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30.에벤에셀 하나님(사무엘상 7:12-14)
[성경본문] 사무엘상7:12-14개역개정
12.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에벤에셀 하나님(사무엘상 7:12-14/2007.12.30.오전)
1.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이렇습니다.
사무엘이 아직 어린 나이에, 이스라엘은 혼란과 고통 속에 있었고, 사람들은 제 마음대로 살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마지막 절인 21:25절에 기록하기를,「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시대적인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모두 타락하였고, 그 가운데 이스라엘의 중심적인 지도자인 엘리 제사장의 경우는 형편이 더욱 심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성전의 제물을 강탈하고, 음행을 일삼으로 그 아비 엘리 제사장은 백성들은 물론이고 그 자녀들에게도 아무런 감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보다 그 못된 자식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습니다.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우상숭배와 성적인 타락과 약탈과 악행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위해, 특별히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 심판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 군대 3만4천명이 죽임을 당하는 큰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궤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전쟁에서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고, 이 모든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충격을 받아 앉은 의자에서 넘어지면서 문 곁에 부딪혀 목뼈가 부러져 죽었고, 이 모든 것을 듣고 목격하고 있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도 충격을 받아, 곧 출산할 뱃속의 아이가 나오면서 그 어미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출산과 동시에 죽으면서 말하기를,「하나님의 궤를 빼앗겻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삼상4:22)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사건들 중에 가장 비참한 사건 중에 하나입니다.
2. 자식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먼저 부모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조금만 엎드려 기도해 보면, 내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자식은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자녀를 책망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부모의 할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개혁하고 회복하지 않으면, 가정도 개인도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지극하신 은혜와 그의 도우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것입니다. 또한, 지난 한 해를 하나님이 도우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심 같이, 신년에도 이같은 은혜가 넘칠 줄 확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이「에벤에셀」이라는 말은, 서론에서 말씀드린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서의 전쟁이 있은 지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마지막 사사로 통치하면서, 이스라엘의 새시대, 부흥의 시대를 위하여 온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그곳에서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블레셋과 싸워 승리를 얻고, 그 승리를 기념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고자,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가져다 승전의 기념비를 세워,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였는데, 그 뜻은「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의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한문의 사람인(人)자도 보면, 서로 의지하여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3. 사무엘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그들보다 훨씬 강한 철기문화를 가진 블레셋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의 태도와 그 모습이 중요함을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신앙의 개혁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나님도 섬기면서 각자 우상을 소유하고 그 우상에게 복을 비는 이중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우상은 생명이 없는 죽은 것이요 사람을 도울 힘도 없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상을 미워하시고 질투하시며, 우상을 버리지 않으면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상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왜 가만 두지 않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욕심입니다.
나는 힘이 없고 능력이 없지만, 내 안에 있는 욕망, 욕심을 이루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상의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욕심의 상징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욕심의 정체를 어떻게 밝히고 있습니까?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약1:15)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다가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 나중에 보면 대부분 이러한 우상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남은 길은 두 가지뿐입니다.
계속 그 길로 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영 망하든지, 아니면 심판 받기 전에 속히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4. 하나님 앞에 은혜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려면 먼저 내 안에 있는 우상세력을 몰아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욕심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마귀가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주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물질의 우상, 자식의 우상, 명예의 우상, 쾌락의 우상, 지식의 우상, 자랑의 우상,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로 오는 모든 좋은 것을 막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자신의 소위를 고치는 사람, 눈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는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란 바로 이런 사람을 가까이 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비록 범죄한 이스라엘이라도 회개하고 삶을 고치려고 선지자의 음성에 순종하여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자기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블레셋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라는 운명이구나 하는 사람들, 소위 팔자소관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러나 팔자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그렇게 만든 것이고, 스스로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것 뿐입니다.
우리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우리의 삶을 변화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두 번째는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20년 전에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는 기도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곧 자기 힘으로 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무엘이 이끄는 싸움은 먼저 하나님께 회개할 뿐만 아니라 금식하며 기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야고보는,「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약5:15)하였고, 계속해서「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16)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의 기도가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였고, 어린 에스더의 기도가 救國을 이루었고, 다윗의 기도가 골리앗을 이겼고, 다니엘의 기도는 사자 굴에서의 구원을 얻게 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가장 많은 은혜를 받은 순간을 돌아보면, 전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울며 기도할 때였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대적에게서의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9)했습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했습니다.
올 한 해는 하나님이 그동안 막혀 있던 우리 모두의 기도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축복하시고 성도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기도의 문이 막히기 전에, 성령의 역사가 끝나기 전에 열심히 부르짖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6. 세 번째는 희생을 통한 감사입니다.
사무엘이 어린양을 취하여 하나님 앞에 먼저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히브리어로「올라」라고 하는데, 제물을 태워 그 연기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구약의 제사에는 반드시 희생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번제는 죄를 없애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내 대신 희생할 짐승이 필요한 것입니다.
대신 희생제물의 짐승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막고, 하나님과 화해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또한 죄와 관계없이 드려지는 번제의 경우는 온전한 헌신과 감사와 봉사를 나타내는 제사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이 긴박한 전쟁의 상황에서도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면, 10절에「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누가 도와주고 있습니까?
시종일관 모든 형편을 지켜보고 계시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회개와 우상을 버리는 것과, 그들의 간절한 기도, 그리고 희생의 제사를 기뻐하셨던 하나님이 마른하늘에 천둥을 치사 대적 블레셋의 정신을 다 빼어 놓고 말았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의 은총은, 어떤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세월이 가면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도우신 그 은혜가 감사하여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언약의 돌비를 세워 기념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은총인 줄 믿습니다.
7.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지난 한 해를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면 부끄러운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셨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2008년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고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신비의 새 날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2007년 여기서 2008년 저기로 건너가는데,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잘못된 것을 다 내려놓고 건너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더욱 기도에 힘쓰면서 건너갑시다.
반드시 새해에는 크고 놀라운 역사가 우리 가정과 자녀들과 사업과 몸된 교회에 임할 줄 믿습니다.
1년 동안, 아니 우리의 평생에 함께 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건너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