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3.8.이 시대의 증거(로마서 4:17-25)

[성경본문] 로마서4:17-25개역개정

17.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 시대의 증거(로마서 4:17-25/2009.3.8.오전)
1.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자네의 일을 돕기 위해서 몇 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하려고 하니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리빙스턴은 답장에서 말하기를, 이곳까지 오는데 길을 가르쳐 주어야만 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들고,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절망과 분쟁이 있는 곳에 사랑과 평화를 만들며,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가는 것이 기독교가 가진 능력인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어떤 시대보다 심각하게 사람들이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경제, 정치, 종교, 문화, 도덕, 교육,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으며,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염려되는 것이 있다면,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들이나 문제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대의 교회가, 아니 믿음의 세계가 그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내가 믿고 따라가는 이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고, 내 삶에 체험된 정확한 답을 얻고 있습니까?

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4절에 보니「죽은 자를 살리시는」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곧 생명의 하나님이시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손이 없이 늙어버린 소망이 없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손의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에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19절의 말씀을 원문에 보면,「이미」라는 단어가 앞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육신이 의학적으로는 벌써 생산의 능력이 소멸되고 상실된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몸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믿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무능력하고 이미 죽은목숨과 같이 되었을지라도,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그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생명의 하나님이시오, 부활의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기막힌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약속의 자손을 보게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하나님을, 믿음의 선배인 이 로마서의 저자인 사도바울이 믿었고, 그 하나님이 곧 오늘 우리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실망하거나 염려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 사실이 그의 아들 이삭과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 분명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들 이삭은 우물 파기의 명수였습니다.
사막과도 같은 광야에서는 우물은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생명과도 같은 우물을 빼앗겨도 싸우지 않고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고 인내하며 양보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습니다.
왜? 하나님의 축복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그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서 체험하였고, 그 답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3. 이 어려운 시대를 만난 우리에게 하나님 살아 계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가끔 나타나는 기적입니까? 은사로 인한 능력입니까?
남다른 축복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만이 이 시대를 살리고 회복시키는 능력이요 증거인 줄 믿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다가도 금방 연약해지고 낙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에서 계속 반복하시면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17:1)고 하셨습니다.
야곱에게도「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35:11)고 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전능자」(사1:24)라 하였고, 사도바울도「전능하신 주의 말씀」(고후6:18)이라고 했습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전능하신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 말씀으로 생명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무능한 삶에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이 시대 우리가 받은 확실한 증거인 줄 믿습니다.

4. 더 나아가서 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떠나라고 명하셨습니다.
문제는 당장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무엇을 먹고살며, 소망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합니까?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믿고 순종함으로 떠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을 복 되게 만든 것은 떠나라고 명령하신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순종하게 하는 마음을 주셨고,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점점 번성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실망스러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빈손을 보면 낙심이 되고, 돌아가는 세계 정세를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고,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사건들은 다 우리를 고통 하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당장 나타난 결과만 보아도 얼마나 실망스러운 것뿐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 시간에,「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모든 문제와 환경을 해결하시고 축복해 주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그를 크게 축복하신 것은, 이 시대에도 누구든지 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아브라함처럼 존귀한 자로, 능력의 사람으로 축복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원래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혼자 살겠다고 마누라 팔아먹은 사람입니다.
마누라 팔고 도망간 사람입니다.
완전히 인생 빵점 짜리,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귀한 것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든 약속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던 것입니다.

5. 여러분! 이 시대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 계신데,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실 뿐 아니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결과, 믿노라 하면서도 믿음의 능력이 없고, 기도해도 기도의 응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니 주님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약속하신 것을 또한 능히 이루시는」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몸이 약해도, 병들고, 실패를 해도,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만이 모든 것에서 구원 받는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오늘도 여호수아처럼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요단 강을 밟고 가나안 정복을 이루는 줄 믿습니다.
나는 부족해도 믿으면 약속이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나는 실패하고 속아도 연약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어떤 상태에 있을지라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한결같이 약점이 있었고, 부족함이 있었고, 심지어 거짓말과 사기꾼이 되었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위대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6. 지금 나를 괴롭히는 질병이 있습니까?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실패를 경험했습니까?
온갖 저주와 고통, 분노 좌절에 휩싸여 있습니까?
억울함과 원통함을 해결할 길이 없어 그 고통에 잠겨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그 모든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우리 자신도 그 고통으로 인하여 도리어 새 사람되는 은혜를 체험하는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이나 조건을 보고, 그 어떤 결과를 보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 환경과 조건까지도 치료하시고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을 수도, 바랄 수도, 인내할 수도 없는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치료하시고 회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99살에도 자식이 없었습니다.
75세에 부름받고 24-25년의 세월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20절에 보니「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요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을 때에는 강한 자가 되고, 축복의 사람이 되고, 능력의 사람이 되는 줄 믿습니다.

7. 이렇게 아브라함이 믿을 수 없는 중에라도 믿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22절에,「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하였고, 히6:15절에는「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받았습니까?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100세에 마침내 이삭을 받았습니다.
이후에 아들만 6형제를 낳았고, 셀 수 없는 자손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기준은 우리의 환경, 조건, 소유가 아닙니다.
그 분은 지금도 우리의 믿음, 인내하는 믿음을 보시는 줄 믿습니다.
사람들은 환경과 조건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는 환경이 우리를 약하게 만들고, 비겁하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 불신앙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시각각 변화는 환경과 조건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만을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약속하신 축복과 능력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런 우리의 믿음, 이 믿음 위에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야말로, 이 시대가 받은 유일한 증거인 줄 믿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인내하여,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삶 자체가, 이 흔들리고 있는 21세기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역사 하시며, 믿는 자들에게는 큰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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