생각의 변화. 방법의 변화, 목적의 변화로 인하여 사람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만의 특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그의 죽음, 그의 부활에 함께 동참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령만이 사람을 새롭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함께 동행하시며, 새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2. 오늘 본문에「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핵심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 즉 신분의 변화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의 능력과 성공이라는 가시적인 것들을 통해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지만,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변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새로움이란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심에 있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5번이나 반복하고 있는「화목」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화목하다」는 말은 「카탈라쏘」로 이것은 완전하게 변경되었다는 의미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 어떤 계기로 인하여 은총으로 바뀔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진노의 대상이었던 우리를 불쌍히 여겨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화해를 이루시는 새로운 관계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 번 관계가 비틀어지면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싸우기도 잘 하지만, 화해하는 것도 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사람을 완전히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약한 자로 강하게, 가난한 자로 부하게, 어리석은 자로 지혜롭게,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낮고 천한 자를 올리시고 존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3. 문제는 왜 우리를 새롭게 하셨습니까?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육체대로 육체의 소원을 따라 살았지만,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며 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육체의 소원대로 살면 반드시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영생을 얻고 영광을 얻으며 이 땅에서도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갔다는 것은 더 이상 옛날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는 것은 성령을 체험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불신앙을 버리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는 말씀은 이제 부터는 모든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고 산다는 말입니다.
일본이 54년의 자민당을 버리고 13년 된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변화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살면서 가장 감격하고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변화가 없는 삶, 변화되지 못한 인격, 변화가 없는 인생은 비참한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계속된 변화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는 한두 번 변화를 시도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비참할 뿐입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만 합니다.
4.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사명입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18절에 보니,「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화평케 하는 것입니다.
화목, 화평, 평화라는 단어에서 우리로 제일 먼저 생각하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분 만큼 인류와 각 사람을 위해 온전하게 희생하신 분은 없습니다.
그 분 만큼 세상을 위해 가장 크고 위대하신 일을 이루신 분은 없습니다.
그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단 한 가지뿐입니다.
19절의 말씀대로 죄로 말미암아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세상이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화목을 위해 그 분은 자신의 육체와 생명을 우리의 죄의 대가로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해방시켜 그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육체로 살던 우리를 성령의 사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행하신 이 화목을 위한 희생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도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살펴본다면, 구약의 이스라엘의 속죄 제사 때마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간 무수한 양의 피가 바로 그 분의 피였고 희생이었습니다.
대신하여 죽은 양들이 사람들의 죄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제사 때 마다 희생당 한 양처럼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사람들의 죄를 해결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라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했고, 또한「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5:7, 9:28)고 하심으로 연약한 우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기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화목의 직책을 받은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5.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21세기를 사는 우리를 가리켜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이란 나의 공로나 나의 능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을 이루게 하셨는데, 이제는 그 위에 그리스도만이 행하셨던 그 화목의 일을 이제는 우리에게 그 화목의 직분과 화목하게 하는 그 일을 맡겨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20절에「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된 사람에게 주신 사명이 바로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화목은 이웃 아줌마나 아저씨가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입니다.
이 민족 이 나라 안에서의 화목도 그리스도의 사신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19절에「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기 때문입니다.
화목의 역사는 자민당이나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하신 목적이 바로 새롭게 된 사람인 우리를 통해 세상이 변화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이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6. 우리를 새롭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세상으로 하나님 자신과 더불어 화목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믿고 구원 얻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먼저 새롭게 하시고, 우리로 화목케 하는 대사의 직분을 받게 하셨습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5:9)고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만이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는 늘 화목보다는 분쟁이, 평화 보다는 다툼이 화평 보다는 불안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 넘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며, 어떤 삶이 사람들과 화목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심으로 화목의 직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화목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8. 요한 세바스챤 바하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다 잃고, 결혼해서는 자녀가 정신박약아였으며, 자신은 시력을 잃어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고 뇌출혈로 인하여 반신불수였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작곡을 하였고, 그의 곡은 매주일 교회에서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곡들은 명곡으로 남아 지금도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끔찍한 고통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고통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 고통을 통하여 우리도 예수님 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고통을 통과하지 아니하고는 우리는 진정한 새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8.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대왕 세종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태종의 아들들이 왕자의 신분으로 왕위에 오르는 것은 말도 할 수 없는 고난과 위험과 어려움이 따라 옵니다.
그래서 큰 아들인 양녕대군은 세자의 직분을 받고도 왕이라는 신분에 회의를 느끼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셋째아들 충녕은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잘 소화하면서 군왕의 자질을 익혀 마침내 조선왕조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이 됩니다.
왕세자로 태어난다고 세상이 다 자기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적들과 더 많은 어려움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용팔이 김용남씨도 예수 믿는다고 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싸워 이겨야 합니다.
받은 직분을 감당하려면 자기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 우리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우리는 도리어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새시대의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모든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과의 화목의 길을 여심같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목의 직책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