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15.인생의 한계를 극복하라(고린도전서 1:26-3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26-31개역개정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 인생의 한계를 극복하라(고린도전서 1:26-31/2007.4.15.오전) 1.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은 프랑스의 쿠베르탕 남작이 젊은이들의 심신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 이념과 문화의 장벽을 넘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세계의 평화를 이루는데 더 없이 좋은 방법임을 확신하고, 1894년에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조직하고 1896년에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제 1회 올림픽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라는 구호에 걸맞게 이 올림픽에서는 인간의 한계점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세계기록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야말로 기적과 감동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만 하여도, 인간이 10초안에 100미터를 달릴 수 없다고 했지만, 1968년 10월15일, 미국의 짐 하인스가 처음으로 인간의 한계점이라고 생각했던 10초의 벽을 깨트렸고, 88올림픽에서 미국의 칼 루이스가 9.92초의 세계기록을 세웠습니다. 지금의 공식기록은 그리스의 아테네 제28회 올림픽에서 자마이카 선수인 아사파 파웰의 9.77초가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디 인간의 한계점을 넘어가는 기록들이 육상에만 있겠습니까? 지금도 지구촌 여기저기서 열리는 스포츠의 제전의 전 종목에서 기록은 경신되고 있습니다. 2. 사람이 살아가면서 늘 부딪히는 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점입니다. 여기에 부딪히면서 사람들은 좌절하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으며, 때로는 병들기도 하고, 인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원래부터 인간에게는 개개인 스스로의 한계점은 있을지라도 인간의 한계점은 없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일에 지금부터 열심히 연습해서 100미터 단거리 주자로 나선다고 해도 결코 10초안에 주파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내 개인의 한계점일 뿐이지, 결코 인간의 한계점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같은 일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합니다. 같은 학교, 같은 학급에서 같은 선생에게 같은 내용을 배워도, 100점을 맞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낙제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개인적인 한계점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포함한 1장 전체를 보면, 고린도 교회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도 있고, 헬라인을 포함한 여러 이방인도 있고,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는가하면, 유대교의 회당장이나 고린도시의 재정을 담당하는 관리출신도 있으며, 당시 고린도 인구가 70여만 명에 이르는데 그 2/3가 노예라고 하는데, 고린도 교회 안에는 노예출신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종교적인 배경도 각각 달랐습니다. 전통적인 유대교의 배경을 가진 자와, 기독교인, 그리고 각종 이방종교의 배경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3. 인간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26)고 했습니다. 여기 지혜, 능력, 문벌이라는 가문은 당시 귀족 사회의 3대 조건이었습니다. 이 3가지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귀족사회에서 행세할 수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라고 하면 학식이 풍부하고 덕망이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권력을 행사 할 수 있거나 경제적으로 뛰어난 그런 지위와 힘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문벌이라는 것은 귀족출신을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안에는 사람은 많아도 지혜와 능력과 문벌이 좋은 사람들이 별로 없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가난하거나 약하거나 노예출신의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합니다.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27-29절의 말씀에 그 이유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28절에 보니,「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인간이란 원래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들어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자랑하는 본인에게는 좋아도 듣는 사람에게는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인 것들입니다. 남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열심히 자랑하지만, 사실 남의 좋은 일에는 대부분의 경우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실패하고, 어려운 일 만나 고생하고, 멸시받고, 버림받고, 만신창이가 된 이야기를 듣기 좋아합니다. 왜?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는 아이들에게 남 잘되기를 바라고 열심히 기도해 주라고 합니다. 왜냐면, 곁에 있는 사람이 잘못되고 실패하면 그 사람 어려움이 내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이 잘되면 내게 덕되면 되었지 손해 보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중보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더 어려운 당하여 내게도 피해가 오기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속히 일어나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한계점이라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을 자랑하다가 스스로 제 꾀에 빠지거나, 자기보다 더 못난 사람에게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많이 배울수록 고개를 숙이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나 권세나 물질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5. 잠언에 보면,「교만이 오면 욕도 오」며(잠11:2),「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잠13:10)이며, 또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16:18)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자랑은 하면 할수록 불행해지고, 하나님과도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인생에게 원하시는 것 기본적인 것 한 가지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라」(마11:29)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한계점이란 것은 사람마다 각각 다릅니다. 노예는 노예라는 신분의 한계가 있습니다. 