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1.성찬의 의미(고린도전서 11:23-26)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1:23-26개역개정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의 의미(고린도전서 11:23-26/2007.11.11.오전)
1.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사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생명을 걸고 지켜야할 거룩하고도 중요한 표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자들의 유골이나 유물을 찾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것도 아니요, 거룩한 성지들을 방문하여 명상하는 일도 아니요, 예수님의 33년의 삶과 교훈의 자욱이 남아 있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그의 십자가 지심을 흉내 내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지켜야 할 거룩한 예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28:19절에 기록된대로「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을 따라, 주님의 교회가 믿는 자들에게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과 더불어, 오늘 본문 26절에 기록된대로「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심」으로「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의 거룩한 예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라면 그 어떤 곳에서라도 반드시 시행되어야만 할, 교회의 생명과 같은 귀중한 의식입니다.
교회가 2천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이 지구촌에서 사라지지 아니하고, 그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온 세상을 예수 십자가의 복음으로 감화시키고, 변화시키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세계를 새롭게 하는 생명의 공동체로 성장하게 된 그 배경에는 바로 이 세례와 성찬이라는 거룩한 예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그렇다면 오늘 세례를 베풀기 전에 먼저 세례는 무엇이냐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그를 영접하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자기의 죄를 고백할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 살고, 그를 위하여 죽기로 작정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롭게 변화 받은 증거로서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비록 물로 씻지만, 믿을 때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몸과 영혼이 씻김을 받았다는 형식적인 표현입니다.
둘째는 세례는 모든 죄에 대하여 죽고, 그 죽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새롭고도 영원히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롬6:3절에「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았다고 했으니, 그의 영과 육이 예수로 말미암아 영원히 새롭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세례를 받음으로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한 몸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군복을 입으면 군인으로서 인정받을 뿐 아니라, 군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위하여 군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만 유아세례는 어린아이가 스스로 신앙고백을 할 수 없으므로, 믿는 그 부모가 대신 고백하여 세례를 베푸는 것임으로, 부모는 믿음 안에서 마치 자신이 세례를 받고, 자신이 새삶을 결심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녀를 믿음안에서 아름답게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3. 성찬에 관한 것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 밤에, 제자들과 함께 모여 마지막 만찬을 드시는 가운데 제정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준비된 떡을 떼에 나누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24)고 하시면서 받아먹게 하셨고, 계속해서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 마다 나를 기념하라」(25)고 하셨습니다.
떡을 떼시고 잔을 나누시면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이 떡과 잔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분의 인류를 향한 사랑과 구원의 희생을 우리가 받았을 뿐 아니라, 그분의 사랑의 희생을 우리도 본받아 행함으로, 그 분과 우리는 사는 일에나 죽는 일에나, 구원을 이루는 일에나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일에나 하나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떡과 잔에 참여함으로 그의 생명과 능력, 그분의 모든 것을 우리의 영육간의 양식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살과 피는 우리의 육신과 영혼에 있어서 참된 음료요 참된 양식인 줄 믿습니다.
셋째는, 그분을 향한 거룩한 헌신과 충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인간은 자신의 가정을 포함하여 그 어떤 사회적인 조직에 속하지 아니하고는 인간으로서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없듯이, 우리의 영혼과 육신도 그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를 위하여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은하며 살기를 원하는 줄 믿습니다.
4. 세상에는 충성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충성을 아무에게나 드릴 수는 없습니다. 버마의 민주화를 대량 살육으로 탄압하는 독재자에게 충성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죄인이요, 살인자요 만고의 역적이 되는 가장 부끄러운 헌신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상에게 절하며 그 우상을 섬긴다면 이것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이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가장 불쌍한 인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사, 품 안에 있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에 감사, 감격하여 나의 삶과 생명을 그분에게 드린다면,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크고 아름답고 위대한 충성은 없는 줄 믿습니다.
지난 10월3일, 미국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던 벤쟈민 프랭크린이 잠들어 있는 필라델피아를 방문했습니다.
그의 묘지에는 Franklin Printer(인쇄인 프랭클린)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84년의 인생은 한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이루기 어려운 많은 업적들과, 그리고 위대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요, 위대한 발명가일 뿐만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요, 미국독립의 영웅이며, 미국의 정신은 프랭클린 정신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위대한 삶을 살다가 갔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비록 가난했지만 청교도의 후예인 아버지의 신앙과 삶을 이어받아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기를 기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칼빈주의의 종교적 신념이 뚜렷한 사람으로, 17명의 자녀를 믿음 안에서 규칙적이고 경건하며 절제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을 누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플랭클린 플래너」라는 수첩은 1732년에 출판된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이라는 그의 책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믿음의 삶을 통하여 주어지는 능력과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헌신되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5. 고전10:16절에, 성찬의 이잔을 가리켜「축복의 잔」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살과 피에 동참하는 이 거룩한 예식을 기념하는 것 자체가 축복된 행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인류가 함께 누릴 영원한 은총이요, 영원한 자유며, 영원한 생명의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누구나 예외없이 영원한 축복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6.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성찬에 참여할 때 어떤 자세로 참여함이 마땅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얻어 구원받은 자의 확신을 가지고 참여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드리는 헌신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죄와 사망에 대한 영원한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목사님은 매년 절기가 되면, 온 교인들이 작정헌금을 하게 하는데, 그것을 예배시간에 누구누구 얼마 하면서 발표하는데, 그만 실수하여 장로님의 작정 금액 30만원을 300만원으로 불렀답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목사님이 사과를 하려고 하는데, 장로님이 도리어 감사하면서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그날 깜짝 놀란 장로님은 집에 와서 그 문제를 놓고 많이 기도했는데, 자신의 인생이 30만원짜리 감사 인생이 아니라 목사님의 말대로 300만 원짜리 감사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작정한 것의 10배인 300만원을 헌금했고, 별로 넉넉하지도 않은 데서도 큰 재물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 더 큰 은혜를 넘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왕이라고 불리는 헨리포드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갔다가 그곳의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고아들을 위하여 강당을 지어주기로 약속하고 2천 파운드를 기부하기로 액속했는데, 그 내용이 신문에 났는데 내용이 잘못 전달되어 되어 2만 파운드로 나왔다고 합니다. 고아원 원장이 찾아가 정중히 사과하고 정정 기사를 내겠다고 했더니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2만 파운드를 내면서, 그 강당의 입구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헨리 포드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지어진 강당」이라고.
7. 저의 목회 중에 소원이 있다면, 평일에 온 교인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세례식만 하는 예배, 성찬식만 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큰 은혜를 받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주님의 마지막 만찬에는 12명의 제자들만 참여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밤에는 오직 사도된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그 영광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아무나 참여할 수 없는 주님의 살과 피에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격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여러분에게 넘치는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