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19.수건을 벗자(고린도후서 3:12-18)
[성경본문] 고린도후서3:12-18개역개정
12.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수건을 벗자(고린도후서 3:12-18/2009.7.19.오전)
1. 미따니고우끼(三谷幸喜),48살, 극작가로 배우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많은 문학상도 수상한 경력이 화려한 이 사람이 아사히신문 석간에 「ありふれた生活아리후레따 세이까쯔」란 수필을 쓰고 있는데, 지나친 건망증으로 자신도 늙어가고 있다는 내용을 쓰고 있는데, 아내도 배우라서 서로 바쁘다 보면 혼자서 집을 지키는 경우가 많은데, 캬베츠니 간장이니 식초니 하는 것들을 냉장고에 있는데도 없다고 생각해서 자꾸 사다 나르다 보니 같은 물건이 쓰지도 않고 몇 개씩 늘어난다고 합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보면 아 있구나, 닫으면 또 잊어 먹고 사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 생각해 낸 것이 내가 마법의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개가 갑자기 두 세 개로 변하고, 없던 것이 나타나고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자기 암시 요법도 잠시 뿐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문사에 써 내는 원고도 지난번에 이미 섰던 내용 같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알아보면 지난번에 비슷한 것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쇼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건망증은 나이에 상관없이 나타나는 현상 같습니다.
건망증의 특징은 보면 있는데 안 보이면 없는 것입니다.
저도 사 놓은 물건을 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독일서 사온 신발도 신발장 안에 넣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살다가 우연히 발견하고는 이 더운 날씨에 구멍 뚫린 시원한 신발을 신발장에 썩혀 놓은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도 돌아서면 그 아깝다는 생각조차도 잊어버리는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그러고보니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 보이던 성도들이 최근에 보이지 않으면 자연히 기도가 뜸해지고,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이름도 가물가물하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혹은 일주일의 스케줄도 수첩에 적어 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적어 놓은 것도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실수하기가 쉽니다.
2. 그런데 본문의 모세는 자신의 얼굴을 백성들이 보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했습니다.
40일 동안 산에 올라가 보이지 않던 모세를 사람들이 얼굴까지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해서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영광의 광채를 백성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니,「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시대가 지나고 신약의 은혜시대에 들어와서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심령에 모세의 수건을 걸어놓고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에 기록된 대로 저들의 마음이 완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 저들의 마음이 완고하다는 것은, 저희 생각들이 돌처럼 딱딱해 졌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과 마음이 가리워져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보지도 누리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사울같이 강퍅하고 완고한 사람도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보고, 잔인하게 교회를 핍박하는 바래새인에서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종 사도바울로 거듭났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안디옥과 유럽에 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염병처럼 퍼져 가는 중에도 그들은 도리어 이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복음을 방해하고 사도들이 가는 곳을 따라 다니면서 방해했던 것입니다.
이는 모세의 율법의 수건이 그들의 영혼과 생각과 마음과 인격을 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과연 그들을 덮고 있는,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비췸도 맛보지 못하게 하는 이 수건이 무엇입니까?
14절에서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했고, 16절에서는「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는 말씀을 생각할 때, 그것은 유대인들의 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 술래잡기를 하면, 술래로 뽑힌 아이는 양쪽 눈을 수건으로 가리고 소리 나는 쪽으로 아이들을 잡으러 갑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다른 아이를 붙잡기만 하면 술래의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바로 코앞에 있는 아이도 붙잡지 못합니다.
수건으로 가려졌기 때문에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무엇입니까? 공중권세에 사로잡힌 곳입니다.
엡2:2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에 그 마음과 눈이 빼앗겨서 그곳에 시간과 물질과 청춘을 다 소모하게 한여, 영적으로 벌거벗은 사람처럼 만들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세상보다 더 좋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주어지는 은사와 능력과 신령한 축복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은 썩을 것과 우리 영혼과 육신을 고통하게 만드는 죄를 따르게 합니다.
