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26.직분을 받은 자의 자세(고린도후서 4:1-6)

[성경본문] 고린도후서4:1-6개역개정

1.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직분을 받은 자의 자세(고린도후서 4:1-6/2009.7.26.오전)
1.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왜 낙심합니까?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그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죄없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그런 고통 속에서도,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은 바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었습니다.
내가 수고한 만큼 열매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일한다고 즉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생활도 한 달 이상을 해야 월급이 나오고, 일년 이상을 해야 퇴직금도 쌓이고, 보너스도 올라갑니다.
농사꾼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추수는 가을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기꾼들이 왜 사라지지 않습니까?
단시일에 한꺼번에 큰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8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바로의 궁에서 40년을 살면서 학문과 재주를 통달했지만 하나님은 또 다시 미디안 광야로 몰아내시고는 그곳에서 40년간을 양치기로 살면서 고난의 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고한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줄 믿습니다.
기도에도 응답하시며, 우리의 신음소리 까지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값아 주실 줄 믿습니다.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와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것,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2. 사도바울이 무엇을 말했습니까?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빌3:20)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삶은 이 지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들어가서부터 시작입니다.
그것을 영원한 축복의 시작이요, 그것은 영원한 영광의 시작이요,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영원히 누리는 생명의 시작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다가 응답이 안된다고 낙심해서도 안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열매가 없다고 낙심해서도 안됩니다.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피곤하다고 낙심해서도 안됩니다.
마귀가 제일 틈을 잘 타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낙심할 때입니다. 낙심이라고 하는 틈새를 공격당하면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낙심한 우리를 위해 여전히 기도하고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고 있는 믿음의 동료들의 기도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기억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때가 되면 축복하시고 우리를 영원히 영화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3. 부끄러운 일들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숨은 부끄러움의 일」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죄악입니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도덕적인 것들과 더불어 몇 가지의 중요한 죄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째는 궤휼이라고 했습니다.
이 궤휼이라는 것은, 간사한 것, 간교한 것, 교활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는 짓을 말합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속여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훔쳐 먹게 만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간사하게 하고, 간교하게 하고, 교활함으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 안에서 신뢰함으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관계를 형성하려면, 먼저 내 자신의 숨은 부끄러움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부끄러움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새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육체의 껍데기만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심령으로 변화되어 영육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일 미워하셨던 것이 무엇입니까?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속 다르고 겉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을 향하여「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23:25)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부지런히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는 완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 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하였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긍휼하심이「아침마다 새롭다」(애3:23)고 했습니다.
말씀을 부지런히 묵상하며 성령의 도움을 구한다면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숨은 부끄러움이라도 다 씻을 수 있고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4. 둘째는 여호와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세상 지식처럼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잡다한 사상과 교훈으로 섞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은 본질이 중요합니다.  
죄 가운데 고통하는 이 세상의 생명을 구원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함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하는 것이 말씀의 목적입니다.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일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청중들의 인기와 그들이 주는 잠시잠깐의 영광을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복음을 이용하고,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직분을 받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적 모범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거나, 우리의 행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도록 만들면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죄가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엄중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마18:6)고 했습니다.
복음을 생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 신앙생활을 인생의 장식이나 교양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대강대강 믿어도 구원받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고 은밀하게 죄짓는 즐거움을 즐기는 사람들,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무슨 해결책을 주셨습니까?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고 하시면서「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9)고 하셨습니다.

5.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약점은 현실을 보는 눈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믿고, 적당히 섬기고, 적당한 선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체가 비취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아닌, 「이 세상의 신」있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그들에게 감화를 주지 못하도록 역사하고, 복음의 능력을 훼방하고, 할 수만 있으면 택함을 받은 자들까지도 타락하게 만들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세상의 신이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한 자들을 공격하고, 죄와 수치된 것을 감추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남들보다 먼저 구원의 반열에 들게 되었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 뿐입니다.
남들보다 먼저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영광과 축복을 체험하여, 남은 생애를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사용하라고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우리에게 남들보다 더 많은 전도의 기회를 주셨고, 선교의 큰 뜻을 가지고 더 많이 일하라고 우리를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지혜롭게, 능력 있게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열매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힘써 증거함이 직분받은 자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6. 사도 바울은 이 4장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쏟아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있기에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답답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복음이 있기에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델라이데 폴라드라는 젊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헌신하였지만, 후원회도 만들지 못하고, 선교 기금도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당뇨병과 신경계통의 질병을 얻어 활동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너무 상심한 나머지 기도하기를, 왜 하나님은 저를 부르셨습니까? 차라리 선교사로 헌신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도 나오지 않고 실망과 좌절에 빠져 있던 중, 어떤 기도 모임에 나갔다가, 어떤 할머니의 기도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기도는 너무 간단하고 명료했습니다.
「주님, 주님의 뜻이 내 삶속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였습니다.
폴라드는 마음이 뜨거워졌고, 집으로 돌아와 말씀을 펼치고 묵상하는데, 예레미야 18장3-4절의 말씀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드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녀는 깨닫기를, 하나님은 토기장이고 자신은 진흙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자신의 계획과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계획이 더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그후로 그녀의 기도는 변했습니다.
「하나님, 제 삶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좋사오니 오직 제 삶속에 주님의 뜻과 섭리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녀가 만든 찬송은 지금도 우리가 즐겨 부르는 은혜의 찬송이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맘 속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병들어 몸이 피곤할 때 권능의 손을 내게 펴사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7. 지금까지 주님의 일꾼으로 최선을 다했습니까?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과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그 뜻에 순종하기를 원했습니까?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불평이나, 원망이나 낙심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의 구원을 기다리며 인내했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렇게 많은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결단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성령님이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간증 잘 하는 것도 전도입니다. 예수쟁이답게 사는 것도 전도입니다.
말씀을 잘 가르쳐서 양육하는 것도 전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을 잘 사귀는 것도 전도가 됩니다.

천만 사람들 가운데 날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일꾼으로 불러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인내로서 주님의 뜻을 기다린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과 은사와 축복이 우리 가운데 넘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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