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8.19.예수의 피밖에는 없네(고린도전서 5:1-8)

[성경본문] 고린도전서5:1-8개역개정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

2.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의 피밖에는 없네(고린도전서 5:1-8/2007.8.19.오전)


1.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많습니다.

간단히 생각해 보면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교육 등의 방면으로 많은 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적어도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성공, 행복의 비결도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특별한 환경과 조건과 소유를 누린다고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마시고, 쓰고 싶은 대로 다 쓰고, 가지고 싶은 대로 다 소유한다면 결국은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가지면 더 가지고 싶고, 누리면 더 많은 것으로 채우고 싶고,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신의 욕망에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고, 기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스스로 자신의 정욕과 야망, 소유욕과 같은 것들을 절제하고 통제할 줄 알아야 바르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헬라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이 고린도 교회가 21세기 우리 교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분명한 답을 얻고자 합니다.

2. 당시 고린도 지역은 항구 도시라는 지역 특성 때문에 다른 헬라의 도시들도 그랬지만, 유달리 성적으로 문란했던 도시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회적인 현상이 그 도시에 있던 고린도 교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헬라 철학은, 인간의 성적 본능에 대하여 다른 욕망에 비하여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헬라의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국가론」에서, 어린 아이를 양육할 시기가 지난 남녀간의 혼음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배경으로 인하여 고린도에는 1천 여명이 넘는 신전소속의 무녀들이 창녀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문화, 사회적인 현상이 사람들을 더욱 더 부도덕하고 방탕한 삶을 살도록 만들었고, 더 큰 문제는 이런 타락한 문물이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 들어왔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비난을 받을 만한 성적으로 타락한 현상들이 교회 안에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도 남들도 같은 일을 하면 수치심이 사라지고 도리어 담대해 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여기서 선악의 분별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성경은 이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과 같은 것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레20:10절에 보면, 간음하는 자는 잡아다가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간음뿐만이 아니라「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마5:28)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바울도 11절에서 다른 더러운 죄들과 더불어 음행하는 자와는 사귀지도 함께 먹지도 말라고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레20:8절에 보니,「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되고, 그의 백성된 우리에게도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예수 십자가의 거룩한 보혈로 씻어 정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 분에게서 거룩함을 입은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간음이나 음란의 죄에 빠진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또한 고전6:10절에, 이런 자들은「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으니, 육체의 부정한 죄로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고전10:8)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하시고 깨끗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시 더러움에 빠지게 하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의롭고 거룩하게 살되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4. 그러나 육체의 정욕이란 것이 말처럼 그리 간단히 제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도 범죄 하였고, 삼손도 성적인 유혹에 넘어져 패가망신하기까지에 이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직자들도 이런 문제에 빠져 패가 망신하고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란 후회 없는 삶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 자기 자신을 죄의 유혹에서 지키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사무엘과 다니엘은 거룩한 삶을 산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단1:8-9)셨다고 했습니다.
간혹 영혼이 중요하지 육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영혼이 중요한 만큼, 육체도 중요한 것은, 이 육체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이 육체로 하여금 받은 바 사명을 감당하도록 건강과 각종 좋은 은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육체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다니엘은 뜻을 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는 상관이 없는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해야 하며, 우리가 뜻을 정할 때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 줄 믿습니다.

5. 문제는 우리의 정욕을 어떻게 제어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7절에서「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곧 우리의 모든 죄악과 저주를 담당하시려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이기는 유일한 것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씻는 것 이외에는, 이 세상에서 육체의 정욕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의 피가 우리의 죄악을 씻음같이, 그의 피가 또한 우리 안에 자리잡은 쓴 뿌리들과 견고한 진들을 다 뽑으시며, 다 파괴하여 우리를 근본적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죄악을 즐기다가 지옥가는 인생이 아니라, 이 죄악, 이 육체의 정욕과 싸워 이겨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함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의 믿음의 승리와 그 승리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세상의 모든 종교는 내가 사는 것이 모든 것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왕에 사는 것, 유행을 따라가고, 잘 먹고 잘 살고, 마음껏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죽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으면, 죄된 우리 자신은 죽지만, 그 죽음을 통하여 지금까지는 경험해 보지 못한 놀랍고도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미 나를 위해 한 번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그 분,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 내 안에 거하시며 나와 영원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6. 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나를 위하여 희생하시도록 하나님의 가장 놀라운 사랑을 입은 존재입니다.
그의 사랑이, 그의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죄와 정욕에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정욕으로 들끓는 피가 쏟아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정욕의 피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가 아무리 훌륭한 임금이요,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그 정욕을 제어하기를 실패했을 때, 그의 인생은 큰 고통에 떨어졌고,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함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순간적인 쾌락에 몸을 맡기면 평생 후회하고 불행해 질뿐입니다.
사도바울도 이런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리켜「곤고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곤고함을 가지고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한 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에 대하여 자신의 육체의 모든 정욕과 욕심에 죽음을 선고한 것입니다.

7.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살 수 없습니까?

한 마디로 내가 덜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다가 말았기 때문입니다.
죽는시늉만 하면, 신앙생활 아무리 오래해도 인생에 재미가 없고, 신앙생활도 재미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재미있게 하면 인생이 재미가 있고, 인생이 재미가 있으면 늘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되며, 여기서 큰 능력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옛 사람은 빨리 죽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옛 사람이 살면 살수록 정욕은 거세어지고, 욕심은 더 많은 죄를 낳기 때문입니다.
오사카에는 구마세미(곰매미)가 천지입니다. 

이전에는 아부라세미가 많았는데 변하는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매미들은 도태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구마세미는 변화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매미도 오랜 세월을 굼벵이로 땅에 숨어사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땅을 뚫고 올라와서 나무에 붙어서 자신의 육체의 껍질을 벗어버릴 때는 마음대로 하늘을 날 뿐만 아니라 우렁차게 한 여름을 호령하는 것입니다.
나비도 그렇습니다. 죽을힘을 다해서 껍질을 벗고 나와야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습니다.

8. 우리가 왜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까?
바로 이 육체의 껍질을 벗기 위함입니다. 정욕의 껍질, 욕심의 껍질,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새 새명을 영원히 누리려면, 이 육체의 정욕의 껍질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에는 우리를 새롭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의 피에는 더러운 정욕과 세상의 욕심에서 우리를 온전히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죄 많은 세상에서의 유일한 소망은 그의 십자가의 보혈뿐인 줄 믿습니다.

육체의 정욕과 욕심에 노예로 사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영광과 그의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그래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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