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23.육신의 장막(고린도후서 5:1-10)
[성경본문] 고린도후서5:1-10개역개정
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육신의 장막(고린도후서 5:1-10/2009.8.23.오전)
1.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표현대로,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정확하게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어찌 그의 나라인 천국과 영생에 관하여 잘 알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변화된 것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요구되어진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인들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몸되신 교회가 왜 존재하며, 무엇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하인이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면 주인의 일을 망칠 수 있으며, 전장에서 군인이 지휘관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군대는 전멸할 수밖에 없듯이,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삶 자체가 의미 없고 괴로울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1절에 보니,「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땅에 있는 장막의 집」이 무엇입니까?
장막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던 장막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들은 이 장막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 장막에서 생명의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의 주인되신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던 곳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인된 인생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생명의 길이 이 장막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진을 칠 때 반드시 진의 중앙에 이 장막을 세웠고, 그곳을 성막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2.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또 다른 하나의 장막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고전6:19절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육체를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성령의 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전이 무엇하는 곳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구약성경의 성막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의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듯이, 우리의 육체 또한 신약의 성령의 전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목적으로서의 육체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이나 우리의 육체나 목적은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시고, 그 세부사항을 자세하게 알려 주신 목적이 예배함에 있었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또한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고 했습니다.
장막이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목적이 있듯이, 사람의 육체 또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육체를 지으신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벗어난 도구들은 쓰임 받지 못하며, 그 주인에게 버림당할 뿐입니다.
3. 우리는 신앙 생활할 때에, 신앙이란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한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사정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고, 그래서 예배를 빼 먹을 때도 있고, 기도를 쉬거나 말씀생활에 게으른 것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적당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교인들끼리 피차에 서로가 바쁜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엌에서 자주 사용하는 식칼이 때때로 날이 무디어져서 아주 중요한 때에 칼로서의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 여러분은 그 칼을 이해하고 계속해서 그 칼을 사용하겠습니까?
어떤 때에는 베어야 할 고기를 베는 대신이 그 무딘 날이 손가락을 다치게 할 정도라면 여러분은 잘 참아 넘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장막을 지으시고, 우리의 육체를 성령의 전으로 만드셨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천년을 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사물과 사건의 핵심을 먼저 파악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지엽적인 문제만 붙들고 씨름하다가 시간을 허비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육체를 지으시고, 우리를 이 세상 한 가운데 두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자기의 몸, 자기의 육체를 그 원래의 목적인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령의 전으로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하나님께 예배하는 대신에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경험해보고 그러면서 세월을 허비합니다.
수험생들이 왜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합니까?
자기 목적이 무엇인 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기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고 하면서,「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고 함으로, 우리의 육체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되어지고, 그 분의 손길에 의해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의 육체를 성령의 전으로 사용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가 숨을 쉬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쉬지 않는 것이 이 육체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4. 그런데 문제는 성막이라고 불리는 이 장막이 나중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막 대신에 성전건축이 시작되었고, 이스라엘은 옛날의 장막이 아닌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때가 오면 성령의 전으로 쓰임 받던 우리의 육체도 무너지고 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 살면서 내 원하는 것을 다 이룰 것 같은 인생도 때가 오면 광야의 장막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아예 사라지듯이, 우리의 육신 또한 간 곳이 없이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늙는 것도 두렵고, 죽는 것은 더욱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장막이 무너져야 성전이 건축되듯이, 우리 육신 또한 언젠가는 무너져야만, 영원한 하늘나라의 집이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차라리 이 육신을 빨리 벗어서 영원한 성전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기를 원했습니다.
5. 사도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4절에 보니,「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이것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세월을 고통과 환란과 핍박과 눈물, 그리고 질병으로 탄식했습니까?
그는 자신의 육신이 당하는 그 고통들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짐진 것 같이 탄식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주머니에 돈만 없어도 고통스러운데, 바울은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바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이 육신 때문에 고통했습니다.
모든 순교자들이 이 육신의 장막 때문에 고통했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육신의 고통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믿음이 연약해지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육신이 후패해져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이 육신의 장막을 벗는 그 날에는 모든 눈물, 모든 아픔, 끝날 줄 모르는 신앙의 핍박 조차도 간 곳이 없고, 주님이「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가」(계21:4)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 6절과 8절에서「우리가 항상 담대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죽고 싶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죽음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삶을 선택한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육신을 지으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6.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천국을 모르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축복의 세계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은 이스라엘의 장막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령의 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육신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무너지는 순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고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육신의 모든 짐을 벗기는 영원한 천국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9절의 말씀대로「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이 육신으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2)살든지 죽든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것입니다.
3)세상의 미련을 버리고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7. 대통령을 경호하는 사람의 제일 첫 번째 조건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 생명을 기꺼이 희생할 각오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기 때에 대통령을 방패 삼아 자기 몸을 숨긴다면 그 자리에서 총살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보호 본능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참 믿음의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와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9-11).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게 하기 위함이었듯이, 우리를 이 땅에서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그를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인생길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오늘부터 육신이 무너지는 그 날까지 하나님이 내 육신을 만드신 그 목적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며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