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30.강권된 사랑(고린도후서 5:11-16)
[성경본문] 고린도후서5:11-16개역개정
11.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
12.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 강권된 사랑(고린도후서 5:11-16/2009.8.30.오전) 1. 어떤 나라의 왕자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시골 처녀를 보았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왕자는 그 처녀를 왕궁으로 데려와 자신의 아내로 삼기로 결심했습니다. 문제는 그 처녀를 왕궁으로 데리고 오는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위엄 있는 왕자의 모습으로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가서 왕자의 권위를 가지고 구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한 왕궁에 그녀를 초청하여 모든 권세와 영화를 보여주고 구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다 좋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방법으로는 그녀가 왕자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도 그 왕자의 권위에 굴복하거나 세상 권력과 영화에 끌려 결혼을 승낙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자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평민으로 변장해서 시골 처녀가 사는 동네에 가서 평민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동네 방아 간에 취직을 하고, 매일 성실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에 둔 그 아가씨에게 구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떠돌이 가난뱅이에게 귀한 딸을 줄 수 없다고 부모는 반대를 했지만, 성실하고 진실한 청년이 마음에 들어 이 시골 아가씨는 구혼을 받아들였습니다. 왕자는 왕궁에 돌아가 왕자의 신분으로 그녀를 데려다가 자기 아내를 삼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동화 형식으로 빌려온 이야기입니다. 2. 예수님도 이 왕자처럼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사용하여 믿으라고 했다면 예수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한 천국의 모든 것을 보여 주시면서 믿으라고 한다면 그 영광을 흠모하여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만드신 그런 능력을 포기하시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33년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낮고 천한 자들과 고통하고 버림받은 자들과 슬픈 자들의 친구가 되셨고, 모든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의 낮아지심, 그의 겸손하심, 그의 희생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쯤 어찌되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바로 이런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의 시선을 끄는 곳이 있습니다. 13절에,「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고 보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 섰을 때에, 왕을 향하여 열심히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자신의 간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과 그의 능력을 증거했습니다. 그 때 총독 베스도가 바울을 향하여 고함지르기를,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행26:24)고 했습니다. 3. 바울의 신앙의 여정을 살펴보면 과연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 아니고는 그렇게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을 위해 쏟아 부은 그 희생과 열정을 우리가 어떻게 다 포현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스스로 고백하기를,「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며,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4-27)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바울은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도 육신을 입은 인간이기에 그가 당하는 고통과 희생은 너무 큰 것이었기에 때때로 그도 육신의 짐을 지고 신음하였고, 탄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고난과 고통을 이긴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울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미친 사람처럼 만들고 만 것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흘리신 그의 보혈의 은총이 아담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인류가 저주와 영원한 죽음 아래 갇히고, 아무도 그곳에서 구원할 수 없었던 절망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했습니다. 4. 사람이 참 사랑에 사로잡히면 미쳐버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서울의 한강 언덕에 양화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복음을 들고 조선에 들어와 조선 사람들을 사랑하다가 조선 땅에 묻힌 많은 서양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합정역 7번 출구에서 한강 쪽으로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양화진 선교사 묘지가 있고, 왼쪽으로는 천주교 성지인 절두산이 있습니다. 이 양화진에는 143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묻혀 있습니다. 그 한쪽으로는 선교사의 어린 자녀들의 무덤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이역만리 먼 나라까지 따라와서 어려운 환경과 조건을 그 연약한 육체로 이기지 못해 함께 희생을 당했습니다. 선교사라고 왜 자녀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 그의 강권하시는 일방적인 그 사랑, 그 은혜가 너무 컸기 때문에 가장 큰 아픔과 슬픔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길,「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하면서,「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니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롬8:35,38-39)고 했습니다. 5. 모든 사람들에게는 동기가 있습니다. 신앙, 직업, 사명 등에는 반드시 동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이 같은 동기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값없이 베푸신 사랑입니다. 바로 이 사랑이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순교의 현장으로 달려가게 하였고, 바로 이 사랑이 수많은 전도자들에게 어린자녀들과 함께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희생하게 한 것입니다. 6. 바울의 복음을 향한 열정적인 헌신의 동기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또 다른 한 가지의 동기를 더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를 향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곧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살든지,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는 두려움이 바울에게는 있었습니다. 빙하를 등반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작은 소리 하나 때문에 어머어마한 눈 사태를 가져오고 그것이 많은 인명의 피해를 일으킴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심판을 아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언행을 조심하고 믿음으로 인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후7:1절에도,「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한 편 강도처럼 저주받아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반열에 올려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결심했습니다. 자신의 전 생애, 자신의 육체가 바울 자신에게 그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께 있음을 고백하였고, 그럼으로 이후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7. 본문 16절 말씀대로 바울은 회심하기 전에는 육체를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육체로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였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리어 이 육체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고 보니, 두려움과 염려와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참 평안과 안식과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란 중에도 기뻐하며, 재앙이 눈앞에 닥쳐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된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일방적으로, 자녀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이 쏟아 붇는 사랑이 바로 강권된 사랑입니다. 이것은 거부할 수도, 외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강권적인 절대적 사랑이 박해자 사울을 전도자 바울로 변하게 하심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강권적으로 역사하심으로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믿음으로 살게 하신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