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24.빈 무덤 앞에서 만난 주님(마태복음 28:1-10)
[성경본문] 마태복음28:1-10개역개정
1.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 빈 무덤 앞에서 만난 주님(마태복음 28:1-10/2008.3.24.오전) 1. 안식 후 첫 날 미명에 주님의 무덤을 향해 여인들이 달려갔을 때, 상상도 못할 일이 이미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죽은 예수님이 누워 계셔야 할 그 무덤의 돌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그 안은 비어 있었으며, 심지어 주님의 무덤 앞에서 밤새 지키던 군인들은 다 도망갔고, 오직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과 같이 흰」 천사만 그 빈 무덤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사태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들이 겨우 생각해 낸 것이,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천사가 전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2. 첫째, 너희는 무서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문제는 예수를 믿고 열심히 교회는 출석하면서도 실상은 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덤을 찾은 이 여인들처럼 그들에게는 부활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는 자의 특징은,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는지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부활의 기쁨과 영광 대신에 늘 어두운 마음으로 죄책감과 갈등에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또한 천국과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미래가 불안하며, 그로 말미암아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더 열심을 내고, 더 진실해지려고 하지만, 그러나 죄 용서라는 것은 결코 내 행위와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날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용서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이 없는 사람은, 세상살이가 불안하고, 미래가 더욱 불안하고, 예수님이 지금도 과연 살아 계시며 나를 도우시는가 의심하기 마련입니다. 사도 야고보도 말씀하기를,「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약1:6-8)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확신이 없는 신앙은 주님이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님을 살아계신 주님으로 믿지 못하고, 여전히 무덤 가에서 예수님의 시체만 찾는 여인들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불안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3. 요14: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근본적으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부활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들처럼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너무도 불안하고 두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체 없어진 빈 무덤이, 곧 예수 부활이라는 사실임을 확신할 때에는 그 누구라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은 결코 슬프고 불안한 사건이 아니라, 도리어 믿는 자들에게는 영광이요 기쁨이요, 죄로 말미암은 죽음과 저주를 이긴 승리의 사건임을 의미하느 줄 믿습니다. 과연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역경, 손해, 억울함과 고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부활신앙을 통해 보면, 도리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우리에게 베푸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생각건데 현제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는 질병은 부활의 주님을 믿는 부활 신앙 앞에서는 결코 더 이상의 고통일 수 없는 줄 믿습니다. 모든 질병에서 해방된 줄 믿습니다. 우리가 만난 큰 실패도 결코 저주거리가 될 수 없고, 도리어 축복과 승리의 징조인 줄 믿습니다. 억울한 일도, 원통하고 분한 일도 부활의 신앙 앞에서는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힐 수 없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긴 이 부활의 신앙은,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일어나는 선악간의 모든 사건을 영광스럽고 복된 것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줄 믿기를 바랍니다. 눅24:5절에 보면,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서 기쁨이 사라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헌신과 감사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것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임재하실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하시며, 우리와 더불어 세상 사람들이 맛보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나누시기를 기뻐하십니다. 4. 두 번째는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신 대로 살아 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여러 번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 모든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그가 살아나셨다는 것이 시간적으로 2천 여년 전에 다시 사신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의 다시 사심은, 장차 주님께서 심판의 주인으로 이 땅에 다시 한 번 재림하실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이성, 경험,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벗어나서 어떻게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예수 부활을 믿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내 마음과 인격 속에 나도 모르게 부활의 신앙이 자리 잡도록 도와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5. 어떤 시골 사람이 예수 믿어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눈이 밝아져 한 번 만이라도 예수님의 얼굴을 본다면 더 이상의 소원이 없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응답되어 정말 예수님이 자기 곁에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식사할 때에도 함께 하였고, 잠 잘 때에도 먼저 예수님의 잠자리를 마련해 드렸고, 평상시에도 중얼중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요즘 이상해 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논둑을 걸어가는데, 길이 좁아서 곁에 가시는 주님이 논바닥에 빠져 걷고 계시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주님 제가 빠질테니 위로 걸어가세요 하면서 자신이 대신 빠지고는 예수님을 논둑으로 걷게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보일 리가 없는 마을 사람들은 멀쩡한 논길을 두고 논바닥에 빠져서 걸어가는 이 사람을 보고는 말하기를, 저 사람, 예수 믿더니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하더랍니다. 어떻게 보면 우습기도 하고, 정신 나간 것 같지만,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눈으로 보게 된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어찌 예수님을 논바닥에 빠져 걷게 하시고, 내가 논둑 위로 걸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심을 믿는 부활 신앙은 부끄러운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죽음이나 실패나, 가난함이나 병드는 것이나, 미움을 받거나 오해를 받는 것도 결코 두렵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이 좇아가는 온갖 성공과 명예도 우리의 마음을 빼앗지 못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찌무라 간조는 한 편의 시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기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의 가난함도 슬프지 않고/ 남의 부유함도 부럽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오직 감사한 마음이 널칠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몸의 환란도 괴롭지 않고/ 그 행복도 사모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오직 평강과 만족만 있을 다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일의 실패에 실망하지 않고/ 그 성공에 기뻐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날 위해 죽으셨다가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만나면, 그 누구라도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예수로 인하여 살다가 예수 때문에 죽는 것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초대교회의 능력이요, 저와 여러분이 받은 부활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6. 본문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이 여인들이 얼마나 예수를 사모했으면 안식일이 지나 첫 새벽에 무덤까지 달려왔겠습니까? 그런데 요20:13-14절을 보면, 여인들이 예수님을 보고서도 예수인 줄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만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이 바로 여기 우리 가운데 계시고, 내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찾으려고 합니다. 가까이 계시면서 나를 도우시는 그 분을 보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인 것입니다. 더 이상 빈 무덤이나 죽은 시체에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내 마음 속에, 내 생활 속에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이 계심을 믿기 바랍니다. 결코 주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늘 우리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도우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를 배신했을 때에도, 내가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에도, 병들고 낙심될 때에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날지라도 마지막까지 내 곁에 계시며 나를 도우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내 곁에 계신다는 이 사실을 믿고 확신할 때, 그 때부터 우리는 참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세 번째는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빈 무덤 가에서만 머물지 말고 빨리 이 무덤을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곳에는 더 이상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도 급박한 이유가 있으니, 급히 달려가서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사실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참된 부활의 신앙은 증거함으로 확증되어지며, 전파함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내가 전하지 않는다면, 말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믿지 않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란 부활의 메시지를 가진 자가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라도 가서 전하는 사명, 즉 예수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사 모든 인류의 주가 되셨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참된 가치가 있는 줄 믿습니다. 오사카 중앙교회는 부활의 능력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이 땅에서 예수 생명의 씨앗을 심어 30배, 60배, 100배의 영원한 생명을 거둠으로 많은 영광을 주님께 돌릴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오고 오는 믿음의 후손들에게 더 큰 영적 자산을 물려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