평생에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이고, 자녀까지 노예가 되는 것을 보면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본문에 미련한 사람, 무능한 사람, 천한 사람, 문벌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는 이런 처지와 신분, 상황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며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혜와 능력이 있고, 문벌이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하고,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그것 가지고 자랑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6.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이 한계점을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가난함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쳐보지만, 그것이 마치 운명처럼 붙어 다니면서 하는 일마다 실패합니다. 나쁜 습관을 끊어버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인생이 패가망신해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또한 이지매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은 한국이 일본을 능가하는 국제버전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이지매를 당하여 타지역으로 전학을 가도 마찬가지고, 최후의 수단으로 아이를 외국으로 유학 보내든가 아예 식구들이 이민을 가버리는데, 한국에서 당하던 이지매가 그곳까지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올려놓고 아예 국제왕따를 시키는 것입니다. 하는 사람은 장난으로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죽기보다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실제로 자살하거나 정신이 돌아버린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인생의 한계점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본문 30절에「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7. 첫째는 우리 자신의 신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난」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요1:12절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으니, 노예의 신분이라 하여도, 그것이 결코 우리를 저주와 가난과 고통에 계속해서 사로잡을 수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요셉은 노예의 신분으로, 그 위에 죄인의 몸으로 감옥에까지 내려갔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버리지 아니하였더니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의 자리에까지 끌어 올리셨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한계를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인내함으로 극복하고 승리했습니다. 둘째는 우리 인생의 뿌리를 세상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두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자의 삶을 살 때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많은 사도들과 전도자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삼층 천국까지 경험하며, 온갖 능력과 기적을 나타내었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빌4:13)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순간부터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우리 삶의 한 가운데로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1938년 여름, 힛틀러는 체코와 전쟁 중에 있었고, 다음 목표는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은 이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전쟁에 대한 준비가 전연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영국의 지도자들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모든 학교, 대학교에서 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 까지 전 학교들은 휴교하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독일대사로 가 있었던 헨드슨 대사의 증언에 따르면, 힛틀러의 측근들은 10월은 영국을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했지만, 힛틀러는 늘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지만 이 때 만큼은 신중론자들의 말을 듣었다고 합니다. 9월29일 영국은 기도의 날에 전 국민이 함께 나라와 민족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30일이 되자 힛틀러는 측근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영국과의 전쟁을 하지 않기로 뮌헨조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영국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힛틀러를 굴복시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간구하는 기도는 그 어떤 한계점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에게 소망을 둔다면 이 순간부터 우리의 삶이 놀랍도록 변화되는 줄 믿습니다. 8. 셋째는 우리 인생의 모든 자랑을 「주안에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은 우리가 육체를 자랑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그래도 자랑하고 싶으면 주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자랑이 주안에서 하는 자랑입니까?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자랑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십자가 복음의 위대함을 자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이 복음으로 인하여 내가 변화된 것, 거듭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백하기를,「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갈6:14) 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인 줄 믿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는 우리 인생의 모든 지혜와 능력이시며, 또한 우리의 모든 능력이며 의와 거룩함이며, 우리 모두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가 더 강한 자에게 넘어지고 패배하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보다 약하고 자기보다 훨씬 못난 자에게 넘어지고 패배할 때에는 견딜 수 없는 수치와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교만을 꺾으시는 때인 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때때로 우리가 잘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보다 더 강한 자에게 꺾이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더 강한 자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인 줄 믿습니다. 1:18절의 말씀에서「하나님의 능력」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모든 한계점을 넘어가게 하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요 역사인 줄 믿습니다. |