이것은 다 수건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래서 바울은 그 수건 때문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누려야 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지 못하는 이 불쌍한 유대인들에 방법을 제시하면서, 반드시「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언제? 16절에 「주께로 돌아가면」.
오랜 세월동안 벗겨지지 아니하던 죄의 수건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회개함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 수건들이 벗어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5절의 말씀은 사람이 결코 율법에 의해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17절에 기록된대로 주의 영인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빼앗긴 마음, 물질의 욕심에 빠진 마음, 허영과 사치에 걸린 이 마음을 성령께서 벗겨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8절에도「주의 영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케롤 사이먼 터치 라는 사람이 쓴「사람을 미치게 하는 음식들」이란 책을 보고, 이 시대는 유해 가공식품의 대재앙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벌써 오래전에 절대로 사거나 먹어서는 안되는 식품들, 회사들의 제품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있었습니다마는, 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음식들은 구체적으로 입증된 연구와 임상실험의 결과를 가지고 설득력 있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결핍이 되면, 사람의 성품과 행동에 부정적인 변화가 오고,
달콤하고, 맛있고, 보기 좋게, 인기 있는 식품들,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마찬가지로 다 사람을 중독 시키고, 서서히 사람들의 두뇌부터 파괴해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책을 읽기 전에는 음식들이 사람의 건강에는 손상을 준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는 줄을 몰랐습니다.
어린아이의 이유식, 분유, 심지어 어머니의 모유에 이르기까지 어린아이의 장래를 망치는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21세기 이 현대 사회는 내가 모르면 모르는 만큼 당하면서 살면서도 내가 당하고 손해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치 옛날 중국의 황실에서 많은 궁녀들이 황제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도 아무나 임심을 하지 못하도록 평소에 즐겨 마시는 차에 수은을 넣어 마시게 했고, 이 궁녀들은 그 차가 전부 건강에 좋은 줄을 알고 마셨는데 나중에는 수은 중독으로 다 죽거나 병신이 되어 고통했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입니다.
5. 그런데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수건들을 쓰고 자기만족에 빠진 성도들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제한하여 이정도 하면 집사로서 되었다, 신앙생활은 적당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는 지혜로운 것 같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불충한 사람이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교회를 향하여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2:10)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환란과 고통의 과정, 마귀의 시험의 과정을 통과 하는데, 그 환란을 벗어나려면 충성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끝까지 인내하고 충성된 자들만이 상급을 받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만든 율법으로 내 자신을 제한하여 신앙생활을 한다면, 과연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고, 더 많은 자유와 능력을 얻기를 원하고, 더 좋은 환경을 원하여 그것을 얻었을 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이 원하여 얻었던 그것 때문에 더 자유가 없는 몸이 되고, 그것 때문에 더 불행해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의 제자로서 바른 길을 가며,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모든 수건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6. 1950년대 말에 미국에서 매우 인기 있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합니다.
백만장자라고 하는 쇼 프로그램인데,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않는 억만 장자가 매주,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100만 달러씩 주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돈을 받아서 낭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쌓아 두는 사람, 그것을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고마운 선물에 감사하며, 이웃과 나누거나 지혜롭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이 큰 돈을 쓰던지 어떤 반응을 보이던지 관계없이 이 억만장자는 매주 다시 100만 달러씩 내어 놓았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죄 많은 우리 인생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기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의 죗값으로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의 삶을 돕게 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지 못하도록, 깨닫고 체험하지도 못하도록 지금도 우리 마음과 심령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 율법의 수건들이 우리 속에는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고, 지금까지 쓰고 있던 이 수건들을 벗어버린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으며, 듣지 못한 것들을 들을 수 있고, 깨닫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얼굴에 덥힌 수건을 벗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깨닫고 체험하지도 못하게 했던 그 율법의 수건들, 죄악의 수건들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벗어던진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사람이 될 수 있으며, 이 시대를 살리기 위해 크게 쓰임받는 축복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